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초 한국을 찾은 제프리 카젠버그가 이런 얘기를 했다고 한다. “드림웍스라는 애니메이션은 디즈니것과 다르다. 전통, 동화적인 느낌, 어린이란 말에서 벗어나겠다. 스필버그는 ‘터미네이터 2’‘인디아나 존스’‘아라비아의 로렌스’같은 액션대작을 애니메이션으로 만들고 싶어한다. 귀여운 아이들의 만화영화가 아니다. 때문에 이야기 전개방식이 다르다.”

카젠버그가 누구인가. 심각한 경영난에 빠졌던 디즈니 회장으로 있으면서 ‘인어공주’‘미녀와 야수’‘라이온 킹’을 만들어 부활의 신화를 이룩한 애니메이션의 대부다. 그가 스필버그와 손을 잡고 자신을 ‘토사구팽’한 디즈니사에 선전포고를 하고 나섰다. 당연히 디즈니가 갖고있는 무기여서는 안된다. 같은 무기라도 성능이 좋든지. 그에겐 스필버그가 있다. 그의 상상력과 자신의 테크닉이면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내세운 것이 성인들을 위한 만화영화.

‘개미’가 바로 첫 신호탄인 셈이다. 한달만 있으면 디즈니에서 똑같은 소재, 주제의 ‘벅스 라이프’가 나온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다분히 선제공격용이다. 그러면 그 공격이 얼마나 세고 날카로운가. 그것을 측정하기 위해선 아무래도 얼마나 다른가, 새로운가를 찾아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디즈니 작품에는 몇가지 공식이 있다. 아름다운 음악, 주로 동물로 설정되는 코믹한 주연급의 등장, 중간중간 신나는 군무, 동화같은 밝은 색채가 특징이다. 웃음과 위기와 기쁨으로 이어지는 이야기가 있고, 씁쓸한 느낌을 주는 영웅주의나 미국식 정의가 있다.

‘개미’역시 여기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지만 많은 차별성을 보인다. 먼저 전체 톤을 채도를 낮춰 부드럽게 했다. 물론 컴퓨터로만 만들어지는3D(차원)디지털 애니메이션이 갖는 차가운 금속성을 완화시키려는 의도지만 동화같은 이미지를 지우는데 역할을 했다. 실사영화처럼 감정의 변화와 특징을 분명히 했고 그것을 살리기 위해 다양하고 섬세한 표정들을 개발했다. 구성에서도 차이를 느낄수 있다. 우화적이고 동화적인 에피소드를 통해 무의식적으로 주제를 깨닫게 하는 방식이 아니다. 장군개미의 입을 통해 개미사회의 전체주의적인 가치관을 노골적으로 말한다. 주인공 개미인 Z의 반발도 직접적이다.

영화는 그가 개미공주와의 사랑을 이뤄나가는 과정을 아름다운 감성으로 접근하지 않는다. 그들의 사랑은 이 영화의 궁극적인 목표인 자기 정체성 찾기, 개인으로서 자유로운 삶의 가치를 실현시키는 수단으로 선택된 것이다. 이런점에서 ‘개미’는 또 다른 의미에서 카젠버그가 아니라 스필버그의 작품이다. 개미에게는 엄청난 위력과 위험으로 다가오는 돋보기의 광선이나 빗물방울, 아이의 운동화에 붙은 껌을 소재로 연출해낸 스릴과 액션은 분명 ‘인디아나 존스’나‘딥 인팩트’와 닮아있다.

캐릭터들을 스타들의 모습과 비슷하게 창조하고, 그들에게 목소리 연기를 맡긴 것도 스필버그다운 아이디어. 우유부단하지만 조심스럽게 자기 주장을 펴는 Z는 영락없는 우디 앨런이고, 친구인 우직하고 힘센 병정개미 위버는 누가봐도 외모부터 실베스터 스탤론이다. 진 헤크먼에게 장군개미인 맨디블의 목소리 연기를 맡긴 것도 모두 성인관객을 겨냥한 상업적 전략이다. 인간의 눈으로 돌아와서는 개미의 세상이 얼마나 작고, 그렇지만 얼마나 인간의 세상과 닮았는지를 보여주는 마지막 솜씨까지.

그래도 ‘개미’는 여전히 정감이 덜하고, 때론 기계적 움직임이 그들을 목각인형이나 로봇처럼 보이게 한다.‘토이 스토리’보다는 나아졌지만, 컴퓨터가 가진 한계는 어쩔수 없는 모양이다. /김민지·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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