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외환위기를 맞게된 데에는 경상수지 적자 누적, 단기외채 증가, 경기악화에 따른 금융부실 채권 확대 등 여러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였으나, 외환위기가 본격적으로 진행되기 시작하면서부터 나타나기 시작한 결과는 외국인 자금의 이탈이었다. 외국인 투자자금의 이탈은 곧 시장 경제의 마비를 불러왔고 국가부도 위기로 치닫게 만들었다.

즉 외환위기의 본격적인 진행은 바로 외국인 투자자금의 이탈로부터 시작되었던 것이다. 외국인 투자자금의 이탈은 대외 교역에 필요한 달러화를 한국 외환시장에서 급격히 감소시켰다. 그 결과 한국 원화는 많음에도 불구하고 달러화가 부족함에 따라 달러수요량이 달러 공급량을 초과하게 되었다.

자연히 수요 공급의 법칙에 따라 달러화 가치가 폭등(원화 환율의 상승, 원화 가치의 하락)하였다. 이처럼 외국인 자금이 이탈함에 따라 환율이 폭등함으로써 우리나라의 국부 가치는 다른 나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떨어지고 말았던 것이다. 그 피해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다.

외국인 투자자금 이탈이 외환위기 불러

그 중에서도 가장 큰 피해는 역시 실업이다. 외환위기 이전에는 4%에 불과하던 실업률이 무려 8%에 육박함으로써 수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었다. 금리도 무려 10%에서 30% 가까이 상승함에 따라 외국인 투자자금을 끌어들이기 위해 더 많은 이자를 지불해야만 했던 것이다.

수출도 마찬가지다. 외환위기 이전에는 1달러당 약 800원이었으므로 자동차 한 대를 1천만원(12,500달러)에 수출하였다고 가정하자.그런데 외환위기 이후에는 달러화 부족으로 인해 달러당 두배 이상인 2,000원 가까이 상승함으로써 똑같이 1천만원 가치의 자동차가 이제는 5,000달러로 폭락하게 되는 것이다.

즉 원화가치가 150%정도 하락함에 따라 자동차의 수출가격도 원화가치로 따져보면 똑같은 1천만원이지만 달러로 환산하면 외환위기 이전에는 자동차 한 대를 팔면 12,500달러를 받을 수 있었으나,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이제는 자동차 한 대를 팔아봐야 5,000천 달러밖에 얻지 못하는 꼴이 되는 것이다. 이 얼마나 큰 국부의 손실인가? 그만큼 외국인 투자자들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자본주의의 꽃이라고 비유되는 증권시장은 어떻게 되었는가? 우리나라 상장사의 시가총액은 지난 96년4월 160조원으로 최고치를 기록한 뒤 IMF 구제금융 지원후 증시침체 여파로 98년 6월에는 61조원으로 급감했다. 무려 100조 원의 기업가치가 하락하였던 것이다. 이처럼 엄청난 국부의 손실을 가져온 원인은 바로 외국인 투자자금, 즉 달러화의 유출이었던 것이다.

97년 외환위기 이전인 10월에 우리나라의 공식적인 외환보유고는 305억 달러였으나, 외환위기 발생시점인 11월부터 실제 한국은행이 사용가능한 가용외환보유고는 73억 달러에 그쳤던 것이다. 무려 200억 달러가 한달만에 유출되었던 것이다.

외환위기를 겪지않았던 동남아 국가, 예를 들면 싱가폴, 대만, 홍콩의 경우에는 그 당시 외환보유고가 평균 600억 달러를 상회하였다. 이처럼 우리나라의 외환위기를 앞당겼던 이유는 바로 직접투자가 아닌 단기적인 외채에 비유되는 투기성 핫머니, 즉 간접 외국인 투자자금(증권, 채권 투자자금)의 이탈에서 비롯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나라가 외환위기를 단기적으로는 극복했다고 하지만 직접투자에 기인한 외국인 투자자금의 유입이 아니라 핫머니성격이 짙은 간접투자자금의 유입으로 외환위기를 벗어나고 있다면 그것은 잘못된 위기 처방일 것이다.

외국자본 유입, 경제회복의 청신호

외환위기를 겪은지 1년이 지난 시점인 최근에 외국인 투자자금의 유입이 다시 급격히 증가되고 있다. 특히 증권시장을 중심으로 한 외국인 투자자금의 유입이 크게 늘어나면서 불과 한 달여 만에 300포인트 대의 주가를 무려 160포인트 상승한 460포인트대까지 상승시켜 놓고 있다. 이 또한 외국인 투자자금의 영향이 매우 큰 것이다. 외환위기 이후로 우리나라의 주식시장의 흐름은 외국인의 움직임에 크게 좌우되고 있는 실정이다.

외환위기 이전에는 약 10%에 불과하던 외국인 투자자의 비중이 외환위기 이후에는 그 2배인 약 20%로 크게 증가하였다. 이처럼 외국인 투자자들의 영향에 힘입어 상장회사의 시가 총액이 8개월만에 100조원대를 돌파했다. 11월 20일 현재 증권시장의 시가총액은 100조9천억원에 달해 지난 98년 3월 21일 101조4천억원 이후 최대수준을 나타냈다.

이처럼 시가총액이 다시 100조원대를 회복한 것은 한국증시에 대한 외국인의 평가가 좋아진데다 엔화강세및 저금리, 저유가 등 ‘신3저’ 의 호기가 지속됨에 따라 한국의 경제가 조기에 회복 가능하다는 기대심리가 크게 증가하였기 때문이다.

외국인 투자 총계(직 간접투자및 기타 투자 포함)를 보면 96년 480.7억 달러에 달하던 투자규모가 97년에는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크게 감소한 179.1억 달러로 줄어들었다.

98년 올해에도 외국인 투자자금은 더욱 줄어 약 100억 달러에 그칠 전망이며, 99년인 내년 정도에 가서야 서서히 200억 달러이상으로 회복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외국인 투자자금이 무조건 증가한다고 경제가 회복되는 것은 아니다. 이미 밝힌 바와 같이 외국인 간접투자, 즉 증권이나 채권투자보다는 외국인 직접투자, 즉 합작회사 또는 M&A 형태로 자금이 유입되어야 경제의 회복 속도를 앞당길 수 있다.

외국인 직접투자의 증가를 유도하기위해 우리는 1년여 동안 기업매각과 관련된 대부분의 규제를 철폐하는 등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그 결과가 1년이 지난 지금 서서히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그 신호가 증권시장의 주가 회복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IMF 자금의 지원및 수출증대 등으로 이제 우리나라의 가용 외환보유고도 450억 달러를 넘어섰다. 만약 무디스사 등 국제 신용평가기관이 우리나라의 신용등급을 투자 부적격 국가에서 투자 적격국으로 전환시킨다면 우리나라는 외환위기 이전과 같은 신용등급을 유지하게 될 것이다.

이 경우 외국인 투자자금의 유입은 더욱 증대할 것이고, 주가 회복에 따른 기업가치의 회복으로 기업들은 투자 자금을 증권시장으로부터 다시 조달할 수 있게돼 투자가 촉진됨에 따라 일자리도 다시 창출되어 실업률도 줄어들 것이다.

외국인 투자자금의 유출이 우리나라를 외환위기로 고통을 안겨 주었다면 이제는 반대로 외국인 투자자금의 유입이 우리나라의 경제를 회복시키는데 큰 역할을 할 것으로 전망된다.

천일영·현대경제연구원 동향분석실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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