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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국역] "고전 번역은 진정한 민족문화의 확립"

재단법인 민족문화추진회(약칭 민추)는 우리 고전 번역의 총본산이다.

고전 국역 인재를 키우는 한편으로 고전 국역을 전담하는 거의 유일한 기관이다. 65년 11월 6일 이병도 최현배 이희승 박종홍 박종화씨 등 학계와 예술계 인사 50명이 중심이 돼 창설한 이후 지금까지 700권 가까운 국역서를 냈다. 조선왕조실록이나 ‘열하일기’ ‘대동야승’ 등 어지간한 한문 고전은 다 이곳에서 번역했다.

서울 종로구 구기동 사무실에서 이우성(74)회장을 만나 고전 국역 문제에 대해 들어봤다. 이 회장은 경남 밀양 출생으로 선비 집안에서 자라 한학을 몸으로 익혔다. 성균관대 국문과 교수로 있던 80년 신군부 집권에 반대하는 ‘361교수 성명’ 을 주도하고 ‘지식인 선언’ 에 참가하면서 해직됐다. 84년 성균관대 교수로 복직했고 94년 11월부터 민추 회장을 맡고 있다.

_한국한문학회 조사에 따르면 한문으로 된 옛 전적을 다 번역하려면 지금 속도로는 100년이 걸린다고 합니다. 언제 다 되는 겁니까?

“그게… 예산 문제가 큽니다. 지금 정부에서 연간 24억원 정도를 지원받아 번역본 50책, 한국문집총간 영인본 20책을 내고 있습니다. 이 정도로는 어떻게 달리 해볼 도리가 없어요. 또 예산이 는다 해도 번역 인재 문제가 있습니다. 한문에 통달하고 자유롭게 번역할 수 있는 인재는 극소수입니다. 국역은 한문 좀 안다고 교수들이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전혀 아닙니다. 그나마 현재 민추에 있는 번역요원들이 거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정부쪽에서 좀더 많은 지원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_고전 국역이 왜 그토록 중요한 일이라고 보십니까.

“한문으로 된 문헌들은 그냥 두면 옛날 양반·귀족문화의 유산에 불과합니다. 읽을 수가 없으니까 오늘 우리와 아무 관계가 없어요. 그러나 그것을 한글로 번역하면 우리 민족 구성원 모두가 읽고 향유할 수 있는 진정한 민족문화가 되는 것입니다. 한문의 껍질을 벗기기만 하면 그 정신적 알맹이는 국민생활의 양식이 됩니다. 근대 이전을 보면 서양은 라틴어, 동양은 한문이 지배했습니다. 민족어와는 별도로 공동의 문어(文語)가 의사소통의 기본조건이었지요. 그러나 영국 독일 프랑스 등이 17세기 이후 자본주의 발달과 더불어 민족어로 민족문화를 형성한 것은 라틴·그리스어 고전을 다 번역해 그 유산을 자국어로 흡수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서구처럼 하지를 못했어요. 서양이 이삼백년 전에 다 한 일을 이제야 하고 있는 셈이지요.”

_20세기가 끝나가는 시점에서 아직도 전통 계승이 제대로 안되고 있으니 안타깝군요….

“구한말 일제강점기 초에 근대문화를 형성하는 단계에서부터 잘못됐습니다. 전통을 옳게 계승하지 못하고 어설픈 일본과 서양식 교육으로 바로 넘어갔습니다. 근대를 극복해야 하는 21세기에는 이런 실패를 되풀이해서는 안됩니다. 우리 고전을 우리 말 우리 글로 바꿔 민족문화의 토대로 삼고 여기에 세계문화를 흡수해야 합니다. 정부 지원이 빠듯하지만 중요한 것만이라도 시급히 번역해야지요.”

_21세기는 문화의 시대라고 합니다. 우리 고전이 이 시대에 어떤 역할을 할 수 있겠습니까.

“민족문화를 제대로 가꾸려면 하루 빨리 한자 한문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벗어나되 한글로 번역해 그 유산은 흡수해야지요. 이제 세계에 뭘 갖고 나갈 겁니까. 조상의 심오한 철학과 격조 높은 문학을 가지고 나가야지요. 한문 가지고 나갈 겁니까? 아무리 내용이 좋아도 한문 전적 갖고 나가면 중국문화의 아류로 밖에 알아주지 않습니다. 중국이나 일본과 구별되는 독특한 전통사상, 수준 높은 이론, 철학이 얼마나 많습니까? 오늘날 젊은 세대들의 경조부박(언행이 진중하지 못하고 가벼움)한 모든 풍습도 결국은 근대문화에서 굳건한 전통이 세워지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_심오한 철학과 격조 높은 문학의 예를 들어주시지요.

“퇴계학만 해도 동아시아는 물론 미국 독일에서 연구가 대단합니다. 오히려 우리가 그 중요성을 잘 모르고 있어요. 원효 이후 한국적 불교철학의 발전도 참으로 대단한 것이지요. 특히 문학은 신라 최치원 이후 조선조까지 중국문학에 절대 떨어지지 않습니다. 우리 말로 제대로 옮겨놓기만 하면 그 격조높은 정서와 아름다운 표현미를 누구나 느낄 수가 있습니다. 그런 것을 국민 모두가 접할 수 있어야 새 문화창조가 가능하지요.”

이광일 주간한국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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