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의 대표적인 향토기업으로 80년 7월 신군부에 의해 해체된 동명목재 옛 사주측이 최근 국가 등을 상대로 한 재산반환소송 1심에서 승소함에 따라 파란이 일고 있다.

특히 93년 7월 5공 정권의 국제그룹 해체 결정이 헌법재판소로부터 위헌판결을 받은 것을 계기로 유사소송들도 법원에 계류중이어서 향후 신군부의 초법적 공권력에 대한 심판이 주목된다.

서울지법 민사합의 41부(재판장 나종태 부장판사)는 지난달 19일 옛동명목재 강석진(姜錫鎭·84년 작고) 사장의 아들 정남(政男·58·동명학원이사)씨와 딸 2명이 국가와 부산시 등 4개 기관을 상대로 낸 소유권이전등기말소 청구소송에서 “피고는 원고측으로부터 넘겨받은 35억원 상당의 토지 3필지를 돌려주라” 며 원고측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신군부 등장 이후 국보위 주도로 추진했던 동명목재 해체과정에서 강사장이 재산헌납 각서에 날인한 것은 인신구속 상태에서 강박에 의한 동의로 보이는 만큼 무효” 라고 밝혔다.

강씨 등은 이번 소송을 제기하면서 인지세 등 소송비용을 고려, 1차로 옛 동명목재 소유재산중 극히 일부인 부산 남구 용당동 136의1 용당세관 부지 4,500평 등 총 5,165평(소송금액 35억5,800만원)에 대해서만 지난해 4월 소송을 제기했었다.

그러나 이번 소송에서 강씨 등이 승소함에 따라 80년 국가에 강제 헌납한 동명목재 재산환수작업이 본격화할 전망이다.

강제헌납재산 현시가로 1조원대에 달해

당시 동명목재가 강제 헌납한 재산은 현재 부산해양청이 컨테이너부두로 사용중인 신선대부두 일대 49만평과 임야 11만평, 공장건물 7만평, 부산시가 부경대 등에 매각 또는 임대해 주고 있는 12만여평 등 토지만도 100만평을 넘고 부산투자금융과 제일은행 주식 등 유가증권을 포함하면 현시가로 어림잡아 1조원대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60, 70년대 한국의 간판기업중 하나였던 ‘목재왕국’ 동명목재는 1925년 강석진씨가 창업해 용당동 일대 49만평 부지에 공장창고 원목하역 부두시설을 갖춰 당시 국내 10대 기업에 포함된 부산 최대 향토기업이었다.

동명의 합판산업은 64년 정부의 수출특화산업으로 지정되면서 연 30%이상의 고성장을 거듭, 69~71년 3년 연속 국내 수출실적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그러나 동명은 79년 탈세문제로 조사를 받은 후 자금난에 시달리다 노조측이 사주측의 재산빼돌리기 등을 문제로 내세우면서 심각한 노사분규를 맞는 등 어려움을 겪다가 급기야 80년 6월 국보위가 ‘반사회적 악덕 기업인을 없앤다’ 는 명분으로 강 회장과 부인 고고화(작고)여사, 아들 정남씨 등이 기무사(당시 보안사)에 끌려가 장기 감금당한 채 전재산 포기각서에 서명날인을 강요당하게 된다.

동명은 이때 용당동 항만구역내 부지 49만평과 주택전용토지 11만평 등 60만평이 순부채 잔액 504억원과 상계 처리되고 전재산의 국가환수 조치로 공중분해돼 결국 55년의 역사를 마감했다.

이후 장남 정남씨는 88년 당시 노태우대통령 앞으로 몰수재산 환원을 청원했으나 해운항만청과 부산시로부터 “합법적으로 취득한 재산으로 돌려줄 수 없다” 는 회신만 받고 끓는 속을 삭여오다 지난해 4월 소송을 제기했다.

이번 판결로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진 곳은 옛 동명목재 토지를 이관받았거나 소유하고 있는 부산시와 부경대, 관세청, 부산해양청.

나머지 소송서도 승소할 경우 엄청난 파장

이들 기관은 신군부의 강제몰수 과정과는 별개로 정상적인 절차를 밟아 땅을 매입했다는 점 등을 내세워 서로 보조를 맞춰 항소 등 법적대응할 계획이나 동명측이 나머지 재산 반환소송에서도 승소할 경우 엄청난 사회적 파장을 몰고올 게 뻔하다.

부경대는 10만여평에 달하는 용당캠퍼스의 절반인 5만여평이 부산시로부터 매입한 동명목재 재산이었다는 점에서 추가소송 움직임에 가장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부경대 관계자는 “이번 소송과 관련된 토지는 비록 20평에 불과하나 이를 토대로 나머지 땅을 되찾기 위한 소송이 예상돼 걱정이 태산” 이라고 말했다.

동명측이 추가소송에서 승소할 경우 부경대는 공과·인문사회대 등 8,000여명의 학생이 수업중인 용당캠퍼스의 절반을 내줘야 한다.

또 부산 수영구 남천동 직원합숙소(부지 2,700여평 및 4층 건물)가 걸려있는 부산세관도 “대법원 판결 때까지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하겠다” 고 밝히고 있다.

부산 남구 용당동 일대 컨테이너 야적장과 부산해양청이 45개 중소기업체에 임대해 준 부지등 54만평도 동명목재의 재산으로 알려져 관련 업체들이 추가소송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부산시도 국가의 패소가 확정될 경우 동명측으로부터 취득한 재산중 제3자에게 매각한 재산은 부당이득금 반환문제, 현재 사용하거나 임대하고 있는 자산은 소유권이전 및 임대료 등 부당이득금 반환문제가 예상돼 대책 마련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실추된 명예, 이번 소송통해 회복하겠다”

이번 판결과 관련, 강씨의 장남 정남씨는 최근 기자와 만나 “재판부가 신군부측의 공권력행사가 부당했음을 인정한 것” 이라고 소감을 밝히며 매우 자신감에 차 있었다.

정남씨는 이 자리에서 80년 11월 당시 국보위가 작성한 ‘동명목재처리 종결보고’ 란 문건 하나를 공개했다.

문건 말미에는 “처리된 모든 사항(재산헌납)은 향후 법률적 차원에서 쟁의대상이 될 수 없다” 고 명기돼 있다.

이 보고서는 당시 국보위 재무·교통분과위가 작성, 재무·경제기획원장관, 국무총리 결재를 거쳐 당시 전두환(全斗煥) 대통령이 최종 사인한 것이다.

정남씨는 “그동안 저희 가족들이 겪은 정신·물질적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며 “그러나 이번 소송은 재산을 찾는 것 보다는 실추된 명예를 회복하는데 촛점이 맞춰져 있다” 고 말했다.

그는 또 “동명목재의 나머지 재산에 대한 추가 소송여부, 승소시 재산 사용계획 등에 대해서는 아직 밝힐 단계가 아니다” 면서 “하지만 여건이 된다면 선친의 유지인 교육·문화·사회사업 등에 기여하고 싶다” 고 말했다.

“80년 신군부에 의해 가족들과 함께 58일간 감금당했고 빈털털이가 돼 미국에서 야채장사도 했다” 는 그는 “더 이상 끔직한 과거를 기억하기 싫다” 며 가슴에 품은 ‘앙금’ 의 일말을 털어놓기도 했다.

부산=목상균·사회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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