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파리 프레타포르테, 뉴욕 컬렉션의 무대에서는 황갈색의 납작한 얼굴에 가늘게 찢어진 눈의 동양인 모델을 종종 보게 된다. 말레이시아 출신의 링탄, 일본인 다나베 아유미, 야마구치 사요코를 비롯해 몽골계의 특징이 뚜렷한 시베리아 출신의 이리나등이 바로 슈퍼모델의 대열에 성공적으로 진입한 주인공들이다. 이들은 전세계를 돌며 샤넬 갈리아노등 유명디자이너들의 무대에 서는 한편 화보 주인공으로, 화장품 광고모델로 주목을 받고 있다.

동양인 모델이 패션의 중심지에 등장하게 된 것은 서구인이 아시아시장의 구매력에 관심을 기울이게 됐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다. 일본인모델이 일본인이 가장 좋아하는 샤넬 발렌티노 디오르의 쇼에 주로 기용되는 것은 그때문이라고. 그래도 더 이상 백색미인만 통용되지 않는 것은 바뀔 수 없는 새로운 흐름이다.

‘자본주의와 미의 전도사’인 이 모델들의 대열에 최근 한국모델들도 합류하고 있다. 세계적인 패션사진작가 스티븐 마이젤의 오디션 제의를 받으면서 주목을 받고 있는 장윤주, 파리 프레타포르타 무대에 섰던 노선미 조희주, 일본 싱가포르등에서 주목받고 있는 이종희 김선영 김미조 임상효 이혜상등이 그들.

슈퍼엘리트모델 출신인 조희주와 노선미는 10월 디오르가 모나코왕실에서 개최하는 쇼에 참가할 동양모델 오디션에 당당히 뽑혔다. 전세계 부호와 패션계 인사들이 지켜본 이 무대에 섰던 동양모델은 이 두사람뿐이었다. 조희주는 여기다 에르베 레제의 카탈로그 모델로 카메라 앞에 섰고 노선미는 파리 프레타포르테에서 아녜스 베의 쇼에도 참가했다.

누구보다 국제무대 성공 가능성이 높게 점쳐지는 모델은 장윤주다. 이제 갓 스물인 장윤주는 지난해 ‘보그’한국판에 실린 사진을 본 마이젤의 요청에 따라 LA로 갔다. 마이젤은 링탄을 발탁해서 슈퍼모델로 만든 장본인. 세계적인 모델에이전시 엘리트와 계약을 협의중인 그는 취업비자 문제로 현재 국내에 들어와있다. 아직 국제무대에 서 본 적은 없지만 마이젤의 안목대로 빼어나게 아름다운 몸매와 비교적 어린 나이 때문에 주목을 받고 있다.

동양계 모델이 성공할 기회가 많지 않은 프랑스나 미국에 비해 아시아무대 진출은 이미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슈퍼모델 출신인 이종희는 도쿄컬렉션에 참가했고 일본 화장품회사 가네보의 광고모델로 최근 오디션을 받았다. 임상효 이정아는 싱가포르 엘르의 화보 모델로 일했고 김선영 김미조등은 싱가포르 홍콩 중국등의 TV에 방영될 비달사순 샴푸의 모델로 활동할 예정이다. 김정아도 아시아무대에서 맹활약중이다.

최근 갑자기 모델들의 외국진출이 늘어난 것은 국내경기침체에 따라 일거리가 줄어든 모델들이 외국에서 기회를 찾으면서이다. 이들을 외국시장에 연결해주는 모델에이전시도 한몫하고 있다. 물론 세계적 모델이 되는 것은 쉽지 않다.

모델에이전시 CAT의 정행록실장은 “국내에선 정상이라도 외국에 나가면 일단 신인이며 밑바닥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말한다. 지금은 최고로 대접을 받는 링탄도 뉴욕도착 직후 2년간 카메라테스트와 오디션만 받았다. 의사소통의 문제도 있다. 작업과정에서 스탭과의 의사소통도 문제지만 표현력을 극대화해야 하는 모델에게 자기를 설명하는 언어의 부재는 보통 어려움이 아니다. 대담성이 부족하고 소극적인 면모는 동양계 모델의 공통적인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그러나 정실장은 “이들은 외모(동양적인 특성이 강해야 한다)나 신체조건면에서 국제적인 톱모델과 비교해도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 편이다. 머지않아 세계적인 모델을 배출하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김동선·문화과학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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