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살 장래가 촉망되던 3성장군의 아들 김훈(金勳)중위는 살해됐나, 아니면 자살했나. 이도저도 아니면 영구 미스테리로 남을 것인가.

미군 범죄수사대(CID)와 우리측의 헌병, 육군 검찰부는 8개월동안 두차례 정밀 조사를 벌여 지난 11월 27일 “자신이 소지했던 권총으로 자살했다” 고 최종결론내리고 사건을 종결했다. 그러나 지난 12월 3일 김중위의 소대원이었던 김영훈(金榮勳·29)중사가 대남심리전 특수요원인 북한 적공조와 내통한 혐의로 전격 구속되면서 사건은 오히려 유족측이 끊임없이 제기해온 타살쪽으로 무게중심이 옮겨갔다.

국방부는 기무사 헌병 군검찰 안기부 검찰 등 5개 기관과 국내외 내로라하는 법의학자 등을 포함, ‘메머드급’ 특별합동조사단을 구성, 원점에서 재수사에 착수했다. 그러나 금방 풀릴것 같던 김중위 타살여부는 10여일동안 김중사에 대한 수사에서 뚜렷한 혐의점을 발견하지 못하는 등 장기전으로 전개되는 양상이다. 특히 사건이 발생한지 10개월이 지나 확실한 증거가 나오지 않을 경우, 팽팽한 법의학논쟁만 하다 영구 미스테리로 남을 가능성도 현재로선 배제할 수 없다.

◇사건개요

육사 52기로 96년 임관한 김중위가 판문점공동경비구역(JSA)소대장에 부임한 때는 98년 1월8일. 3주간의 소대장 집체훈련을 마치고 김중위는 2소대 소대장으로 부임, 한달여만인 2월24일 올렛벙커에서 숨진 채 소대원에 의해 발견됐다. 김중위는 머리에 권총을 맞았으며 현장에서 2소대 김모일병의 M9베레타 권총(총번 1140865번) 1정이 발견됐다. 군당국은 김중사가 자살했다고 발표했다.

분명해진 타살의혹

김중위의 아버지 김척(金拓·56)씨는 3군단장까지 지낸 예비역 중장. “이제야 실전영어를 배울 수 있게 됐다” 며 좋아하던 아들은 죽을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국방부 육본 연합사 국회 등을 동분서주하며 8개월동안 동분서주하며 타살의혹을 제기했으나 ‘자식을 잃은 분풀이’ 정도로 주목을 받지 못했다. 답보상태가 지속되던 11월말 김씨는 아들과 근무했던 전역병들에게서 “김중사가 북한 적공조와 내통했다” 는 엄청난 사실을 전해 들었다. 육사출신으로 원리원칙대로 부대관리를 하려 한 김중위가 타살됐을 명백한 동기를 찾은 것이다.

김씨가 들은 전역병들의 증언. “김중사는 삼겹살까지 구워 북한군과 야심한 시각에 술판을 벌였다. 수시로 군사분계선을 넘어갔다 돌아올 때는 담배 인삼주 외제 의약품을 가져와 소대원들에게 나눠줬다. 소대원들은 이 물품을 주운 것처럼 속여 특박을 나갔다” 등등.

‘내성적 성격에 과도한 업무에 스트레스를 받아서’ 라는 1,2차 수사결과에서의 궁색한 자살동기를 뒤집는 증언들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

아들은 자살할 이유가 없다.

유족측은 2차에 걸친 군당국의 수사는 모두 각본에 짜여진 ‘조작’ 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최근 김중위의 행동은 죽음을 결심한 사람이라기엔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애인을 사귄지 두달밖에 되지 않아 심각한 이성고민이 없었고 , 3월 아버지의 생일잔치를 어디서할까 즐거운 고민을 했다. 특히 사망한 2월24일에는 새벽 5시에 일어나 예정된 부대방문인사를 맞을 준비를 했고 오전 10시20분께에는 식당에서 “야, 너네들끼리만 먹냐” 며 부대원과 라면을 나눠 먹는 등 여유를 보였다. 특히 김중위는 변호사 등 법조인이 되는게 꿈이어서 5년 의무복무기간이 끝나면 미국으로 유학을 가려던 참이었다. JSA근무는 이에앞서 영어를 익히는 좋은 기회. 동생도 “형은 자살할 이유가 없다. 그에게는 꿈이 있기 때문” 이라고 울부짖은 것도 이같은 이유 때문이었다.

죽은자는 사체로 말한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 그러나 사체로 말한다’ 는 말처럼 김중위의 사체는 타살됐다는 많은 증거를 남겼다. 그러나 자살로 해석하는 의견도 만만찮아 법의학 논쟁은 치열하다. 미국에서 활동중인 법의학자 루이스 노(한국명 노여수)박사는 유족측의 대표주자이고 국내 대표적인 법의학자 황적준교수는 노박사와 다른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이미 지난 9월3일 천주교 인권위원회가 마련한 토론에서 두 사람은 한차례 격돌했다. 우선 ▲총에서 발견되지 않은 지문=노박사는 “누군가에 의해 고의적으로 지문이 지워졌다” 는 소견인 반면, 황교수는 “빈센트 디마이어가 쓴 Gunshot wounds라는 법의학 교과서에도 기술돼 있듯 총기자살에서 지문이 나오지 않는 경우가 더 많다” 고 지적했다. ▲총알의 진행방향=군부검자료에 따르면 지상 170cm높이에서 총알 진행방향이 수평에서 약간 아래쪽을 향했는데 이는 김중사가 자살하기 위해 선 자세로 오른손을 머리 옆쪽으로 최대한 당기는 기묘한 자세를 취한 것이 된다. 노박사는 이에대해 “가격을 당해 무릅을 구부리고 있는 김중위를 누군가 오른쪽 관자놀이를 상방향으로 쐈고 총알은 왼쪽 벽에 맞은 뒤 천정으로 튕겨 나갔다” 고 결론내렸다. 반면 황박사는 “김중위가 왼손으로 권총을 잡고 오른손 엄지로만 방아쇠를 당겼을 가능성도 있는만큼 결코 불가능한 자세는 아니다” 라고 주장했다. ▲머리 한가운데 나타난 타박상=노박사는 “6㎝x4.8㎝정도의 혈종은 누군가 의해 맞아 실신할 수 있는 정도이며 타살된 결정적인 근거” 라고 제시했다. 황박사는 “외부충격에 의한 상처로 보이지만 충격의 강도가 약해 실신에 이르지는 못할 정도” 라고 주장했다. ▲자살동기와 유서=김중위는 우울증이 없었고 유서가 없다는 점에서 타살로 보는 증거라고 황박사는 기술했다. 황박사는 자살한 사람의 절반이상이 유서를 남기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거리’ 인 김중위의 죽음이 영구 미스테리로 남을 수 있는 대목들이다.

화를 자초한 초동수사

초동수사를 담당한 미8군범죄수사대(CID)는 JSA가 유엔사관할이라는 이유로 독자적으로 현장조사를 실시한 후 한국군을 불러 한차례 현장을 둘러보게 하고 현장을 정리했다. 직접 보지 않고는 믿지 않는 우리풍토를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또 사건이틀후인 2월26일에는 귀빈방문을 이유로 벙커내부를 페인트칠하는 등 현장보존을 소홀히 하고, 지문채취조차 시신입관 직전에야 이루어져 처음부터 자살로 단정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특히 군당국은 2월3일 북한군 적공조 변용관(26)상위가 귀순, JSA소대원의 북한군접촉사실을 증언했는데도 김중위사건과 전혀 연계하지 못했다.

여권은 이제 김중위사건에 대해 국정조사를 제의했고 야당은 천장관의 경질을 요구했다. 또 JSA소대원의 북한군내통이 밝혀진 만큼 96년 4·11총선을 앞두고 대규모병력과 중화기를 동원했던 ‘판문점 무력시위’ 도 총풍을 규명하는 차원에서 수사키로 해 김중위사건은 시위를 벗어난 화살이 됐다.

그러나 국민들의 멀어져가는 군에 대한 신뢰는 오늘 내일 회복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사회부·정덕상기자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