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보다 더 잘 할 수는 없다”

98년 루키시즌을 마감하면서 박세리가 당연히 받아야 할 찬사다. 투어 18번째 대회였던 자이언트이글클래식 우승이후 참가한 10개 대회에서 한차례 공동10위에 랭크된 것을 빼고는 부진을 보인 것이 아쉽긴 하지만 시즌 4승, 메이저대회 2연승, 상금랭킹 2위, 올해의 신인상 수상이라면 앞날이 구만리 같이 창창한 어린선수지만 과연 다시 이런 성적을 올릴 수 있겠나 하는 두려움 까지 생길 정도의 호성적이다. 박세리의 ‘미국판 어머니’ 라는 백전노장 낸시 로페스가 꼭 20년전의 루키 시즌에 이룬 성적(시즌 9승, 올해의 선수, 상금 및 최저타수 1위)에 비하면 한수 아래라 할지 모르지만 그때와 지금의 대회 규모나 선수층을 생각하면 박세리쪽에 점수를 더 줄 수도 있다. 다른 것은 다 접어두더라도 꼭 1년전 이맘때쯤 우리 한국선수가 이런 대단한 일을 해낼거라고 예측한 사람이 하나나 있었는가!

미국의 정규골프투어는 PGA, LPGA, SPGA(시니어 대회) 할 것 없이 모두 1월초나 중순에 시작되어 11월 초 혹은 중순에 끝을 맺는 대장정이다. 시즌이 끝이나도 이런저런 번외경기(세개투어 대표가 참가하는 스리투어 챌린지나 PGA와 LPGA 선수가 짝을 이루는 JC페니클래식 등)가 있기 때문에 휴식을 취하고 제충전할 수 있는 시간은 불과 두달도 안된다. 이 천금같은 시기에 박세리는 해야 할일이 너무 많다. 특히 내년시즌은 운동선수라면 누구나 부담스러워하는 ‘2년생 징크스(Sophomore Jinx)’가 기다리고 있지 않은가?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자기스윙을 찾는 것이다. 골프란 것이 불과 1.5초 정도에 끝나는 동작의 연속이라고 볼때 ‘잘나갔을 때의 스윙’ 을 찾는 노력이 다른 어떤 훈련에 앞선다고 할 수 있다. 최근 보도에 따르면 티칭프로를 데이비드 레드베터에서 타이거 우즈를 지도하는 버치 하몬으로 바꿀 것이라고 한다. 모두 유능한 코치들이지만 하몬도 작년에 오랜 제자인 그렉 노먼으로 부터 결별을 선언당한 과거가 있다. 즉, 스승이 바뀐다고 해서 모든 것이 다 좋아지지는 않는다는 얘기다. 선택은 선수자신의 의사를 최대한으로 따르되 시기는 빠를 수록 좋다.

짧은 기간 이지만 그속에서도 다만 며칠이라도 정말 푹 쉴 수 있는 기회를 가져야 한다. 시즌후 인터뷰에서 “막판 부진을 거듭할때 심리적으로 부담이 가지 않았느냐” 는 질문에 박세리는 “골프란 항상 잘 될 수가 있는 운동이 아니지 않은가?” 하고 대답했다. 정작 본인은 심한 부담감을 느끼지 않았다는 얘기다. 이말이 사실이기를 바라는 것은 골프는 멘탈(Mental)스포츠 이기 때문이다. 집중력이 흐트러지면 게임은 보나마나다. 만약 내년 시즌에, 그것도 초반부에 부진이 계속 된다면 외국 언론으로 부터 가공할 질책과 비아냥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 그들이 이번 시즌 성적에 깜짝 놀라면서 환호를 해주었지만 내심 박세리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이 그렇게 달갑지는 않았을 것이다. 성적도 성적이지만 이제는 인터뷰시에 가끔 노출됐던 “동문서답” 도 그들은 너그럽게 보아 넘기지 않을 것이다. 골프채를 놓고 며칠을 쉬어도 또 다른 준비가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금년시즌 박세리는 너무 많은 대회에 출전했다. 첫 시즌이기에 다소 무리하게 잡은 스케쥴을 탓할수는 없다. 하지만 5주, 6주를 계속 뛴다는 것은 육체적, 정신적으로 너무 무리라는 지적이다. 바이오 리듬이나 대회의 중요성 등을 감안하여 탄력적으로 운용되어야 한다. 항상 문제로 떠오르는 매니지먼트에 관해서 국내의 모 전문가는 외국 굴지의 업체에 일임하는 것을 반대하며 그이유를 일본선수들의 예로 삼았다. 하지만 일본선수들의 방식이 우리의 귀감이 되어야 한다는 어떤 당위성도 없다. 지금처럼 개인 메니저, 삼성 세리팀, 부친 등으로 삼원화 되어있는 관리부분은 어떤 형태로든지 일원화 되어야 한다. 골프는 철저한 개인 운동이므로 여기에도 ‘세리 생각’ 을 최대한 고려해 주어야 한다.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