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성장의 주역’, ‘천민(賤民) 자본주의의 전형’…

한국의 재벌만큼 이중적인 평가를 받는 집단도 드물다. 그런데 한국 재벌의 성장역사를 이야기할 때 결코 빼놓을 수 없는 기업이 있는데 바로 제일제당이다. 1953년 8월 고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이 설립한 제일제당과, 제일제당의 오너인 이재현 부회장 일가(이재현 부회장은 이병철 회장의 장남인 이맹희씨의 큰 아들이다)의 지난 47년은 영욕으로 점철된 한국의 재벌사를 고스란히 반영한다.


반일정책 어려움 속 제당사업에 손대

1953년 제일제당이 문을 연뒤 이후 10여년은 불모지나 다름없던 현실에서 시장을 개척한 초창기 국내 재벌들의 도전과 성공의 역사를 그대로 보여준다. 한국전쟁이 막바지에 다다른 1953년초 이병철 회장은 신규사업 진출을 모색하게 된다.

그는 제지, 제약, 제당 등 세가지 업종중에서 제당사업을 가장 유망하다고 판단, 그해 8월 일본에 생산설비를 발주했다. 그러나 이승만대통령의 반일정책으로 벽에 부딪힌다. “일본인은 한국 땅에 발을 디딜 수 없다”는 이대통령의 엄명으로, 기계설비의 조립·설치, 시운전에 필요한 일본 기술자가 입국할 수 없었다. 결국 설계도와 기계만 가져오고 나머지는 연수생을 일본으로 파견, 기술을 받아와야 했다.

우여곡절끝에 1953년 10월 설탕 시제품이 나왔다. 그러나 콩깻묵같아서 설탕이라고 부르기 어려웠다. 연속된 실패끝에 마침내 11월5일 제대로 된 6,275㎏의 설탕을 생산할 수 있었다. 감개무량한 이병철회장은 이날을 제일제당의 창립기념일로 정했다.

그 이후 제일제당의 사업은 눈덩이 불어나듯이 번창한다. 외국산 설탕의 절반에 불과한 가격 때문에 소비자들이 몰리면서 6개월만에 생산시설을 두배로 늘려야 했고, 불과 2년만에 국내 설탕시장의 33%를 차지하게 되었다. 결국 오늘날 삼성그룹이 크게 번성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당시 제일제당이 설탕을 팔아 번 돈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있듯이 제일제당은 삼성그룹과의 분가가 이뤄지던 1994~1995년에 큰 홍역을 치룬다. 대부분의 재벌그룹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창업주 자녀들의 분가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했던 것이다.

당시 제일제당과 삼성그룹이 갈등을 겪은 분야는 크게 두가지로 요약된다. 하나는 삼촌인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조카인 이재현 상무(당시 직책)의 경영권을 빼앗으려 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제일제당이 보유한 삼성생명 주식의 가치평가에 대한 것이다.

우선 경영권과 관련된 갈등. 삼성그룹은 제일제당 분가작업이 한창이던 1994년 이건희회장의 측근이라고 할 수 있는 이학수부사장을 제일제당에 파견한다. 그런데 이것이 화근이 되었다. 제일제당의 기존 경영진들은 이학수 부사장이 이사회에서 손경식회장(손경식 회장은 이재현상무의 외삼촌)과 이재현상무를 고의로 배제시켜, 경영권을 장악하려고 한다고 반발했다. 반면 삼성그룹은 “경험이 부족한 조카를 위해 삼촌이 전문가를 파견해 도와주려 했을 뿐”이라고 맞섰다.


분가 과정서 갈등의 골 깊게 패여

조카와 삼촌의 갈등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1995년 3월에는 소위 ‘감시 카메라’사건까지 벌어진다. 즉 서울 중구 장충동1가 110에 위치한 이병철회장의 구옥(舊屋)이자 이재현 상무가 살고 있던 집을 감시하기 위해 삼성그룹이 무인비디오 카메라를 설치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당시 제일제당 관계자는 “삼성그룹 임원 명의로 등기된 옆집 옥상에 한달전부터 카메라가 설치되었으며 이를 막기 위해 차단막을 설치했다”고 밝혔다.

삼성생명 주식의 가치를 놓고 벌였던 제일제당과 삼성그룹의 설전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는 수시로 말을 바꾸는 재벌의 행태를 여실히 보여줬다. 당시 삼성그룹과 제일제당은 제일제당이 보유한 삼성생명 주식(220만주)의 매각협상을 벌였는데 제일제당은 주당 20만원을 요구한 반면, 삼성그룹은 주당가치가 5만~5만6,000원대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흥미로운 것은 제일제당과 삼성그룹이 주장했던 논리이다. 제일제당은 삼성생명의 자산규모와 수익력, 그리고 똑같은 보험회사인 삼성화재의 주가가 20만원에 달하는 것을 감안하면 최소 주당 20만원의 가치가 있다고 주장한 반면 삼성그룹은 “생명보험회사의 자산은 주주의 것이 아니며, 이익과 잉여금에 대해서는 계약자가 우선권리를 갖고 있는 만큼 주당가치는 5만~5만6,000원대가 적당하다”고 주장했다.


기존 재벌들의 관행 답습하기도

그런데 이 대목에서 경제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삼성그룹이 최근에 ‘말 바꾸기’를 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1999년 삼성그룹은 삼성생명의 상장방침을 발표하면서 주당가치를 70만원이라고 발표했다.

삼성은 또 삼성생명 상장에 따른 막대한 이득을 보험가입자에게 환원하라는 요구에 대해 “보험회사 자산이 보험료 수입으로 획득했다고 해서 ‘계약자 자산’이라는 주장하는 것은 옳지 않다. 계약자는 보험회사와의 계약내용에 대한 권리만 갖는 채권자일뿐 상장에 따른 이득은 온전히 주주의 몫”이라며 불과 4~5년전 제일제당이 제시한 논리를 그대로 주장했다.

하지만 제일제당 역시 기존 재벌들의 편의주의적 관행을 답습하는 경향이 있다. 제일제당은 1999년 해태음료 매각협상 과정에서 ‘헐갑 매수’를 위해 인수가격을 수시로 낮췄다는 비난을 금융권에서 받고 있다.

또 국내에서는 삼성그룹과 완전히 결별했으면서도 삼성그룹의 지명도가 필요한 인도네시아 현지법인의 경우 여전히 회사이름을 ‘제일-삼성 인도네시아’로 유지하고 있는 것도 ‘삼성과는 사업상 완전히 별개의 회사’라는 주장과는 일치하지 않는 대목이다.



재벌 주식상속, 때 잘만나야

‘재벌들은 주가폭락을 좋아한다.’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이냐”고 묻겠지만 명백한 사실이다. 주가가 떨어졌을 때 자신이 보유한 계열사 주식을 자녀들에게 물려줘야 증여세의 부담이 훨씬 줄어들기 때문이다.

실제로 제일제당 이재현 부회장은 증시가 바닥을 치던 1998년 1월과 7월에 어머니인 손복남 고문으로부터 각각 53만주와 63만3,928주를 증여받았다. 증여시점인 1998년 1월30일과 7월7일 각각 2만5,100원과 2만6,000원에 불과했던 제일제당 주가가 지난 7일에는 8만9,000원까지 상승한 것을 감안하면 손고문이 부담해야 할 증여세가 그만큼 줄어든 것이다.

조철환·주간한국부 기자


조철환·주간한국부 chcho@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