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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이름으로 보는 조상들의 지혜] 중구 정동 중명전

경운궁(慶雲宮:덕수궁)의 중명전(重明殿:서울시 유형문화재 제53호).

지금은 덕수궁의 돌담밖, 미국 대사관저옆 한갓진 곳에 외로이 역사의 서글픈 애환을 머금고 서있다.

한일강제합방조약은 1910년 8월 22일 조인됐지만, 사실상 그 보다 5년 전인 1905년 11월 17일의 을사늑약(乙巳勒約) 체결로 대한제국은 종언을 고했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당일 한국 주둔 일본군 사령부 휘하 13사단은 광화문앞에서 덕수궁에 이르는 큰 거리에서 무력 시위를 벌였다.

완전 무장한 보병이 전진 후퇴 공격 연습을 하는 체 하면서 장안 여덟 성문을 점거했다. 서울의 온 시가를 내려다 볼 수 있는 남산 왜성대(倭城臺:현 식물원 자리)에 야포 수십문을 배치, 덕수궁을 향해 포열을 가지런히 했다. 물론, 고종황제와 조정 중신들에게 이 사실이 통고되었다. 총포 소리는 들리지 않아도 황제와 대신들은 10년 전에 있었던 명성황후 시해사건의 악몽이 떠올라 공포의 침묵 속에 빠져 있었다.

그날 저녁 착검한 총으로 무장한 일본 보병이 황궁에 감히 들어가 요소요소에 진을 친 다음,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는 조선조 사령관인 하세가와(長谷川 好道)대장과 하야시(林權助)공사를 대동하고 황궁에 들어갔다.

그리고 어전회의를 강요, 현안 곧 을사늑약 가결을 재촉하던 곳이 바로 이 ‘중명전’이다.

외국사신의 강요에 따라 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진행된 어전회의란 세계사에서 전무후무한 것이었다.

학부대신 이완용(李完用)이 작은 목소리로 자기인들 이 조약을 좋아하겠느냐며 “내각 전원이 이 조약 조인에 부표를 던지면 이토는 직접 폐하에게 조인을 요구할 것입니다. 폐하는 거부할 것이 자명한데 그렇게 되면 일본은 어떤 수단을 써서든지 압박하고 나올 것이며 그때는 조약 조문의 일언반구도 고치지 못하고 말 것입니다. 그래서 일본 요구에 응할 수 밖에 없으며 다만 외교에 국한해서 한국이 실력이 생길 때까지 위임한다는 조건부로 하는 것이 실리를 취하는 것입니다”라고 구구한 말을 늘어 놓았다.

이에 농상공부대신 권중현(權重顯), 군부대신 이근택(李根澤), 내부대신 이지용(李址鎔)이 찬성했고, 처음에 반대했던 박제순(朴齊純) 마저 찬동하니, 이들이 이른바 매국노(賣國奴) 을사오적(乙巳五賊)이다.

이 치욕의 을사늑약으로 외교권을 일제에 넘겨 줬다는 의미가 있지만 무엇보다 나라의 주권을 상징하는 ‘국새(國璽)’를 탈취 당한 것이다.

그 치욕의 현장이 바로 중명전이다. 광무 10년(1906년)에는 이곳에서 순종비(純宗妃) 윤씨(尹氏)의 가례시(嘉禮時)외국의 사절을 초청, 연회를 베풀기도 했던 곳이다. 곧음을 상징하는 정동(貞洞)에 중명전. 글 뜻대로라면 ‘밝음이 거듭되는 큰 집’이었어야 함에도 불구, 나라의 암울한 어두운 그림자가 더 겹쳤던 역설적인 현장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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