크리스마스 이브인 24일 장외주식을 거래하는 한 사이트에 다음과 같은 글이 올려졌다.

‘저는 대학을 졸업하고 삼성계열사에서 3년째 근무하고 있는 30대를 갓 넘긴 샐러리맨입니다. 저는 지난해말부터 장외 주식시장에 뛰어들어 유망한 정보통신주로 1년여만에 회사에서 평생 받을 수 있는 돈을 모두 벌었습니다. 저는 지금 회사에 사직서를 제출하고 돌아오는 길입니다. 사직서를 낸 이유는 두가지. 마음이 떠난 마당에 더이상 회사에서 근무한다는 것이 옳지 못한 것이라 생각됐고 또 하나는 부당한 일을 한 모 벤처회사의 최고 경영자와 맞서 법정 투쟁을 벌이기 위한 것입니다. 이제는 저도 벌만큼 벌었으니 좋은 일을 하며 인간답게 살고 싶습니다…’

또 얼마전 국내 일간지 사회면과 경제면 톱에 ‘한국판 조지 소로스’라는 제하의 기사가 실려 화제가 된 적이 있다. 고졸 검정고시 출신인 이모(35)씨가 96년 4월 1,000만원으로 주식투자를 시작, 3년7개월만에 무려 130억원을 벌었다는 얘기다.

언론은 이씨가 ‘공매도’라는 주식 투자 기법을 통해 하루 평균 1,000만원에 달하는 고수익을 올렸다고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이밖에도 최근 매스컴에는 재테크로 단기간에 수십, 수백억원을 벌었다는 사람들 얘기가 심심찮게 등장한다.



주식·벤처투자등 재테크로 들썩들썩

떼돈을 번 사람들의 얘기는 많으나 한순간에 패가망신했다는 이야기는 가뭄에 콩나듯 한다. 코스닥 주가는 연일 기록을 경신하고, 너나 없이 투자할 벤처 기업 사냥에 골몰하고 있다. 마치 온 나라가 금융 재테크에 정신이 나간 듯하다. 그렇지 못한 보통사람들은 괜히 기가 죽는다. 돈이 없어, 배포가 없어 한탕의 모험에 뛰어들지 못하는 자신이 자꾸만 왜소해보인다.

해방이후 시기마다 방법은 달랐지만 단기간에 떼돈을 벌겠다고 하는 군상들의 등장은 끊임없이 이어졌다. 한탕주의 열풍의 이면에는 ‘성공’한 사람보다는 ‘실패’한 사람들이 항상 다수였다.

새 밀레니엄을 맞고 있는 지금의 한탕 화두는 무엇인가. 누가 뭐래도 주식, 인터넷 정보통신, 그리고 벤처투자다. 차세대 주류가 될 ‘인터넷 정보통신’을 취급하는 유망 ‘벤처기업’에 투자해 ‘주식’을 통해 큰 돈을 벌겠다는 얘기로 압축할 수 있다. 아직 국내 제조업의 불황은 여전하고 공적자금은 바닥을 보이고 있는 실정이지만 유독 이 곳만은 IMF 이전보다 휠씬 뜨겁다.

요즘 주식을 모르는 사람은 바보 취급을 받는다. 증권사 객장을 가보면 가정 주부는 말할 것도 없고 시골에서 하우스 농사일을 접고 올라온 농부에서 대학생까지 너나할 것 없이 금융 재테크에 매달려 있다.

증권업협회에 따르면 주식 상승세가 시작된 98년 9월말 355만개 였던 주식 거래 위탁계좌수가 99년 12월초에는 무려 700만 계좌를 넘어섰다. 국민 6.4명당 한명꼴로 주식 투자를 하고 있는 셈이다. 또 98년 9월말 현금과 유가증권 등의 위탁 잔액이 34조4,556억원(계좌당 평균 970만원)이던 것이 99년 11월에는 107조4,498억원(평균 1,542만원)으로 3배 이상 늘어났다.

그러면 주식열풍의 결과는 어떤 것일까. 일부는 소위 말하는 벼락 부자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정보력과 자금이라는 강한 무기를 가진 기관투자가와 외국인들 앞에 대부분의 일반 개미 군단은 항상 힘없이 쓰러졌다.



잘못짚은 투자로 시름에 빠진 보통사람

92년 명문대를 졸업하고 국내 10대 기업에서 7년째 근무하고 있는 A(33)씨. 부서내에서도 촉망받는 인재였던 A씨는 세상 흐름을 읽는 감각을 익히고 간간이 용돈도 버는 재미에 입사초부터 700만원의 종잣돈을 가지고 주식을 해 왔다.

나름대로 철저한 분석을 통한 예측력을 가졌던 A씨는 주수는 적지만 우량주에 투자해 짭짤한 재미를 봤다. 자신감이 생긴 A씨는 98년초 결혼을 앞두고 아파트 마련 등에 필요한 돈을 일거에 벌겠다는 생각으로 모험을 시도했다.

A씨가 선택한 종목은 삼성자동차. 아직 증권거래소에 상장이 안돼 있어 큰 돈을 벌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다소 무리가 되지만 과감한 베팅을 하기로 마음 먹었다. 더구나 그해 3월 첫 차가 출고되면 장외주식의 특성상 주가가 폭등할 것이라는 판단도 했다.

A씨는 인터넷 장외주식 시장과 우리 사주로 받은 친구의 주식까지 주당 9,000원에 1만주를 샀다. 당시 시가로 보면 매우 좋은 가격대에 구입한 것이었다. 그러나 신차 발표와 함께 잠시 오르는가 싶던 이 회사 주식은 얼마안돼 삼성자동차가 해체된다는 소문이 나돌기 시작하면서 폭락하기 시작했다. 설마설마하다 팔 기회를 놓쳤다.

반가격 이하에 내놔도 사려는 사람이 나타나지 않았다. 현재 이 주식은 시중에서 약 2,000원 정도 하고 있다. 불과 1년 10개월만에 원금 9,000만원중 7,000만원을 날린 것이다. 이 후유증으로 지금도 A씨는 결혼도 못한 채 시름에 빠져 있다.



거품에 뒤덮인 인터넷 벤처시장

99년 11월 모 기업 L(35)부장이 근무시간중 회사에서 투신자살했다. 자살 동기는 인터넷 벤처사업으로 ‘직장 탈출’을 시도하다 실패했기 때문이었다. 대입 검정고시를 거쳐 법대를 나온 L씨는 89년 회사에 공채로 입사, 성실한 근무태도로 승승장구한 끝에 99년 7월 인터넷 사업을 담당하는 부의 팀장에 올랐다.

그는 이후 인터넷의 유혹에 빠지면서 변하기 시작했다. 회사업무에 성실했던 그는 인터넷 도메인을 직접 등록하거나 사서 되파는 개인사업을 했다. 그러나 일이 뜻대로 되지 않아 얼마 안돼 은행과 파이낸스사에 1억원의 빚을 지고 회사문을 닫게 됐다. 이 사실이 사내까지 알려지면서 고민하던 L씨는 아내를 남겨둔 채 스스로 세상을 떠났다.

최근 주식으로 큰 돈을 번 기업과 사람들이 많지만 실제로는 그리 장밋빛만은 아니다. 올해 중순부터 시작된 코스닥 이상 급등으로 벤처 창업가중 상당수가 수백억원대의 거부가 됐다.

또 아직 코스닥에 등록은 안했지만 장외에서 그 회사의 주식이 고가에 거래되는 덕택에 평가 자산으로 볼 때 엄청난 부자가 된 벤처사업가들도 많다. 하지만 인터넷 벤처시장은 아직도 실제 매출액면에서 소수 몇개 선두사를 제외하곤 모두 적자 상태에 있을 만큼 취약하다. 단지 미래의 가능성이라는 프리미엄 때문에 주가가 과도하게 부풀려 있는 경우도 많다.

인터넷 선두주의 하나인 S기술은 12월 26일 현재 주가가 193만5,000원(액면가 5,000원 기준)으로 시가 총액은 무려 2조3,220억원에 달한다. 자본금이 69억원인 것을 감안하면 무려 387배나 높은 금액이다.

이는 증권거래소에 상장된 D그룹의 6개 계열사 시가 총액(총 6,380억원)의 3.6배가 넘는다. 더구나 S기술은 자본금 규모에서는 D그룹 한 계열사 자본금의 1.8%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과연 S기술의 가치가 엄청난 실물 자산을 보유한 D그룹의 150배가 넘는다고 누가 확신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송영웅·주간한국부 기자


송영웅·주간한국부 herosong@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