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찬, 홍원식, 한수길…’

어떤 사람들일까. 재계에 나돌고 있는 ‘자린고비 경영인’리스트의 가장 꼭대기에 있는 이름들이다. 이들은 IMF체제 이전까지만 해도 ‘아껴도 너무 아낀다’라는 비난을 들었지만 98년과 마찬가지로 올해에도 놀랄만한 실적을 올리면서 최근에는 아예 다른 기업의 ‘따라 배우기’대상이 될 정도다.

우선 남들이 ‘지독하다’고 평가하는 것 자체를 칭찬으로 받아들이는 남양유업 홍원식 사장은 한국 최고의 ‘자린고비 경영인’이다. 홍사장이 얼마나 ‘지독한 사람’인가는 남양유업 주요 부서장들이 재량 껏 사용할 수 있는 ‘전결 금액’에서 쉽게 알 수 있다.

남양유업은 99년 연간 매출액(추정)이 6,000억원을 넘어서는 큰 회사이지만 영업, 기획, 총무부 등 주요 부서장들은 부하 직원들과 저녁 회식을 하려면 홍사장에게 돈을 타야 한다. 부장급 전결금액이 20만원, 상무급은 100만원으로 다른 회사의 5분의1에도 못 미치기 때문이다.

홍사장은 또 은행 빚이 한푼도 없고, 회사금고에 750억원의 현금을 쌓아놓고 있지만 사옥을 마련하지 않고 있다. 생산 공장의 설비는 최고수준이지만 본사는 창립이래 30년동안 서울 남대문로 대일빌딩에 세들어 있다.



47년을 신은 '전설의 슬리퍼'

한수길 롯데제과 사장도 남양유업 홍사장 못지않은 ‘짠돌이’다. 한사장 역시 간부사원들의 비용지출 한도를 부서장은 10만원, 본부장 30만원으로 철통같이 묶어 놓고 있다. 경리, 회계 등 재무부문에서 잔뼈를 키운 한사장은 ‘자린고비 경영’을 통해 매일 회사 자금흐름의 실핏줄까지 손바닥안에 놓고 정확하게 읽고 있다.

재계에서 차지하는 위치나 기업 규모라는 측면에서 홍사장과 한사장과는 차이가 나지만 코오롱그룹 이동찬 명예회장도 ‘자린고비’리스트에 빠질 수 없는 경영자다. 이 명예회장의 ‘지독함’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부분은 그의 슬리퍼이다.

코오롱그룹에 따르면 이 명예회장은 코오롱그룹을 세우기 이전인 53년부터 신어온 슬리퍼를 아직도 신고 있다. 윗부분이 닳아서 너덜거리는 데다가 곳곳에 얼룩이 있지만 사무실에 출근할 때마다 이 명예회장은 어김없이 이 슬리퍼를 신는다. 10여년전 비서실에서 새 것으로 바꿨다가 “멀쩡한 것을 왜 버렸느냐”는 이 명예회장의 호통을 받은뒤 쓰레기통에서 다시 찾아낸 일화는 유명하다.

경영자들의 ‘지독함’때문인지 남양유업, 롯데제과 등은 여러 면에서 승승장구를 거듭하고 있다. 남양유업의 경우 제품 고급화에 성공, 올해에도 여전히 업계 1위자리를 지키고 있으며 최근에는 미국 노바티스사와 제휴, 분유수출을 추진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롯데제과도 올해 매출액이 사상 최초로 1조원에 육박할 것으로 예상될 정도로 약진하고 있다.

비록 중국수출이 감소했음에도 불구, 금융비용 감소와 국제곡물 가격 하락으로 원재료비 부담이 경감되면서 창사이래 최대의 이익(6월말 현재 173억원)을 기대하고 있다.

국가경제에 막대한 타격을 입혔던 한보그룹 정태수 회장이 ‘마음에 드는’ 직원을 칭찬하기 위해 엄청난 액수의 돈을 즉석에서 나눠 줬던 것과 ‘자린고비 경영인’들이 ‘구두쇠’라는 욕을 먹으면서도 내핍 경영을 펼친 끝에 IMF한파에서도 직원들의 월급을 한푼도 깎지 않고 감원도 일체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조철환·주간한국부 기자


조철환·주간한국부 chcho@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