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자(49)라는 이름을 들으면 중장년층중에는“아 그 농구선수”라고 기억하는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문씨는 69년 청소년 여자농구 국가대표를 거쳐 74년 아시아 여자농구 대표로 활약한 인기선수였다. 문씨는 코오롱에서 선수로 활약하다 무릎부상으로 은퇴하고 코오롱 총무부에 근무하는 남편과 결혼해 아들 딸을 키우며 전업주부로 행복하게 살았다.

그런 문씨가 지난말 제과점 사장님으로 변신했다. 코오롱에서 현대건설로 옮겨 부장으로 근무하던 남편이 지난해 외환위기의 태풍을 맞고 회사를 그만두었기 때문이다. 가족의 생계를 걱정하던 문씨는 신문에 난 빵집광고에 착안, 5호선 우장산역 주변에 거의 전재산을 쏟아부어 제과점을 차렸다.

문씨는 “처음에는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서서 일을해 다리가 퉁퉁 붓는 등 고생을 많이 했지만 지금은 자리가 잡혔다”며 “남편이 회사다닐 때보다 돈도 많이 벌고 사회활동도 한다는 점에서 새로운 생활에 만족한다”고 말했다.

한국전쟁이후 최대의 국난이라는 외환위기를 맞자 한국 여성들의 저력이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하루아침에 회사에서 쫓겨난 남성들은 시름과 충격의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방황했지만 여성들은 문씨처럼 과감히 집안에서 벗어나 생계를 찾아나선 것이다.

통계청이 9월초 발표한 98년말 기준 ‘사업체 기초통계조사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사업자수는 278만2,000개로 전년대비 2.5% 줄어들었지만 여성이 대표자인 사업체는 93만2,000개로 전년도에 비해 0.8%가 늘어났다. 여성들이 IMF관리체제를 계기로 생업전선에 참여하는 비율이 높아졌다는 뜻이다. 4인이하 영세업체의 비중이 전체 업체의 87.6%로 전년도에 비해 다소 커졌고 3차산업의 비중도 87.4%로 전년에 비해 높아진 점 등도 여성들이 소규모 식당, 주점, 다방, 각종 전문강습소 등을 대거 개업하면서 생긴 현상 때문으로 통계청은 분석하고 있다.

이같이 여성들이 생계전선에 급격히 진출하자 민간차원의 창업상담이 활발해진 것은 물론 정부차원의 각종 지원도 늘어났다. 안산노동사무소와 안산인력은행은 사례조사를 통해 이달초 여성가장에게 유망한 직종 15선을 발표했다. 유망직종 15선은 우선 ‘남다른 미각과 손맛을 가진 여성’에게는 조리사, 주방보조원, 제과제빵사, ‘대인관계에 자신있는 여성’은 상품판매원, 텔레마케터, ‘사무경력이 있는 여성’은 경리사무원, 무역사무언, ‘컴퓨터와 친한 여성’은 캐드(CAD)설계원, 정보제공원(IP) 등이다. 또 여성가장에게 유망한 창업업종으로 도시락전문점, 어린이 중고용품점, 팬시점, 구매대행업, 컴퓨터공부방 등 5개를 추천했다.

근로복지공단은 올해 초부터 소규모 창업을 하려는 실직 여성가장에게 담보없이 5,000만원 한도내에서 점포를 임대해주는 사업을 벌여왔는데 이번달 초까지 모두 1,000여건 350억원을 지원하는 대성황을 이뤘다.

재정경제부와 중소기업청도 여성창업을 촉진하기 위해 하반기 추경예산에서 100억원을 확보, 서울 부산 광주 대구 등 7개시에 여성창업보육센터를 설치하고 저소득 여성가장 100여명에게 1,000만원씩 저리에 융자를 해줄 방침이다.

이처럼 여성들의 사업진출이 늘어나고 창업여건도 그전에 비해 훨씬 좋아지고 있지만 경험미숙과 충분한 준비없이 섯불리 사업을 시작했다가 그나마 남아 있던 재산마저 날리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 창업상담가들의 말이다.

한국여성창업대학원 양혜숙원장은 “창업하려는 여성들이 많지만 유행만 쫓거나 아니면 음식점 분식점 등을 만만하게 보고 섯불리 시작했다가는 실패할 확율이 높다”며 “자신이 나이 적성, 유행의 사이클, 유통망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철저한 사전분석을 거친뒤 창업을 해야한다”고 조언했다.

주식시장은 여성들의 참여를 가장 분명히 볼 수 있는 곳. 지난해부터 주식시장이 활성화하면서 증권사 객장에는 아예 자녀를 데리고 오는 주부들이 크게 늘어나 재테크에 대한 높은 관심을 반증하고 있다. 또 최근까지만 해도 각종 주식투자설명회에는 몰려드는 가정주부들로 발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호황을 누렸다.

현대증권 관계자는 “주부들이 처음에는 반찬값이나 자녀 학원비라도 벌어 가계에 보태겠다고 시작했다가 조금 이익을 남기면서 점점 주식에 빠져들어 결국 돈을 모두 날리고 가정불화까지 일으키는 사례가 적지 않다”며 “프로들이 주도하는 주식시장에 섯불리 욕심을 갖는 것은 위험하다”고 말했다.

IMF를 계기로 주부들의 경제활동이 활발해지면서 가정내 역학관계도 크게 바뀌고 있다. 경제권을 확보한 부인들의 발언권이 커지는 반면 갑작스런 실직의 후유증에 시달리다 가정내 지위마저 떨어진 남편이 부인과 조화를 이루지 못해 결국 파경에 이르는 사례도 늘어나고 있다. 법원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협의이혼건수는 12만3,577건으로 전년도 9만4,386건에 비해 무려 30.9%나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법조계에서는 이처럼 협의이혼건수가 급격히 늘어난 데는 IMF라는 경제상황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전통적인 가부장적 전통에서 아직도 벗어나지 못했던 가정내 남녀역할이 이번 기회에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여성의 전화 박연숙 사무차장은 “여성은 가사와 육아를 전담하고 남편은 돈을 벌어와야한다는 전통적인 이데올로기를 무너뜨리는데 지난해 외환위기가 크게 기여한 측면이 있다”며 “사회적으로 이같은 분위기가 확산돼 가정에서 부부가 심리적 거부감없이 좀더 평등한 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부모.자녀 함께하는 '신가정교육운동'

‘흔들리는 가정을 지키자.’ 국무총리 산하 청소년보호위원회(위원장 강지원)가 내년부터 ‘자애로운 부모, 효도하는 자녀’라는 슬로건아래 ‘신가정교육운동’을 전개한다.

신가정교육운동은 과거의 동양적 가정교육과 근대이후의 서양적 가정교육을 잘 조화한 새 유형. 청소년보호위원회는 YWCA, YMCA, 흥사단, 주부클럽연합회 등 12개 시민단체와 함께 이 운동을 본격화한다.

청소년보호위는 이 운동의 실천덕목으로 ‘좋은 가정교육 10계명’을 선정, 발표했다. 10계명은 ①부모는 진정한 사랑으로 자애롭고, 스스로 효를 실천한다 ②자녀 앞에서 부부싸움을 삼가고, 서로 존중하는 모습을 보인다 ③아들 딸 차별하지 않고, 형제자매를 똑같이 대한다 ④어린 자녀는 자주 안아주고, 커가면 따뜻한 말로 사랑을 표현한다 ⑤자녀의 말을 끝까지 경청하고, 믿고 기다려준다 ⑥화나는 일도 참고이해하고 이겨내는 모습을 보여준다 ⑦자녀에게도 ‘안녕’ ‘고마워’ ‘미안해’라는 말을 자주하고, 바른 인사법을 가르친다 ⑧집안 일을 고루 시키고, 힘든 일도 스스로책임지고 완수할 기회를 준다 ⑨옳고 그름을 일관되게 가르치고, 작은 약속이라도반드시 지킨다 ⑩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이웃을 위해 봉사하는 사람이 되도록 가르친다 등이다.

송용회·주간한국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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