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대통령이 15일부터 2박3일 일정으로 동남아 국가연합(ASEAN)정상회의와 한·베트남 정상회담에 참석하기 위해 베트남을 방문했다.

김대통령은 취임이후 4월 런던 아시아 유럽정상회의(ASEM)를 필두로 미국, 일본에 이어 지난달 중국과 말레이시아(아·태경제협력체회의·APEC)를 차례로 방문했다. 이번이 5번째 해외순방인 셈이다. 너무 잦다면 잦은 해외나들이라 할 만하다. 때문에 한때 청와대 주변에서는 대통령의 빈번한 해외방문에 대한 비난 여론을 감안, ASEAN회의는 총리가 참석하는게 좋겠다는 의견도 나왔었다.

청와대관계자는 “말레이시아 APEC정상회의에 참석하느라 동남아에 다녀온지가 채 1달도 지나지 않은데다 중국마저 장쩌민(江澤民)국가 주석대신 후진타오(胡錦濤)부주석이 참석한다는 점도 대통령의 불참배경으로 거론됐었다” 며 “그러나 김대통령이 앞장서 ASEAN이 갖는 정치·경제적 중요성을 내세워 참석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고 전했다.

김대통령, 야당시절부터 ‘벼르던’ 베트남 방문

김대통령의 이번 출장 목적은 ASEAN 정상회의 참석과 베트남 공식방문 등 두가지. 이 가운데 김대통령은 베트남과의 정상회담에 더 큰 관심을 기울인 것으로 전해지고있다. 김대통령의 한 외교측근은 “김대통령은 평소 한때 같은 분단국가였으나 통일후 동남아에서 새로운 중심세력으로 커가고 있는 베트남을 각별히 눈여겨보아왔다” 며 “야당 대표 시절에도 베트남 방문을 시도한 적이 있으나 ‘색깔론’ 등을 우려해 취소한 적도 있다” 고 말했다. 이번에도 ASEAN회의 참석을 계기로 방문하는 것보다 따로 베트남만을 정식방문하는 것을 고려할 정도였다는 게 측근의 전언이다.

김대통령의 이번 베트남 방문의 2대 이벤트는 ‘한·베 과거사정리’ 와 ‘경제 통상 분야에서의 실질 협력 확인’ 으로 요약할 수 있다.

김대통령은 15일 트란 둑 루옹 베트남 국가 주석과 정상회담을 갖고 양국간의 불행했던 과거를 청산하고 미래 지향적인 우호협력관계 발전을 위해 노력키로 합의했다.

김대통령은 이날 회담에서 이례적으로 “과거 한때 불행한 시기(한국군의 베트남 참전)가 있었던 것을 유감으로 생각한다” 고 말했고 루옹주석은 “불행했던 과거는 뒤로 미루고 미래지향적인 우호협력을 통해 과거를 매듭짓자” 고 화답했다.

김대통령은 또 이날 베트남 국부(國父)로 추앙받는 호치민 묘소도 참배했다. 우리 대통령의 호치민 묘소 참배는 처음이다. 92년 수교후 96년 방문한 김영삼전대통령도 호치민 묘소는 참배하지 않았었다. 당시 김전대통령은 반미전쟁을 지휘했던 전쟁 혁명가라는 호치민 전국가주석의 이미지와 그 전해에도 무오이 베트남서기장이 방한했을 때 우리의 국립묘지를 참배하지 않았다는 ‘상호주의’ 를 고려했다는 후문.

이에 대해 정부관계자는 “호치민 묘소는 전쟁기념탑이나 전몰장병의 묘지가 아니라 베트남 국민이 영웅으로 추앙하는 인사가 묻힌 성역으로 간주해야한다” 며 “김대통령의 참배및 헌화는 베트남국민의 정서를 감안한 양국 관계 발전에 대한 의지를 담은 것으로 볼 수 있다” 고 의미를 부여했다.

적극적인 과거사 정리, 실질협력 이끌어내

김대통령의 이같은 과거사 정리에 대한 적극행동은 김대통령 특유의 ‘실리외교’ 를 여실히 보여주는 것으로 어쨌든 이를 계기로 양국 정상 회담에서는 많은 실질적 성과가 도출됐다.

두 정상은 이러한 과거사 정리를 바탕으로 회담의 대부분을 실질협력 증진방안 논의에 할애, 한국은 내년에 한국의 지원으로 시행중인 바리아 화력발전소 건설사업등 3개 사업의 환차손 부족분 1,400만달러, 백신공장 건설사업비 2,850만달러, 통신망 현대화 사업비 3,000만달러 등 모두 7,780만달러를 지원키로 했다.

경제협력개발기금(EDCF)에서 지원되는 이 유상차관은 실제로는 베트남에 진출한 한국기업에 융자되는 것으로, 이들 사업은 앞으로도 상당기간 계속되면서 한국기업의 대(對)베트남 진출에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한국의 EDCF차관 제공에 대해 루옹주석은 “가난한 국가의 경제발전과 인민생활향상을 위해 한국 국민이 보내는 성의의 표시라고 생각한다” 며 김대통령이 베트남에 대해 갖고 있는 경제적 관심사에 대해 긍정적인 답변으로 화답했다.

김대통령은 이날 루옹주석에게 ▲베트남의 이중가격 문제, 비자절차 문제 등 투자환경 개선 ▲석유, 가스 등 자원개발의 한국기업 참여 ▲정보통신분야의 한국기업참여 ▲한국건설업체의 베트남 사회간접자본시설 개발 참여 ▲하노이 신도시 개발참여 ▲양국간 과학기술공동위 정례화 등 과학기술 협력 등 한국의 관심사항을 구체적으로 제시하는 등 세일즈 외교를 벌였다.

루옹주석은 이에 대해 “한국기업이 베트남 유전개발, 도로공사 등 중요 개발계획에 많이 참여, 탁월한 재능을 발휘하고 좋은 성과를 내고 있는데 대해 베트남 국민이 감명을 받고 있다” 고 말하는 등 적극적인 협력의사를 밝혔다.

루옹주석은 특히 하노이 신도시 개발, 정보통신 분야에서 한국기업의 역할에 큰만족감을 나타내고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베트남정부, 한국기업에 우호적 분위기

베트남의 각종 개발사업에 대한 한국기업의 참여는 입찰에서 이겨야 가능하지만 이날 루옹주석이 한국기업의 우수성을 여러차례 강조한 것은 베트남 정부 차원에서 가능한 많은 혜택을 주려할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했다.

양국 정상은 이날 경제통상 분야뿐 아니라 한반도 정세와 관련해서도 서로 의견을 교환하고 공감의 폭을 넓혔다.

또 김대통령은 루옹주석의 방한을 초청하고 루옹주석이 이를 수락했으며 양국 정부와 의회 및 정당간 상호교류를 더욱 확대해 나가기로 했다.

이번 한·정상회담결과에 대해 청와대관계자는 “이번 김대통령의 방문을 계기로 양국은 경제·통상분야에 국한시키지 않고 정치, 안보, 사회, 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21세기 동반자관계를 지향하자는데 합의했다” 며 “앞으로 인도차이나 반도의 맹주로 발전할 가능성이 큰 베트남과의 관계 발전을 위한 의미있는 첫걸음을 놓은 셈” 이라고 평가했다.

/윤승용·정치부차장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