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오십보 소백보(以五十步 笑百步)’

무슨 뜻일까. 글자 그대로‘전쟁터에서 50걸음 도망간 사람이 100걸음 도망간 사람을 비웃는다’는 뜻이다. 쉽게 말해 자신의 허물은 돌아보지 않은채 남을 비방하는 경우를 가리키는 속담이다.

그런데 ‘이오십보 소백보’라는 속담이 제 주인을 만났다. 홈쇼핑·통판업체를 괴롭히는 얌체족이 100걸음 도망간 병사라면, 홈쇼핑·통판업체 역시 ‘50걸음 도망친 병사’로 불릴 만큼 얌체 짓을 하고 있다.

소비자보호원이 지난해 7월 홈쇼핑·통판업체들의 주력 판매상품인 의류(33종류)를 직접 구입, 시험한 결과 82%가 품질이 미흡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67%는 업체가 제시한 인도 시기보다도 늦게 도착했다.



허위ㆍ과장광고 등으로 소비자 피해 속출

의류의 기본품질인 외관의 경우 전체 33종류중 13종류가 형태 불균형, 봉제상태 불량 등 기준에 미달했고, 의류의 80%가 섬유의 조성비인 혼용률이 광고 및 표시와 달랐다.

또 업체들이 밝힌 상품의 인도시기보다 늦게 배달된 상품이 22종류나 됐는데 이중에는 주문과 다른 치수가 배달된 것도 1종류 있었다. 소보원 관계자는 “홈쇼핑이나 통신판매의 경우 소비자가 물건을 직접 보고 구입할 수 없으며, 오로지 판매자가 제공하는 정보에 의존하게 된다”며 “따라서 홈쇼핑·통판업체의 허위광고는 소비자의 피해로 직결된다”고 말했다.

선량한 소비자들을 우롱하는 생산자나 유통업자의 얌체 행각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소보원이 1999년 한해동안 적발, 업체들에 대해 시정을 요구했던 주요 사례들은 아직도 한국 사회에서는 소비자들이 여전히 얌체 생산자들의 ‘봉’이라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고 있다. 특히 소보원이 지적한 생산자들의 얌체행위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음료업체들의 모호한 광고이다.

설탕을 뺀 커피, 칼로리없는 다이어트 음료, 무가당 표시가 되어 있는 오렌지 주스…. 다이어트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은 흔히 ‘무가당’이나 ‘무설탕’ 표시가 있으면 설탕에 대한 걱정없이 안심하고 음료수를 마시게 된다. 그러나 소보원에 따르면 이는 ‘천만의 말씀’이다. 소보원이 국내 유명 음료업체들이 판매중인 무가당, 무설탕 음료를 조사한 결과 ‘충분히 많은’ 양의 당분이 포함되어 있음이 확인됐다.

조사대상 18개 제품중 ‘무설탕’ 표시가 되어 있는 것은 모두 11개 제품. 이들 제품의 과당, 포도당, 설탕, 유당 등 4가지 당류 함유여부에 대해 시험검사를 실시했는데 대부분의 제품에 설탕 성분이 들어있지 않거나 미량으로 함유돼 있었다. 그러나 당분 함유량을 따져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설탕성분이 당의 한 종류인 것에서 알 수 있듯이 과당이나 포도당, 유당은 설탕과 별로 다를 것이 없다. 열량을 내고 충치를 발생시키며 혈당을 높이는 등 인체내에서 설탕과 똑같은 작용을 하는 것이다. 소보원에 따르면 무설탕 표시 제품에는 설탕만 안들었을 뿐이지 과당, 포도당 등 전체 당류함량을 따져 보았을때에는 100㎖당 최고 0.80~9.24g의 당이 검출되었다.



얄팍한 상술, 인터넷 사기 급증

결국 이런 사실을 모르는 소비자들은 무설탕 표시만 보고 ‘이 제품은 설탕이나 당류 함량이 매우 적거나 함유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오해하게 된다. 소보원 관계자는 “업체들의 이같은 행위는 그야말로 ‘눈가리고 아웅’식의얄팍한 상술”이라고 말했다.

요즘 새로운 사업으로 각광받는 인터넷 상거래 분야에서도 얌체 기업들이 극성을 부리고 있다. 매직골드(www.oktele.com)라는 인터넷 업체는 지난해 10월말 회원들에게 ‘10만원만 입금하면 50만원 상품권을 주겠다’며 300여명의 회원으로부터 3,000여만원을 받았다.

그러나 11월초 가입 회원들이 인터넷으로 볼 수 있었던 내용은 이사명의의 사과문뿐이었다. 회원들이 입금한 상품권 구매대금을 포함한, 회사공금 3,500만원을 경영주가 챙겨 잠적한 것이다. 당연히 회원들이 납입한 상품권 대금도 환불이 불가능하며, 이벤트 경품도 지급할 수 없었다.

실제로 대검찰청에 따르면 1996년이후 인터넷 사기건수는 매년 3배이상 증가하고 있다.

구찌, 버버리, 폴로, 루이비똥, 프라다 등 유명 상표를 도용한 해적상품도 여전히 판을 치고 있다. 특허청 통계에 따르면 국내에서 제조돼 단속된 가짜 상품의 단속 건수는 1998년 한해동안 1,100건, 물량으로 따지면 36만3,769점에 달한다.

최근에는 한국이 가짜상품의 천국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중국, 동남아 등지에서 만들어진 가짜상품까지 밀려들고 있다. 1998년 한해동안 77억9,100만원에 달하는 가짜 밀수품을 단속한 서울 세관의 경우 1999년에는 1~8월동안의 단속금액이 219억6,500만원을 넘어서고 있다.

조철환·주간한국부 기자


조철환·주간한국부 chcho@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