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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로 세상읽기] 영화제조차 즐길줄 모르는 영화인들

굳이 욕을 하자는 것은 아니다. IMF사태로 1년6개월만인 지난 8일 열린 제36회 대종상영화제 시상식. 소박하고 요란스럽지는 않았지만 어느 때보다 공정하고 즐거운 자리였다. ‘쉬리’의 유례없는 흥행기록에 한국영화인들은 자부심도 느꼈고, ‘아름다운 시절’에 최우수 작품상등 6개부문을 안김으로써 대종상이 예술성에 시선을 두고 있음도 증명했다.

늘 따로 놀던 영화인들도 모처럼 한자리에 모였다. 추억속에나 남아있을 장동휘 노경희 최무룡 등 노배우들이 시상을 하고 수상을 하는 장면도 흐뭇했다. ‘애니깽’에 대한 턱없는 찬사로 물의와 비판을 받았던 지난번과는 달리 이광모 최민식 심은하의 이름이 불릴 때마다 영화인들은 아낌없는 축하의 박수를 보냈다.

그러나 대종상영화제는 스스로 그 ‘축제의 마당’의 흥을 깼다. 시상식을 앞두고 김지미 집행위원장, 행사지원금을 낸 영화진흥공사 윤일봉 사장은 “부대행사를 없애는 대신 시상식을 알차게 꾸미겠다. 한국영화의 맥을 짚어보는 의미있는 행사가 되게 하겠다”고 말했다. 공동주최자이자 중계를 맡은 SBS 역시 단순히 상을 주고받는 것을 반복하지 않겠다고 했다. 아카데미영화제처럼 현장에서의 수상자 발표는 다양한 반응과 즐거움을 크게 하자는 의도였다.

아무리 생각만 좋으면 뭐하나. 그 생각을 차분하고 치밀하게 준비하지 못한다면. 신설된 ‘단편영화공로상’에 그리스 데살로니키영화제 은상을 받은 민병훈의 ‘벌이 날다’를 선정했다. ‘벌이 날다’는 흑백영화이기는 해도 장편이다. 그럼 심사위원이 이 영화를 보지도 않고 수상작으로 선정했다는 말인가. 민병훈은 이날 영화제에 참석했으면서도 수상을 하러 나가지 않았다. 이 무슨 망신인가.

2시간30분동안 진행된 시상식은 단조롭기 짝이 없었다. 그냥 후보자 발표하고 상 주고의 반복. 어떤 연출도 아이디어도 보이지 않았다. 또 중계는 어떤가. 신인여우상 때는 아예 화면이 나오지 않았고, 마지막 이광모 감독은 최우수작품상을 받고도 SBS가 광고시간 때문에 소감 한마디 못하고 끝났다.

영화인들의 무성의도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시상식에 참석하지 않은 수상자만 8명. 남녀 조연상의 정진영과 이미연에 이어 편집 조명 각본 촬영상이 줄을 이었다. 아마 이들은 자신들이 들러리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대종상영화제는 수상자들만의 잔치니 참가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여기에 기본 예의를 저버리는 복장의 수상자도 있었다. 인기상의 한석규는 식장을 잠시 빠져나가 뒤늦게 뛰어나오는 무례를 범했다. 제35회 백상예술대상 때는 지각한 인기상의 최진실이 그랬다. 그리고 상을 받자마자 돌아갔다.

정말 미리 곰곰히 생각해 가슴을 울리고, 기립박수를 받을 만한 수상소감을 준비한 영화인도 없었다. 그에 비하면 시상자로 나온 노배우 장동휘가 긴시간 자기 영화인생을 회고한 장면은 차라리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스스로 권위를 떨어뜨리는 영화인협회의 소홀함, 안일하고 무책임한 방송, 그냥 구경이나 하거나 상만받고 내려오겠다는 영화인들의 생각이 모처럼 맞은 그들의 축제를 망가뜨렸다. 스스로 내 것이라 생각하지 않으면 즐거움은 없다. 아직도 우리 영화인들은 영화제를 즐길 줄 모른다. 스스로 즐기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남에게 즐겁게 할 수 있을까.

이대현 문화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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