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전만 하더라도 직장내 성희롱은 미국에서도 일부 법학자들의 머리속에나 있던 하나의 개념에 불과했다. 매년 1만5,000여 회사들이 연방 고용평등위원회에 소송을 제기하고 직장내 음란한 낙서를 방치한 미쯔비시사가 3,400만달러를 지불하는 현재에 와서는 문제가 사뭇 다르다. 직장내 성희롱문제를 전문으로 다루는 사업은 덩달아 날로 번창하면서 소송과 관련한 법률회사, 교육용 비디오 등은 문제 해결뿐 아니라 발생 자체를 방지하기 위한 서비스까지 제공하고 있다.

직장내 연애는 과연 금단의 열매인가, 아니면 자연스럽게 이성을 만나고 가정을 이룰 수있는 훌륭한 계기인가.

10년전 한 조사에 따르면 대부분의 연애가 직장을 중심으로 일어나고 있다. 매년 600만∼800만명의 새로운 커플이 같은 회사내에서 탄생하고 이 가운데 50%가 결혼이나 장기교제로 연결되는 심각한 관계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추세에 따라 직장내 연애의 문제를 사무실이라는 공간으로 제한하지 말아야 한다는 강경 주장까지 등장했다. 출장이 잦은 회사의 경우, 남녀 직원이 함께 침대가 있는 호텔에서 대화를 시작하는 것은 문제라는 지적이다. 차라리 회의실이 딸린 숙소를 정하라는 조언이다.

가장 은밀한 형태의 사내관계는 역시 상사와 부하직원 간의 로맨스. 빌 게이츠와 멜린다 프렌치의 경우처럼 가정을 꾸리고 후세까지 이어지는 경우도 있지만 클린턴과 르윈스키처럼 불행으로 끝나는 교훈적인 케이스도 있다. 사무실에 열핵폭탄이 터진 것에 비유되기도 하는 상사의 관심어린 눈길을 회사들은 어떤 방식으로 처리할까. 대부분의 고용주들은 즉각 금지령을 내릴 것이 뻔하다. 그러나 이것은 위험성이 크기 때문에 신중한 회사들은 로맨스의 기를 꺾는 방법을 사용할 가능성도 크다.

사내연애를 합리적으로 해결하는 방법 가운데 하나는 데이트를 하면서 미리 알리는 방법. 뉴저지주의 한 검찰총장이 부하직원으로부터 성희롱 소송을 제기당해 재판부로부터 35만달러의 보상금을 물고난뒤 이 방안을 제안했다. 일단 관계에 있는 커플은 회사에 사실을 알리고 관리자는 직원들이 자신의 권리를 가진다는 사실을 고지할 의무를 진다. 고용주는 합의에 따라 관계를 당분간 알고만 있겠다는 조건이다. 이럴 경우 문제가 자연스럽게 해결되기도 한다. 텍사스주의 한 에너지회사는 은밀히 관계를 유지해온 한 커플의 관계가 드러나자 해고를 결정했다. 처음에는 여성만 해고하고 상급 남자직원은 그대로 둘 의도였지만 해고사실이 알려지자 여기저기서 은밀한 커플들의 자진신고가 잇따랐다. 모두 12커플이 관계를 드러냈고 이 중에는 이미 결혼한 이사급 임원도 포함돼 있었다. 이사는 결국 규칙과 충돌을 피하고 간통사실을 인정하고 말았다.

해결방법으로 제시되는 교육이나 훈련 등에 대해서는 의견이 상반된다. 고용주의 입장에서는 성희롱소송에 휘말리는 것보다 세미나나 강연을 통해 조정될 수 있다면 비용측면에서 훨씬 구미가 당기는 일이다. 그러나 강연을 받고 나온 여직원들은 더욱 자기보호적 성격이 강해지기 때문에 말썽의 소지를 늘릴 뿐이라는 지적도 있다.

성희롱에 포함되는 범주는‘허니’‘깜찍한 것’‘섹시걸’ 등의 말과 외모나 의상에 대한 비판적인 표현, 신체일부에 대한 접촉 등이다. 이에 대해 보수적인 입장의 비판론자들은 성희롱법이 급진적인 페미니즘의 한 형태라고 공격한다. 그러나 직장내 로맨스를 규제하는 규정이 페미니스트 헌장보다 회사에서 더 선호받고 있다는 사실앞에 보수적 주장은 입지가 좁다. 차라리 ‘성을 여성을 배척하는 무기로 사용하지 말라’는 주장이 설득력있다.

미국내 회사들은 성희롱과 관련, 해고라는 억압적인 수단이 능사는 아니라는 것을 점차 깨닫고 있다. 맥주회사 밀러의 한 관리자가 여비서에게 코메디언의 농담을 전했다는 이유로 해고당했다가 재판부가 밀러사에 2,600만달러의 보상금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린 이후였다. IBM사도 관리자들의 직장내 연애를 금지하는 규칙을 만들어 놓고 이를 어길 경우 해고조치를 단행하다 법원에서 패소판결을 받고난 이후 부서만 다를 경우 허용하는 방향으로 길을 터놓았다.

첨단정보산업 분야의 경우는 더 자유로운 분위기다. 캘리포니아의 소프트웨어 제조업체 오토데스크의 경우 16년전부터 미혼 남녀들로만 직원을 채용해 지금은 수십명의 커플들이 탄생했다. 부사장은 “우리는 단지 상급자가 지위를 이용해 관계를 맺지만 않으면 신경쓰지 않는다”고 말한다.

미 최대의 장거리 전화회사 AT&T에서는 사내 연애에 대해 마치 교통법규와 같은 규칙을 적용하고 있다. 이 회사 대변인은 “대부분이 능숙한 운전자이지만 가끔 엉터리 운전자들이 있을 수 있다”며 규칙이 아닌 가이드라인을 만든 이유를 설명했다. 호텔에서 만나거나 상사와 부하직원간의 관계를 금지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사내연애에 대한 부드러운 규제는 생산성향상과 직장내 대인관계를 원활히 한다는 이점이 있다. 소송이 능사가 아니라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동성애의 만연이 가능해 진다는 우려도 낳고 있다. 컴퓨터사 오라클사에 근무하는 동성연애자 데이브(가명)는 입사 당시 “파트너가 일하고 있는 이 회사에서 일하고 싶다”는 말을 스스럼없이 건내고 입사를 허락받았다. 더우기 회사는 출장이 잦은 데이브를 찾아가는 파트너의 여행경비까지 지급하고 있다.

김정곤·국제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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