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언론, 특히 신문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

프랑스의 ‘대표적 지성’이란 자로 자크 아탈리는 ‘21세기 사전’에서 내다봤다. “인터넷에서 출판되는 신문은 우리가 알고 있는 현재와 같은 신문의 기능을 보충하다가 곧 자리를 대신 할 것이다.…” 앞으로 얼마간 신문 가판대에는 표준판 한 종류만 남아 있게 될 것이며 이 표준판이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극히 미미할 것이다.”

지난해 5월 미국 편집인협회 연설에서 세계적인 컴퓨터 칩 제도업자 인텔의 앤드류 그로브는 경고했다. “21세기에 언론이 당면한 상황은 교수대에 서 있는 것과 같은 것이다.”

사회 평론가며 작가인 마이크 고드윈은 ‘새로운 물결’을 몰고온 인터넷을 ‘시민기자들의 언론’이라고 이름지었다. “18세기 영국에서 인쇄업자는 발행인이었다. 전문기자가 필요없었다. 24시간 뉴스가 흐르는 속에 이제 뉴스를 접할 수 있는 시민들이 자기 이름의 신문을 갖게됐다. 매트 드러지 같은 ‘시민 기자’를 배척말라. 그들의 언론을 포용하라”고 주장했다.

그래선지 드러지는 세기말에 그의 ‘드러지 리포트’를 개설한 지 6년만에 2억여명의 접속자를 기록했다. 21세기 첫날부터 새 세기가 그의 것인양 뉴스를 쏟아내고 있다.

드러지는 1월2일자에 올린 그의 ‘리포트’에서 “백악관 신년 파티에 섹스파티가 열려. 경호원 목격”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특종보도’했다. 클린턴 대통령 부처가 링컨센터에서 뉴밀레니엄 행사를 마치고 백악관에 돌아온후 열린 신년파티에서 일부인사의 섹스파티가 벌어졌다는 것이다.

이름을 밝히기를 거부한 경호원은 백악관의 로즈가든 건너편 목욕탕에서 “세명의 인사가 뒤얽힌 섹스 장면을 보았다”고 말했다는 것. “이들은 이름을 알만한 사람이었으며 나는 놀랐지만 이를 보고하지 않았다. 내 직업을 잃을까봐 그랬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드러지는 섹스를 한 이들을 알지만 사생활의 자유 침해 때문에 이를 유보한다고 덧붙였다. 다만 그는 이 신년 파티에 참석한 저명한 인사중 주로 CBS, 뉴욕타임스, 워싱톤포스트 등의 주류언론 초청자의 이름을 공개했다.

드러지는 1월3일에는 그의 홈페이지에 자신을 ‘시민기자’로 부상시킨 모니카 르윈스키를 등장시켰다. 르윈스키가 이날 밤 CNN의 래리 킹 토크쇼에 나와 대담한 것을 보도한 것이다.

르윈스키는 래리 킹에게 그녀의 이름이 처음으로 등장한 것을 안 것은 ‘드러지 리포트’였다고 말했다. 킹은 이름이 등장한 것이 “‘뉴스위크’가 아니었냐”고 되물었다.

르윈스키는 “그건 드러지 리포트였어요. 나는 컴퓨터가 없어 근처 배달가게에 있는 컴퓨터에서 이를 볼 수 있었어요. 나는 울부짖었고 혼란에 빠졌어요.”

드러지는 이날(2000년 1월3일)리포트에 1998년 4월28일자의 자신의 ‘특종’기사를 다시 실었다. ‘4월28일자’에는 르윈스키가 그녀의 이름을 찾아내 당황하는 모습이 자세히 기술되어있다.

드러지 말이 20세기 언론을 행동으로 비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생성 언어학의 창시자이며 뉴욕 타임스가 ‘오늘날 살아있는 가장 중요한 지식인’이라고 말한 MIT 석좌교수 소암 촘스키가 이론적으로 비판하는 이들의 대표다.

1960년대에 미국의 베트남전쟁에 반대했던 그는 70년대에 들자 “미국의 언론 매체가 어떻게 특정집단을 변호하면서 민주적인 방법으로 삶을 살아가려는 시민의 힘을 잃게 했는가”고 묻기 시작했다. 그의 결론은 88년에 ‘여론조작’, ‘필요한 환상’이란 언론매체 행태를 자유주의적, 무정부주의적 시각에서 분석하는 책으로 나왔다.

촘스키는 민주주의는 ‘피지배자의 동의’위에 세워지고 움직여야 하지만 “20세기는 국민을 위해서 라기보다 특수이익집단인 소수의 이익을 위해서 운영되고있다”고 보고있다. 이렇게 느끼는 미국국민은 세기말에 80%에 이르고 있으며 그전에는 50%였다. 특수소수집단에 언론도 속한다. 그러기에 국민이 동의한 제도인 민주주의는 국민을 제약하는 구조에서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촘스키는 언론의 제도개혁을 주장하며 그 제도가 자유롭고 보다 공정한 것으로 바뀌기기를 바라고 있다.

드러지가 특종으로, 촘스키가 민주주의 원칙으로 21세기 언론을 바라본다면 갖가지 도전에 시달리는 현역들의 생각에도 그 해결책이 있다.

데이빗 브로더는 워싱턴 포스트의 컬럼니스트며 논설위원, 정치분야 대기자다. 73년이래 워싱톤을 움직이는 50대 컬럼니스트에 속해 있다.

“신문은 정부를 감시하는 책임이 있으면서 스캔들과 결점, 실패한 것을 찾는데 열중했다. 무엇보다 정치인들이 정당을 뛰어넘어 다수라는 연대를 만들려는 노력에는 눈을 돌리지 않았다. 21세기는 그래서 민주주의는 급성장하고 선거에 의해 선출된 정부, 의회는 약해진 역설 속에서 출발하고 있다.”

인터넷과 언론은 통합해야 하고 독자인 시민을 대변하는 신문과 언론은 21세기에도 민주주의와 함께 성장해야 한다는 자기성찰의 작은 목소리다. [박용배 통리문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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