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무엇인가. 영화가 세상과 인간을 얼마나 바꿀수 있는가. 영화가 현실성 없는 희망을 자꾸 얘기하다 보면 어느새 세상도 그렇게 될까. 아니면 어차피 현실에서 기대할수 없기에 영화의 몽상으로라도 대리만족을 하는 걸까.

김기덕 감독은 좀 별난 존재다. 그는 저 경북 봉화군이 고향인 순 촌놈이다. 한번도 정식으로 영화공부를 한 적도 없다. 93년 시나리오작가협회 영상교육원을 수료한 것이 유일하다. 그전 2년동안은 프랑스에서 떠돌이처럼 그림을 그리며 돌아다녔다. 3년동안 써놓은 시나리오가 스무편이 넘는다고 했다. 엄청난 생식력이다. 그중 몇편은 공모에서 입상도 했다.

3년전 그는 저예산독립영화‘악어’를 찍었다. 무작정 자기 시나리오로 영화를 직접 감독하겠다고 나서니 누구하나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게릴라처럼 고생고생해 완성시켰다. 곳곳에 영화 메카니즘을 잘 모르는 허점들이 드러났다. 그러나 거기엔 분명 그의 독특한 색깔들이 보였다. 사회중심에서 밀려난 희망이 상실된 인간의 폭력성과 강한 생명력에 대한 애착과 회화적 이미지, 색채의 은유성이었다.

1년 뒤에는 ‘야생동물보호구역’을 내놨다. 역시 저예산독립영화였다. 대단한 고집과 생명력이었다. 거기서도 그는 흔들림이 없었다. 여전히 그의 시선은 비천한 인간들에게 가 있고, 그들의 진정한 교류와 불가능한 희망을 얘기해 보려 했다. 그의 3번째 영화‘파란대문’도 그 연장선이다. 그러나 그의 마음은 날카로운 현실에서 떠나 동화적이 됐고, 그의 머리는 보다 영악해졌다.

카메라를 만지는 그의 손도 능숙해졌다. 파란색과 빨간색의 대비를 통해 희망과 절망을 표현하는 솜씨도 자연스러워졌다.

카메라가 저멀리 공단을 훑고 지나가면 한 여자가 가방을 들고 낡은 여인숙을 찾는다. 매춘부인 그가 파란대문안으로 들어가면서 영화는 우리에게 아득한 거리를 만들어주고 그것을 좁혀가는 과정을 지켜보도록 한다. 매춘부인 진아(이지은)와 주인의 딸인 동갑내기 여대생 혜미(이혜은)사이에 공통분모는 성이다. 그러나 그것은 엄청난 차이를 드러낸다. 밤마다 성을 파는 여자와 강박관념에 가까울 정도로 그것을 경멸하는 여자.

영화는 그러나 결코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것 같은 두 사람을 거칠고 당혹스럽지만 따뜻하게 결합시킨다. 그것을 위해 영화는 몇가지 전제를 달고있다. 진아는 한없이 여리고 아름답고 착하다. 그의 현실은 억압된 성구조와 남성들의 욕망이 만든 비극이다. 집주인과 아들, 그리고 혜미의 애인까지 진아의 방을 들락거리는 것이 그 증거다. 그 겉을 헤집고 혜미가 들어간다. 그것도 진아가 그린 자신의 얼굴스케치를 보는 순간. 소녀적인 감상이다. 그 감상은 마지막에 진아 대신 혜미가 손님의 방을 들어가는 것으로 절정을 이룬다. 모든 문제의식은 마치 한여름에 눈을 내리게 하듯 몽환속에서 사라진다.

이런 선택은‘악어’나 ‘야생동물보호구역’에서도 보였다. 그가 “반추상적 기법”이라고 말하는‘몽환‘은 이제는 현실 비껴가기이자 관객의 허망한 꿈을 잠시나마 실현시키는 장치가 되고 있다. 그 허황된 희망이 상업성을 위한 것이라면 김기덕의 영화는 점점 처음의 날카로운 소리와 감각을 잃어간다는 얘기다.

김민지·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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