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4일 새벽2시30분 서울 강남구 신사동 건물 지하1층‘블랙캣’이라는 간판을 단 한 단란주점. 족히 100평은 돼보이는 내부에는 대형스크린을 갖춘 중앙홀과 12개의 룸이 갖춰져있고 바닥에 고급스런 카페트가 깔려있다. 꽁꽁 걸어잠근 출입구 앞에는 20대 초반으로 보이는‘삐끼’두명이 무전기를 들고 이리저리 오가며 호객행위를 하고있다.

“아니 무슨 단란주점에 아가씨도 없어.” 멋모르고 이 단란주점을 찾은 손님이라면 으레 튀어나올 법한 말. 5평 남짓한 밀실룸 한 칸에는 20대 여성 4명이 술을 마시고 있고 옆자리에 남자접대부가 1명씩 붙어 앉아 술시중을 들고있다. 이른바‘호스트바’. 룸 한 켠에서는 신나는 음악에 맞춰 남자접대부들이 요란한 춤을 추어댄다. 불법영업 첩보를 입수한 서울지검 소년부팀이 급습하자 남자접대부들과 여자고객들은 허둥지둥 몸을 숨기느라 정신이 없다. 하지만 검찰에 끌려와 조사를 받으면서부터는 점차 당당해진다.“내가 뭘 잘못했다고…”

이날 검찰에 연행된 8명의 여자고객 중에는 여대생 1명과 대학원생 1명이 끼어 있었고 나머지 6명도 미혼의 직장여성. ‘호스트바 주요고객은 유흥업소 접대부’라는 인식은 이제 옛말이 돼버린 셈이다. 이들이 검찰에서 밝힌 호스트바를 찾은 이유는 한결같이“호기심 때문에”다. 심지어 한 직장여성은 “다음달 28일 결혼할 예정인데 그전에 이런 세계를 한번 경험해보고 싶어서 들렀다”고 천연덕스럽게 말하기도 했다.‘남자마담’정모씨는 검찰에서“주로 여대생이나 직장여성이 많이 찾아오고 유명 연예인도 가끔 찾는다”며‘가게자랑’을 늘어놓았다.

남자들이 단란주점이나 룸살롱에 가서‘영계’를 선호하듯 호스트바를 찾는 여자고객들도‘남자영계’를 선호하기는 마찬가지다.‘블랙캣’의 남자접대부 40여명은 모두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 25살만 넘으면 호스트바에서는‘환갑넘은 노인’취급을 받는다는게 이들의 말이다. 준수한 외모도 남자접대부들이 갖춰야할 필수조건. 심지어 채용 당시 신체검사까지 받기도 한다. 한 남자접대부는 “이쪽에서 일하려면 여자고객들이 한눈에 반할수 있을만한 외모가 필수예요. 어떤 손님들은 맘에 안들면 여러번‘퇴짜’를 놓기도 하죠”라며 으쓱해한다.

남자들에겐 호스트바에서 일하는 것이 그리 ‘손해보지 않는 장사’라는게 남자접대부들의 공통된 주장. “처음엔 정말 환상적이었어요. 좋아하는 술 공짜로 마시고 여자들과 함께 즐기고 게다가 돈까지 짭짤하잖아요.” 이들이 술시중을 든 대가로 지불받는 팁은‘10만원 + 알파’. 하루에‘한탕’만 뛰어도 한달이면 최소 300만원의 수입은 보장되는 셈이다. 이들 사이에서는 ‘선수’라는 호칭으로 통하는 남자접대부들의 업무는 단순히 술시중에 그치지 않는다. 조금이라도 더 많은 수입을 얻기위해 저녁부터 시작되는 고객유치활동은 이들에겐 필수. 주로 강남에 물좋은 나이트클럽을 찾아 반반하고 끼있는 아가씨들에게 얼굴을 익히고 명함을 돌리는 방법이 제일 확실한 방법이다. 또 술자리가 끝나고 외박을 나가게 될 경우 수입이 더욱 짭잘해지는 것은 물론이다. 검찰조사에서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적지않은 경우 손님들과 눈이 맞으면‘2차’를 나가는 것은 이 업계에서는 공공연한 비밀이다. 손님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대개 외박을 하고난 뒤 받는 돈은 20만~30만원 가량된다는게 이들의 설명. 이렇게 쉽게 돈을 벌수 있다보니 이날 연행된 남자접대부 중 가장 어린 신모(18·Y공고3)군은 “훈방돼서 풀려나도 다시 호스트바에서 일하겠다”고 말해 수사관들을 당혹스럽게 했다.

호스트바의 역사는 철저히 밤에 이뤄진다.‘블랙캣’의 공식 영업시간은 새벽1시부터 오전 7시까지. 처음에는 주요고객인 유흥업소 접대부들의 퇴근시간에 맞춰 이 시간대를 택했지만 고객층이 바뀐 지금도 영업시간은 여전하다.

‘은밀하게 술마시고 은밀히 즐기고 싶은’여성들에게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아도 될 시간대이기 때문이다. 특히 이중에서도 새벽3시~4시가 그야말로‘황금시간’. 주말의 이 시간대면 룸이 없어서 손님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는게 이들의 말이다.

‘블랙캣’이 개업한 것은 9월초지만 구속된 업주 김봉선(34)씨가 호스트바 영업에 발을 들여놓은 것은 벌써 3~4년전. 김씨는 경찰이나 구청의 단속을 피하기위해 3~4개월 마다 장소를 옮겨다니며 영업을 계속 해왔다. 김씨는 “대부분의 호스트바가 단속을 피해 계속 장소를 바꿔 영업을 하고있다”며 “어떤 호스트바는 한달마다 장소를 바꾸기도 한다”고 털어놓았다. 공식적인 집계는 불가능하지만 이렇게 은밀히 영업을 하는 호스트바가 서울에만 적어도 100여곳은 되지 않겠느냐는 것이 검찰관계자의 설명이다.

이렇게 호스트바가 우리사회에 급속히 확산되고 있지만 이를 규제할만한 법규정은 마땅히 없는 것이 현실이다. 실제로 검찰이 ‘블랙캣’에 대한 단속을 벌여 적용한 법은 고작 식품위생법 위반. 유흥업소 신고를 하지않고 시간외 영업을 했다는 것이다. 남자접대부를 고용해 여성들에게 술시중을 들게했다는 것 자체는 법적으로 아무런 하자가 없는‘정상영업’인 셈. 검찰은 업주 김씨를 구속하고 ‘남자마담’4명만 불구속기소했을 뿐 40여명의 남자접대부들과 여자고객들은 마땅한 적용 법규정이 없어 훈방조치한뒤 돌려보낼 수밖에 없었다.

남자들이 찾는 단란주점이나 룸살롱은 문제삼지 않으면서 호스트바에 대해서만 도덕성을 묻는 것은‘남성 우월주의’적 시각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지적도 있는 것이 사실. 이날 연행된 한 여성고객도 “남자들만 접대받으란 법이 있느냐”며 오히려 따져묻기까지 했다.

하지만 이 사건을 맡은 서울지검 소년부 고범석검사는 “남자접대부들이 수년간 이 일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순간의 쾌락과 돈을 위해 몸과 마음을 쉽게 버리는 것이 안타깝다”며“여자고객들이나 남자접대부들이 수치스러워하기보다 오히려 당당해 하는 것을 보며 타락한 우리사회의 한 단면을 보는 것같아 씁쓸했다”고 말했다.

이영태·사회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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