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대중문화가 밀려온다. 준비는 부족한데 일본의 대중문화는 속속 상륙하고 있다. 개방일정이 발표된 이튿날인 10월 21일 구로사와 아키라(黑澤明)감독의 ‘가게무샤’(影武者)수입심의신청이 한국공연예술진흥협의회에 들어오더니, 10월 27일에는 한·일 공동제작 영화 ‘사랑의 묵시록’이 일본영화 수입 1호로 기록됐다.

정부는 10월 21일 일본의 영화, 비디오, 일본어판 출판만화·만화잡지의 수입을 허용한다고 공식발표했다. 물론 제한을 두었다. 영화의 경우 한·일 공동제작 영화(한국측 20%이상 출자), 한국영화인이 감독·주연한 영화, 일본배우가 출연하는 한국영화, 칸 베니스 베를린 아카데미등 4대 국제영화제 수상작(감독상·작품상)만 즉시 개방키로 했다. 비디오는 국내상영된 일본영화 비디오로 제한했다. 대중문화공연 음반 영화 애니메이션 비디오 게임(새 영상물) 출판만화 방송등 8개 분야중 일부를 제한적으로 개방함으로써 누누이 강조해온‘단계적·점진적’개방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았다.

신낙균 문화관광부장관은 개방원칙에 대해 “양국간 불행한 역사와 관계가 적은 분야부터, 문화적 가치가 높은 분야부터 단계적이고 점진적으로 개방하되 가시적 성과가 나타나도록 했다”고 말했다. 뒷 얘기지만 정부는 방일 중 ‘속도감 있는 개방’을 약속한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방침에 따라 ‘완전 개방목표 시한’(2002년)을 밝히는 방안을 검토했으나 국민감정을 고려, 삭제했다. 신장관은 “개방방침을 정할 때 국민정서와 감정을 가장 중요시했다”고 말했다. 결국 개방일정은 김대통령의 적극적 개방방침과 국민의 정서 사이에서 절충된 셈이다.

일본문화상품이 한국시장에 미칠 영향은 아직 정확히 연구되지 않은 상태다. 영화시장은 5~10편의 일본영화가 들어올 경우 국내시장의 7~10%, 비디오는 수년내 10% 가량을 점유할 것이라는 게 자체·용역조사를 토대로 한 문화부의 전망이다. 일본어판 만화는 시장성이 낮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문화부는 개방 1~2년 뒤 분야별 일본상품의 잠식규모를 공연(현재규모 68억원) 6억8,000만원, 음반(5,420억원) 271억~542억원, 영화(2,384억원) 167억~238억원, 애니메이션(540억원) 424억원, 비디오(1조230억원) 1,535억원, 게임(1조6,205억원) 1조1,449억원, 출판만화(3,991억원) 1,878억원, 방송(3조 6,343억원) 1,817억원으로 추정하고 있다.

일본대중문화 개방은 다른 나라의 대중문화와 동일하게 취급한다는 것이지 무조건적 수입을 의미하지 않는다. 따라서 앞으로도 일본대중문화는 공연법, 영화진흥법등 관련법상 각종 심의, 수입추천, 허가등의 절차를 거쳐야 한다. 그동안 일본대중문화는 이같은 심의·수입추천·허가대상에서 제외됐었다.

대중문화는 곧 대중문화상품. 정부는 우리 문화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게 가장 효과적 대책이라고 보고 있다. 정부는 최근‘국민의 정부 새문화정책’을 발표, 정부의 문화산업진흥정책을 법률적으로 뒷받침할 문화산업기본법을 99년 상반기까지 제정하겠다고 밝혔다. 또 올해 말까지 문화산업 발전 5개년 계획을 수립, 내년부터 시행키로 했다.

문제는 재원. 정부는 99년부터 2003년까지 정부출연금, 융자금, 채권, 문화부가 운영하는 기금, 공공단체 지원금등으로 5,000억원의‘문화산업진흥기금’을 조성한다는 방침이다. 문화산업진흥기금은 문화산업 기반구축, 기술개발, 첨단문화상품 제작지원등에 쓰일 예정이다. 결국 정부의 계획은 성공적인 기금조성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신장관은 최근 중견언론인 모임인 관훈클럽초청 조찬간담회에서 “일본이 11월부터 제공할 예정인 30억달러의 차관 중 5억달러를 문화산업발전에 사용하는 방안을 관련부처와 협의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정부는 5억달러를 고부가가치 문화상품 제작자와 방송영상물 제작자 지원등에 집중투자한다는 계획이다.

정부는 또 관계부처와 함께 불법적으로 이뤄진 일본대중문화상품의 유통과정을 양성화해 저질·불량문화의 확산을 최소화하고 우리대중문화의 일본진출을 적극 지원하기로 했다.

동국대 원용진(41·신문방송학)교수는 “지금까지 논의만 무성했을 뿐 일본대중문화에 대한 공부는 전혀 안 되어 있다”며 “늦었지만 정부 문화산업계 모두가 연부를 해야 실질적이고 효과적인 대책을 마련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서사봉·문화과학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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