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년 1월1일로 예정된 유러화(EMU) 출범이 한달도 남지 않았다. 그간 몇몇 대기업들은 나름대로 유러화 출범에 대비하여 약간의 준비를 해오긴 했지만 대부분의 기업들은 이에 대한 철저한 인식이나 준비가 미흡한 것으로 보인다.

현재 EMU 출범에 따른 가장 큰 관심거리는 과연 유러화가 세계의 기축통화로 자리매김할 것인가이다. 이 문제는 달러 의존도가 심한 우리에게도 대단히 중요한 사안이다. 95년말 현재 세계 외환시장에서 결제 수단으로써 각국 화폐의 비중은 미 달러 42%, 독일 마르크 19%, 일본 엔 12%로 달러의 영향력이 막강하나 EMU와 EU국가인 영국의 파운드를 합치면 EU 화폐의 비중은 30%대로 높아져 유러화등장 이후 유럽 화폐의 영향력 증대가 예상된다.

독일의 도이체뱅크는 EMU 출범후 수년내 전세계 중앙은행 외환보유액중 유러화 구성비가 25-30%(1995년말 현재 EMU 참가국 통화는 16.6%, EU 회원국 전체통화는 20.1%)에 달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 경우 전세계 외화자산중 약 5,000억∼1조 달러 상당이 유러화로 전환될 가능성이 있으며 전환될 외화자산의 대부분은 미달러화가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렇게 유러화가 세계 기축통화의 하나로 확실히 자리잡으면, 우리도 공적보유고중 상당부분을 유러화로 보유하게 될 것이며 그간의 지나친 달러 의존적 경제구조에서 어느 정도 탈피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무역·금융거래에 유러화사용 늘어날 듯

외환보유 측면만이 아니라 무역거래및 금융거래에서도 유러화 사용이 늘어나면서 우리가 몇몇 해외시장에서 원자재나 중간재를 구입할 때도 유러화를 사용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IMF의 전망에 의하면 유러화 도입으로 유럽 역내 교역및 역외 투자가 증가함에 따라 향후 10년동안 최소 670억 달러의 교역량이 증가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국제 무역에 있어서 유러화 결제 통화 비중이 증가하게 될 것인데, 유럽 전체의 교역액(3.3조 달러)이 미국(1.4조)보다 훨씬 많기 때문에 우리도 상당부분 유러화를 결제수단으로 사용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도 가능하다.

이처럼 유러화 출범이 공공부문에 영향을 주긴 하지만, 무엇보다도 유러화의 출범은 유럽지역과 거래가 빈번한 기업들에게 가장 직접적이고 미시적으로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특히 유러화의 출범으로 1차적인 변화를 맞이하게 되는 곳은 우리 기업의 현지 법인과 지사들이다. 현지 법인및 지사의 경우 현지인 채용및 운영과 같은 현지영업에 있어 많은 부분 유러화 출범에 대비하여야 한다. 특히 회계및 자금관리에 있어 유러화 전환 시점을 미리 설정하여 영업에 지장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아직까지 EMU내 세제를 비롯한 회계제도 가 정비되지 않았으므로 시간은 좀 남아있지만, 현지법인들은 EMU 출범이후 새로운 회계제도와 세제에 적응할 수 있도록 대비해 나가야 한다.

유럽지역 투자계획 새롭게 구상할 때

현재 유럽에 진출해 있는 기업들뿐만 아니라 아직까지 미국·일본·동남아 시장에 의존하는 기업들에게도 유러화의 출범은 역내 시장의 단일화를 가속시킴에 따라 향후 수출입 시장으로서의 유럽 지역의 중요성을 더욱 커지게 만든다. 단일화폐의 사용으로 인해 유럽 상품시장이 더욱 확대되고 기업간 경쟁이 심화될 것이므로 유럽지역의 무역및 투자 계획을 단일통화출범과 연계하여 새롭게 구상하여야 할 것이다. 마케팅 측면에서도 유러화 출범에 따른 유럽 지역에서의 마케팅 전략을 보다 현지 상황에 맞게 조정함으로써 제품 인지도및 사업 영역의 확대를 기대할 수 있다.

금융 측면에서 보면, 유러화 출범에 따른 유럽 금융시장의 급격한 확대로 인해 유럽으로부터 자금 조달이 용이해질 것이다. 유러화 표시채권은 99년 EMU 공식출범 이후 2조 8000억 달러에 이를 전망이며 이는 2조 7000억 달러 규모의 미국 재무성 증권 시장 규모보다 더 큰 것이다. 이렇게 유럽 직접 금융시장이 팽창하는 만큼 우리 기업들에게는 유럽 은행으로부터의 간접 금융조달보다는 유럽 자본시장을 이용한 직접금융 방식을 적극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이처럼 해외 자금 조달의 변화를 보다 면밀히 파악하여 유럽시장에서의 이점을 제고하여야 한다.

자금조달뿐만 아니라 자금관리 측면에서도 EMU 출범은 새로운 기회요인으로 작용한다. EMU 지역내의 현지금융기관들은 금리 인하및 수수료 인하 등과 같은 조치를 통해 유러화 유통을 적극 권장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유럽에 진출해 있는 금융계열사의 경우 이러한 기회를 적극 활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일부에서는 유러달러 시장은 런던을 중심으로, 유러화 표시 금융시장은 독일을 중심으로 더욱 규모가 확대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어 자금 조달의 창구가 이원화 될 것에 대한 대비도 필요하다. 또한 EMU 지역 내에서의 자금 이동에 따른 비용이 줄어들게 됨에 따라 지역내 거래를 전담하는 은행 선정이 필요할 것이다. 단일 은행을 통한 무역 및 금융 거래 전담은 현금 흐름을 보다 원활히 할 수 있으며 대규모 거래로 인한 금리 혜택으로 인해 이자부담을 줄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또한 단기 금융 시장에서의 채권 발행및 자금 조달시 보다 낮은 금리를 요구할 수 있는 등 유리한 조건을 제공받을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유러화 비중고려, 결제시스템 정비 서둘러야

또한 유러화 출범에 따른 환위험 제거로 인해 기업 자금 조달시 기업이 특수성이나 자체 신용 평가가 더욱 중요해짐을 인식해야 한다. 이는 향후 유럽지역을 해외 직접금융의 전략지역으로 삼아 주식 상장이나 단기 채권 발행을 보다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방안이 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특히 기업뿐만 아니라 금융기관들의 전산시스템 정비작업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국내기업과 금융기관의 전산시스템은 달러나 엔을 기준으로 모든 거래를 처리하도록 되어 있으므로 유러화 추가에 따른 전산체계상 문제점을 해결해야 한다. 모건스탠리의 유럽 지사들은 격주 토요일마다 유러화 결제시스템 운용에 대한 시뮬레이션을 해왔다고 한다. 우리 금융기관들도 앞으로 유러화의 비중이 전세계 외환거래의 3분의 1 가까이를 점유한다는 점을 감안하여 결제시스템의 정비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이처럼 유러화의 출범은 거시적으로나 미시적으로 국내경제와 기업활동에 상당한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이에 대한 착실한 준비가 필요하다. 우리가 경제위기를 겪고 있고 유러화 완전통용까지 아직 3년의 이행기간이 남아있기 때문에 그동안 EMU 출범 문제를 등한시했던 것이 사실이지만, 우리와 경쟁할 외국 기업들은 이미 수년전부터 이에 대한 적응 작업을 시행해왔다는 것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양성수·현대경제연구원 국제금융팀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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