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방송법이 난기류에 휩싸였다. 16일 아침 국민회의의 느닷없는 발표. 국민회의는 이번 정기국회에서 통합방송법의 상정을 유보한다고 했다. 이유는 “광범위한 국민적 논의가 더 필요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방송계에서는 “핑계나 좀 그럴 듯하게 댈 것이지”라며 반발하고 있다. 방송계가 한꺼번에 들고 일어날 기미가 보이자 국민회의는 20일 두번째 발표를 했다. “가장 고통받고 있는 케이블TV업계를 위해 종합유선방송법만 이번 회기에 개정하겠다”는 것이다.

케이블TV업계는 한시름 놓은 셈이지만 전체 방송계는 입장이 그렇지 못하다. “백년을 내다봐도 모자라는 한 나라의 정책이 우는 아이 젖주는 식”이라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통합방송법의 유보가 방송계 전체의 반발을 부른 이유는 국민회의의 “여론 수렴을 더 하기 위해서”라는 이유가 설득력이 없기 때문이다. 언론관련자에게 통합방송법에 대한 논의는 이제 지긋지긋하다. 95년 4월부터 시작돼 3년7개월을 끌고 있는 방송법은 공청회, 관련 학회, 세미나등 의견수렴과정이 그야말로 기록적이었다. 대규모 세미나만 100회가 넘고 크고 작은 학회, 방송관계기관의 것을 모두 합하면 500회가 넘는다. 이런 행사에 참가한 언론관련학자중 많이 참가한 사람은 50회가 넘는다. 지긋지긋하다는 말이 이해가 간다. 업계의 이권이 대립되는 부분은 그동안 수십차례 협의를 거쳐 최대한 거리를 좁혀놓은 상태이다. 특히 이러한 갈등이 가장 심했던 부문은 바로 종합유선방송법에 해당되는 케이블TV였다.

국민회의의 발표 직전 국정감사에서조차 여당의 문화관광위 소속 의원들은 “훌륭한 법안”이라며“법이 통과되면 방송계의 문제점은 일거의 해소될 것”이라고 공공연하게 자화자찬했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통합방송법안에 아직도 국민적 논의가 필요하다는 여당 주장에 방송계가 동의할 리 없다. “더 논의할 부분이 무엇이고 어떻게 바꾸겠다는 것인가”

사실 16일 오전 전격적인 유보발표가 있기 직전까지 여당의원들조차 이번 회기내 통합방송법은 꼭 통과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의원들은 물론 문화관광부의 방송실무를 담당하는 공무원들도 국민회의의 발표에 어리둥절해 했다. 발표 직후 여당의 한 고위당직자는 “더 이상 묻지 말라”며 곤혹스런 표정을 지었다는 후문이다.

그래서 의혹이 커지고 있다. 의혹은 크게 두 가지이다. 여당이 방송사업권과 관련한 이권에 휘둘려 눈치볼 시간을 벌려는 의도가 아니면, 방송독립에 대한 의지가 퇴색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번 통합방송법은 방송독립의 여망이 담긴 것이었다. 민주적인 방송위원회를 만들어 방송에 관한 모든 업무를 담당케 함으로써 정부와 정권이 방송에 직접 개입할 수 없도록 했다. 그동안 ‘정부의 홍보기구’라는 오명 속에서 방송에 임해야했고, 또 그러한 방송에 속을 수 밖에 없었던 방송인과 국민 모두에게 이번 통합방송법은 큰 의미가 있는 것이었다.

야당시절 온갖 어려움을 견디며 방송독립을 외쳐왔던 지금의 여당이 진짜 그 의지를 잃었다면 그 반발은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3개월간 국민회의가 어떤 이야기를 나누고 어떻게 법안의 내용을 바꾸는지 모두가 눈여겨 감시할 것이다. 크게 바뀌는 것 없이 시간만 끈다면 그 또한 호된 비판을 받을 것이다.

권오현·문화과학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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