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판도라의 상자인가. 11월 28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벌어졌던 그린벨트 수도권 공청회의 살(煞)풍경은 이같은 우려가 결코 기우만이 아님을 입증하는 ‘사건’ 이었다. 공청회장 안은 그린벨트 지역 전면해제 등을 요구하는 그린벨트 주민에 의해 2시간동안 점령당한 상태. 공청회장 밖에도 관광버스까지 동원해 올라온 주민들에 의해 시위장으로 변했다. 더이상 물러설수 없다는 주민들의 격앙된 표정과 일전불사의 과격한 태도. ‘민란’ 의 느낌마저 받았다는 것이 이날 공청회에 참석했던 발표자나 취재진들의 한결같은 반응이다. 이날 공청회는 7명의 주민이 업무방해 등 혐의로 불구속 입건되는 얼룩만 남기고 무산됐다. 12월2일 열릴 예정이던 광주공청회도 주민들의 거센 반발에 부딪쳐 무산되고 말았다.

구비구비 험난한 스무고개를 넘는 기분이다. 어느 고개하나 만만해 보이지 않는다. 특히 마구집이개발과 집단민원, 그리고 투기우려 등 3가지 고개는 생사를 장담할수없는 지옥코스를 방불케한다.

불 보듯 뻔한 마구잡이 개발

그린벨트 해제의 큰틀은 정부가 짜주지만 세부적인 조정안은 지방자치단체에 맡긴다는 것이 정부의 방침이다. 건교부가 환경평가결과를 내려주면 지자체가 지역적인 사정을 감안, 구체적인 구역조정작업에 나서달라는 주문이다. 전문가들은 이 대목을 크게 걱정하고 있다. 자칫 지역이기주의에 밀리고 지자체의 선심성 정책과 맞물려 무원칙적인 해제에 이은 마구잡이 개발이 불을 보듯 뻔하다는 지적이다.

도시계획이나 공영개발 등을 바탕으로 난개발을 막겠다는 것이 정부 방침. 하지만 한번 고삐가 풀린 상태에서 마구 날뛰게 될 지역이기주의와 선심성 정책 바람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민원해소를 위해 규제를 풀어주었던 자연녹지(준농림지)가 그동안 어떻게 활용됐는지를 보면 이같은 우려는 더욱 자명해진다. 농지전용(轉用)이 허락되자 농촌마을에 고층아파트가 흉물스럽게 들어서고 경치좋은 곳에는 어김없이 러브호텔과 음식점이 난립, 정겹던 농촌풍경을 빼앗아갔다.

그린벨트가 풀렸을때 생길수 있는 집중화와 환경적 폐해에 대한 논의나 고민이 이 해제안에 들어있지 않다는 점도 아쉬움을 더하게 한다. 환경단체들의 반발이 여기서부터 출발하고 있다.

형평성 문제로 집단민원 제기

지뢰밭이나 다름없다. 집단민원을 부추길만한 ‘형평성’ 의 뇌관이 군데군데 숨어 있다. 우선 해제되지 못하는 지역주민들의 반발이 예상된다. 해제지역 선정과 관련, 지역감정론이나 정치권로비설과 같은 뜬금없는 소문까지 나도는 실정이다. 아무리 환경평가가 객관성과 투명성을 유지한다해도 27년간을 기다려온 비해제 지역주민들의 상대적 소외감까지 안을수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무허가 비닐하우스가 난립한 지역은 보전가치가 낮다는 환경평가에 따라 풀어주고 정부의 말을 잘 들어 나무를 가꾸고 잘 보전한데는 풀지 말아야한다면 누가 이를 받아들일 것인가.

비해제지역 주민들에 대해서는 정부는 매수청구권이라는 카드를 써보겠다는 복안을 세워놓고 있다. 해당주민이 원할 경우 공시지가 수준으로 임야 잡종지등을 제외한 대지나 종교용지 등 대지성 용지에 한해 정부가 사들인다는 방침이지만 주민들의 요구수준과는 한참 거리가 있다. 수도권공청회에서 그린벨트 주민들은 산림지를 제외한 그린벨트 전지역의 즉각적인 전면해제를 요구했다. 여기에다 땅값 보상도 공시지가가 아닌 그린벨트 해제지역의 시가에 맞먹는 수준으로 보상해줘야 한다며 완강하게 버텼다.

상수원보호구역이나 군사보호구역 농업진흥지역 등 다른 계획제한구역 주민과의 형평성도 문제다. 현재 계획제한지역으로 묶여 있는 지역은 전국적으로 7만5,000㎢로 그린벨트면적의 14배, 금액으로는 최소 300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린벨트와 거의 비슷한 제약을 받고 있는 이들 주민들의 반발을 어떤 논리로 무마시켜야 할지 정부 당국자도 곤혹스럽다는 표정이다. 특히 농업진흥지역은 지정당시에도 재산권 제한을 우려한 주민들의 거센 반발에 직면, 상당한 후유증을 빚었다. 그린벨트 해제가 큰 폭으로 이루어질 경우 형평성 문제를 제기하며 상당수준의 규제완화를 요구하고 나설 것으로 보인다.

날개단 땅값, 투기열풍 조짐

요즘 돈좀 갖고 있는 사람은 그린벨트 소식에 가장 귀가 솔깃하다. 그린벨트 해제에 따른 개발전망으로 땅값이 천정부지로 솟을지도 모른다. 그린벨트가 ‘골드벨트’ 가 될 수도 있다는 기대감이다.

지금까지는 그린벨트시장은 예상밖으로 냉랭하다. 아직 해제지역이 명확히 밝혀지지 않은데다 정부가 토지거래허가구역 투기우려지역 지정등을 통해 투자심리를 꽁꽁 묶어놓았기 때문이다.

이같은 고요를 태풍전야에 빗대는 사람이 적지않다. 조만간 투기열풍이 몰려올지도 모른다는 우려다. 수도권의 경우 그린벨트지역은 대부분 ‘금싸라기’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린벨트에서 풀리면 땅에 대한 활용가치는 크게 높아진다. 도시계획이 수립되고 개발이 이루어질 경우 땅값은 날개를 달지도 모른다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 토지거래허가구역과 투기우려지역 등으로 엉성하게 법의 울타리를 쳐두기는 했지만 돈되는 곳이라면 어디든 넘나드는 돈의 흐름을 원천적으로 막지는 못할 것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우리나라에서 땅투기는 열병이자 콤플렉스다. 어느날 갑자기 길이 뚫리거나 용도가 바뀌면 벼락부자가 되기도 한다. 온갖 편법과 탈법이 난무할 가능성이 점쳐지는 대목이다. 그나마 토지거래허가구역은 그린벨트 해제에 맞춰 빠르면 내년 3월부터 단계적으로 구역지정이 풀릴 것으로 예상된다. 집권여당은 경기부양을 위해서라면 어느정도의 투기도 용인하겠다는 입장이다.

27년동안 닫혀있던 그린벨트의 뚜껑을 열자 집단이기주의의 걷잡을수 없는 불길과 망국적인 땅투기, 무분별한 개발로 인한 국토훼손 등 고통과 슬픔 절망 등 온갖 악폐와 재앙들이 쏟아질 조짐이다.

김병주·경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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