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의 타이틀매치는 최후까지!”

저무는 한해를 아쉬워함인가, 마지막 타이틀매치를 아쉬워함인가. 신세대 라이벌 이창호 유창혁간의 배달왕전 라이벌전은 1~4국까지 치러진 현재 2승2패로 호각, 결국 12월 23일 벌어지는 최종국에서 가름되게 되었다.

라이벌전의 묘미는 바로 이런 것일게다. 마치 한일간의 축구와 같이 실력이나 컨디션 보다는 정신력으로 가름되는 그런 명승부 말이다. 바로 무미건조하던 올해 국내바둑계가 막판에 와서 달궈지고 있다. 이창호가 국내타이틀전 전승을 기록하다 갑자기 연말이 다가오면서 기울기 시작하면서 생겨난 지각변동이다. 일단 유창혁의 선전이기 이전에 철권 이창호에게 무슨 문제라도 생겼는지 알아봐야 할 것이다.

이창호는 지난달 막을 올린 최고의 세계기전 삼성화재배 제1국에서 가볍게 넘어주리라던 기대를 뒤엎고 중국의 마샤오춘에게 완패를 당했다. 물론 아직 5번기의 한판에 지나지않고 여전히 이창호가 3:2 정도로 우세하다는 평가가 주류를 이루고는 있지만, 최근 내리 10연승을 기록하던 ‘밥’ 마샤오춘에게 이창호가 덜미를 잡혔다는 건 기분좋은 일이 못된다.

한판을 패했다고 호들갑이 아니다. 그 이전 국내에서는 이창호가 스승 조훈현에게 전통의 국수위를 빼앗겼다. 상금으로야 큰 액수가 아니지만 전통의 기전이라 이창호 스스로도 잃고 싶지않은 타이틀이 바로 국수전. 따라서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으나 방어에 실패했다고 봐야 한다. 그러니까 이창호 개인적으로는 2연패를 한 셈이다.

그러다 맞이한 도전무대가 바로 유창혁과의 배달왕전. 유창혁은 한해 내내 타이틀무대에 한번 올라와보지도 못하고 그저 그런 성적에 머물러있다가 겨우 이창호에게 한번 도전장을 내민 상태. 좋게 말하면 힘이 비축되어있고 나쁘게 말하면 실전감각이 떨어진다고도 할 수 있다. 그리고 평소의 상대전적을 감안하면 이창호가 5번기라면 능히 이겨야 정상. 그런데 연패의 후유증인지 이창호는 역시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제1국을 패해 역시 배달왕전도 어렵게 가더니 2국 승리, 3국 패배, 4국 승리. 팬들로서는 구미가 당겨지는 승부를 펼치고 있지만 정작 당사자인 이창호는 죽을 맛이다. 많은 타이틀 중 하나를 잃는다고 해서 아까울 것은 없겠지만 문제는 하나가 아니다.

조훈현이야 줄기차게 도전해오는 단골이라고 쳐도 ‘천하의 싸움꾼’ 유창혁이 하나를 계기로 힘을 찾게 된다면 앞으로 또다른 도전자가 나설 것이 확실하니 걱정이 쌓일 것은 불문가지. 따라서 이 한판에서 유창혁을 어쨌거나 눌러주어야 당분간 편해진다는 등식이 성립한다.

물론 이창호가 제실력을 다 발휘한다면 문제될 상대는 현존하지 않는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인간인 이상 언제나 최선을 다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얘기. 이창호가 하향세로 접어들고 있다는 것은 큰 문제다. 올해 사실 이창호는 국내기전이나 국제전 가릴 것 없이 전관왕에 오를 수 있었다. 실로 대단한 성적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막판에 조훈현에게 국수전을 내준 뒤 부터 약간 목표의식을 상실하더니 급기야 마샤오춘 유창혁에게도 내리 패하고 말았다고 볼 수 있다.

결국 이창호가 그 공허함을 여하히 달래느냐에 이번 마지막 승부는 판가름 난다고 볼 수 있다. 23일 크리스마스 캐롤이 울려퍼지는 밤하늘을 뒤로 하고 유창혁 이창호 두 젊은이는 사투를 벌여야 한다. 내년을 위해 미래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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