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대 총선을 4개월여 앞둔 충청권의 분위기는 한마디로 엷은 안갯속 같다.

민심도 아직 수면 밑에 잠수중이다. 속을 잘 드러내지 않는 기질 때문에 선거 막판까지도 부동층이 가장 많은 곳이니 더 말할 나위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안개를 한꺼풀 걷어내면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민감한 변수와 복병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국민회의와 자민련의 합당은 일단 물건너 갔지만 신당창당, 보수대연합 등 새 정치판 짜기의 시동이 걸리면서 발길을 재촉하는 총선 주자들의 움직임도 들을 수 있다.

물밑에 가라앉아 있는 민심에서도 몇가지 분명히 감지되는 기류가 있다.



“자민련의원들의 한게 뭐 있습니까”

바로 지역의 맹주로 군림해온 자민련의 지지도 추락과 현역의원 물갈이론이다. 충청권의 가장 큰 변수는 누가 뭐래도 ‘JP바람’이다. 이 바람을 타고 자민련은 15대 총선에서 대전지역 7석을 모두 휩쓸고 충남지역 13석중 12석, 충북지역 8석중 5석을 차지하며 당당히 공동여당의 일원이 됐다. 자민련 관계자들은 총선과 지방선거에서 확인했듯이 JP바람은 더이상 변수(變數)가 아니라 상수(常數)가 되어버렸다고 큰소리치고 있다.

하지만 최근 여러 여론조사결과에서도 나타나듯 자민련 정서의 붕괴 조짐은 더이상 이를 장담할 수 없게 하고 있다.

“자민련 일색인 지역의원들이 한게 뭐 있습니까. 지난 총선의 최대공약이었던 내각제 개헌을 전격 유보하더니 국민회의와의 합당을 놓고 오락가락하고, 참으로 한심하기 짝이 없습니다. 이번엔 꼭 물갈이를 해야 합니다.” “우리지역은행인 충청은행, 충북은행은 모두 퇴출당하고, 장항·군산산업단지 개발계획에 전주권이 포함돼 전북권 개발계획으로 변질되지 않았습니까. 경상도 들러리를 하더니 이젠 전라도 들러리로 전락했나요.”

이같은 여론 악화를 근거로 많은 이들은 16대 총선에서 JP바람이 분다해도 이는 15대 총선때의 돌풍에 비해 턱없이 약화된 미풍 정도일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반면 선거전이 본격화하면 정치권의 지역감정 부추기기로 인해 막판에 파괴력을 지닌 바람이 재연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도 적지 않다.

자민련의 한 관계자는 “당장은 반감을 드러내는 사람들이 많지만 막상 투표장에 가면 ‘미우나 고우나 역시 JP’라며 표를 몰아주는게 충청도 유권자들”이라며 바람몰이를 장담했다.



거물급들 정치운명 얽혀있는곳

정치거물들의 대거 출마와 각 당의 총력지원도 선거전에 큰 영향을 끼칠 것으로 예상된다.

자민련 김종필명예총재, 충남 예산과 논산이 각각 고향인 한나라당 이회창총재와 국민회의 이인제당무위원, 벤처신당의 깃발을 올린 김용환의원 등 거물들의 정치 명운이 실타래처럼 복잡하게 얽혀 있는 곳이 바로 충청권이다.

당으로 복귀할 김총리는 자신의 텃밭에서 다시 한번 녹색돌풍을 일으켜 정치적 입지를 재정립해야 하는 부담을 안고 있다. 지역구인 부여를 김학원의원에게 물려줬음에도 불구하고 최근 ‘대전권 출마설’이 지역정가에 나돌았던 이유도 바람몰이를 위해 지역구 출마 가능성을 전혀 배제할 수는 없지 않느냐는 관측에서 비롯됐다.

DJ, JP, YS 등과는 달리 확고한 지역기반이 없다는 ‘약점’을 지닌 이회창총재는 이번 총선에서 기필코 충청권에 교두보를 마련하겠다는 굳은 각오를 피력하고 있다. 그렇지 못할 경우 ‘메인게임’인 2002년 대통령선거에서 또다시 지난 대선 때와 같은 낭패를 당할 수도 있다는 판단에서다.

한나라당 관계자는 “이총재는 일찌감치 윤여준여의도연구소장에게 충청권을 특별관리토록 특명을 내렸으며 당 일각에서는 총재가 예산에서 출마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고 전했다.

한나라당은 자민련 지지도 하락의 틈을 비집고 대전과 충남에서 각각 1~2석, 2~3석을 확보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자민련을 탈당한 김용환의원의 벤처신당도 변수다. 그다지 큰 파괴력을 갖지는 못할 것이란 관측이 유력하지만 자민련 표를 잠식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자민련이 나몰라라 할 수 만은 없는 처지다. 자민련은 충남 보령에서 김의원에 맞설 ‘특급 저격수’를 준비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인제당무위원이 현재 흘러나오는 얘기대로 논산이나 인접한 대전 서갑에서 출마한다면 이 또한 충청권의 선거 분위기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충청권에서 단 한명의 의원도 내지 못한 국민회의는 이의원이 서갑에서 출마할 경우 유성구의 송석찬구청장과 함께 대전 7개 선거구 중 2곳에서 당선을 ‘기대’해 볼 수 있어 충청권 교두보 확보에 청신호가 켜 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독자성 강한 충북, 인물대결예상

충북은 대전·충남과 충청도로 묶이지만 정치 정서는 상대적으로 독자성이 강한 편이다. 15대 총선에서 자민련의 득표율이 대전 49.8%, 충남 51.2% 이었던데 비해 충북은 39.4%에 그쳤다. 자민련의 영향력도 대전·충남보다 훨씬 약하다. 이를 반영하듯 민주신당의 핵심 가운데 한명인 이재정성공회대총장을 비롯한 신진기예들이 자민련 의원과의 일전을 벼르고 있다.

최근 호남고속철 노선문제까지 겹쳐 공동여당에 대한 불만이 더욱 고조된 호기를 놓치지 않고 한나라당도 지지도를 점차 높여가고 있다.

결국 여당 프리미엄이나 JP바람을 기대하기 어려운 충북에서는 인물 위주의 선거전 양상이 나타날 공산이 클 것이란 전망이다.

“자민련 비판 여론이 선거일까지 이어질지, 아니면 막판 바람에 힘없이 파묻혀 버리고 말지, 이것이 이번 선거의 최대 관건이 될 겁니다.”

대전에서 오랫동안 정당활동을 해온 한 인사는 자신의 경험에 비춰볼 때 이번에도 선거전이 본격화하면 지역감정이 일정 부분 준동할 것이라고 예상하면서 절반이 훨씬 넘는 부동표가 선거막판에 지역감정과 자민련 비판론 중 어느 방향으로 쏠리는지 지켜보는 것이 충청권 선거 관전의 포인트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전=전성우 사회부기자


대전=전성우 사회부 swchu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