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대응책이 미진한 것 아니냐. 기후환경협약에 대한 국가적 장기 청사진이 없어 기업 대응이 어렵다.’

12월9일 대한상공회의소 중회의실에서 정부와 학계 관련 전문가들이 참석한 가운데 개최된 ‘기후변화협약과 우리나라의 대응 방향’토론회. 11월 중순 아르헨티나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열렸던 기후변화협약 4차 당사국 총회 이후 처음 마련된 이날 토론회에서 학계 대표들은 기후변화협약에 대한 정부 대응이 미흡하다며 더 적극적이고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라고 입을 모았다.

4차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에서 우리나라는 온실가스 감축 의무국으로 지정되진 않았지만 앞으로 선진국의 압력이 더욱 거세질 것으로 전망돼 총력적인 대응책 마련이 시급한 과제라는 주장이었다.

이산화탄소 세계 12위 배출국가인 우리나라는 당장에는 감축의무 압력을 받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선진국들은 우리에게 1차 이행기간(2008~2012년)부터는 참여할 것을 요구하고 있어 조만간 이 협약이 정한 각종 부담을 떠안아야 하는 실정이다. 더구나 우리는 기업들이 지난해말부터 온통 IMF극복에만 관심을 쏟고 있어 기후변화협약에 대한 대응 체제를 거의 구축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날 이명균 LG경제연구원 환경연구센터 실장은 “기후변화협약에 대해 정부와 민간 기업 모두 온실 가스 감축에 대한 적극적이고 구체적인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며 “정부는 확고한 기본 입장 및 협상 전략이 없고, 기업은 기후변화협약을 아직도 남의 일로 여기는 안일한 자세를 보이고 있다”고 안타까와 했다.

전문가들은 기후변화협약의 영향력이 사실 IMF경제 위기보다 더 크고 오래갈 문제라고 평가하고 있다. 경제성장률과 에너지 소비 증가율이 거의 비례 관계인 우리나라로서는 온실가스 감축 의무국이 되든, 자발적 참여국이 되든 GDP감소는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통상 1%의 에너지 사용량을 줄이기 위해선 1%의 GDP성장률을 낮추어야 할 것으로 분석돼 기후변화협약은 우리 경제에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는 것이다. 기후변화협약을 환경문제가 아닌 경제문제로 인식해야 한다는 시각도 여기서 출발한다. OECD가입 국가로서 국제적 지위도 고려해야 한다는 점에서 기후변화협약의 동참은 정치적 문제이기도 하다.

정용헌 에너지 경제연구원 박사는“4차 당사국 총회에서 아르헨티나와 카자흐스탄이‘자발적’으로 1차의무 이행 기간중 의무부담을 수용하므로써 우리에게도 압력이 가중될 것으로 짐작된다”면서 “10년 혹은 20년후의 목표치라도 설정해 지금부터 부단한 감축 노력을 기울여야만 할 것”이라고 말했다.

산업자원부 신성철 과장은“기후변화협약이 우리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대응하고 있다”며“에너지 산업부문에서 에너지 절약및 이용효율 향상을 위해 LNG, 원자력같은 저탄소 연료로 대체하는 등 온실가스를 줄이기위한 다양한 시책을 수립, 시행해왔다” 고 주장했다. 신과장은 선진국에선 우리가 이산화탄소 배출량 억제가 용이할 것으로 여기고 있지만, 우리나라의 에너지효율(생산량당 에너지 소비)은 선진국과 거의 비슷하기 때문에 이산화탄소 배출 감소를 위해선 선진국 못지않은 많은 시간과 경비가 소요될 것으로 내다봤다.

이날 정부와 학계 관계자들은 ‘사실 당장 전쟁은 시작됐다’며 우리가 시급하게 달려들어야 할 사업은 ‘청정개발 체제’(CDM: Clean Development Mechanism)라는데 의견을 모았다. 산자부 신성철 과장은 “2000년부터 시행되는 선진국과 개도국간의 온실가스 거래실적을 인정하는 CDM사업을 국내에서 어떻게 활용해야 할 것인가 구체적 방안을 수립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CDM이란 선진국과 개도국간에 이루어지는 사업으로, 선진국이 개도국에 투자하여 발생된 온실가스 배출 감축분을 자국의 감축 실적에 반영하는 제도이다. 미국등 선진국이 해외투자등 대 개도국 거래및 교역에 커다란 영향을 미칠 조항으로 평가되고 있다. 선진국이 개도국간 거래로 초기에 독점적으로 청정개발체계(CDM)확보에 나설 경우 한국등 후발 참여국은 배출 감축 가능성이 더욱 축소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국내에서는 기후변화협약과 관련해 두가지 조류가 흐르고 있다. 하나는 ‘경제에 악영향을 미치는 어떠한 논의도 거부’하는 ‘개도국형 대응방식’이고, 다른 하나는 ‘기후변화협약의 이면에 흐르고 있는 경제 논리는 도외시’하는 ‘이상주의적 대응방식’. LG경제연구원 이명균 실장은 “두가지 대응 방식 모두 우리에게 이롭지 못하며, 두가지를 적절히 조합한 절충안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날 참석자들은 우리도 지구환경보전을 위한 동참하고 있다는 의도는 보여주되 국제사회를 지나치게 의식, 가시화되지 않은 의무부담을 염려한 지나친 온실가스 배출 저감 정책 추진은 자제해야 할 것이라고 의견을 모았다. 우리 능력에 맞는 차별부담의 원칙을 수립, 이에 대한 논리를 세워 선진국들을 설득해 나가자는 것이다.

11월 2~14일, 부에노스 아이레스 제 4차 당사국 총회는 97년 12월 일본 교토에서 열렸던 제3차 당사국 총회에서 채택된 ‘교토의정서’를 이행키로 하는 이른바 ‘부에노스 아이레스 행동계획’을 채택하고 끝났다. 이 행동계획은 ▲교토의정서의 구체적 이행계획을 2000년으로 마감시한을 정했으며 ▲이행을 위한 강력한 기구 창설이 요구된다는 내용외엔 별다른 진전을 보이지 못했다. 교토의정서의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시간표만 재확인 한 셈이다. 교토의정서는 미국 일본 EU등 38개국(우리나라는 제외)이 2008년부터 2012년까지 5년간 90년 대비 평균 5.2%의 온실가스를 감축한다는 내용이다.

송영주·주간한국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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