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25일, 러시아 페테르스부르크 조선소. 중국 해군이 러시아로부터 최신형 ‘소브레멘니급’ 구축함 1척을 인계받았다. 97년 중국이 10억 달러에 발주한 2척 중 한 척이었다. 중국 해군은 이미 지난해 2월부터 러시아 해군의 도움을 받아 이 구축함을 시험운항해 왔다. 이 구축함은 중국에서 달려온 함대의 호위속에 위용을 뽐내며 발틱해와 지중해를 지나 중국으로 항진했다.


“미국 유일패권에 공동으로 맞서자”

소브레멘니급 구축함은 핵탄두 탑재가 가능한 초음속 SS-N22 함대함 미사일 발사관 8개를 장착하고 있다. 아울러 선수의 소나(수중음향탐지기)와 어뢰발사관, 로켓발사대, 헬기이착륙 시설 등 강력한 대잠 작전능력도 갖고 있다. 이 구축함은 대만 함대는 물론, 앞으로 양안 긴장시 대만해협에 배치될 미국 항공모함 전투단에도 강력한 위협요소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번 구축함 인수는 80년대 중반 이후 중·러간에 이뤄진 군사협력의 최근 사례에 불과하다. 아울러 양국이 ‘전략적 동반자 관계’란 기치 아래 추진해 온 전반적 협력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양국관계는 단순히 첨단군사기술을 갈구하는 중국과 달러에 목마른 러시아의 일시적 협력을 훨씬 넘어서는 깊이를 갖는다.

지난해 12월9일 오전, 베이징(北京) 띠아오위타이(釣魚臺) 국빈관에서는 장쩌민(江澤民) 중국주석과 보리스 옐친 러시아 대통령이 샴페인 잔을 부딪히고 있었다. 인민일보에 따르면 江주석은 최근 양국이 국제문제에서 협력해온 데 만족을 표시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중·러 양국은 세계의 다극화와 전략적 균형 및 안정에 중요한 책임을 지고 있다. 양국이 전략적 협력을 강화하는 것은 쌍방의 현재와 장래에도 이익이며, 세계평화와 안전에도 공헌이 된다.”

요컨대, 중·러가 표방하는 전략적 동반자 관계는 쌍방의 내정 뿐 아니라 세계를 무대로 한 대국적 판짜기까지 계산에 넣은 것이다. 대국적 판짜기는 다름아닌 ‘다극화’다. 미국의 유일패권에 공동으로 맞서자는 것이다. 냉전시절 닉슨 미 대통령이 중국과의 협력을 통해 소련에 맞섰던 게임논리를 뒤집어 사용하고 있는 셈이다.

옐친을 이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권한대행의 목소리에도 이같은 색채를 강하게 띠고 있다. 푸틴은 신년사에서 강력한 러시아의 부활을 강조하면서 체첸사태에 대한 서방의 개입은 내정간섭이라고 주장했다. 경제체제에서도 “서방식 시장경제도, 구소련식 계획경제도 아닌 적절한 시장경제를 지향한다”고 밝혀 중국과의 친화성을 시사했다.

중·러 협력에 재시동이 걸린 것은 85년 미하일 고르바초프 구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페레스트로이카(개혁)를 시작하면서부터. 구소련의 개혁은 앞서 79년부터 실시된 중국의 개혁개방과 맞물려 양국관계 해빙에 전기를 마련했다. 91년 5월 양국간 동부국경이 획정되고, 94년 10월에는 서부국경 문제도 타결됐다. 이 과정에서 찾아온 것이 러시아 동부지역과 중국 동북3성(만주) 지역간 교류활성화를 비롯한 양국의 경제관계 강화였다. 93~96년 양국무역은 약 200억 달러. 이 수치는 중국이 독일과 미국에 이은 러시아의 제 3대 교류국이 됐음을 의미한다.


활발한 군사협력, 중국군현대화에 큰몫

양국간 군사협력도 주목할 만 하다. 92~94년 중국은 러시아제 무기 17억 달러를 수입해 러시아의 최대 무기시장으로 떠올랐다. 89년 천안문 사건으로 서방이 대중국 군사협력을 단절한 사이에 양국관계가 더욱 밀접해진 것이다. 대형 일류신 76 수송기에서부터 첨단 수호이 29기 직수입과 라이선스 생산, 킬로급 잠수함 도입 등이 그것이다. 중국의 군사력 현대화는 러시아와 떼어 놓고는 생각할 수 없다.

러시아 내부에서도 중국의 군사력 증강에 대해 우려하는 견해가 없는 것은 아니다. 비약적인 경제성장을 바탕으로 한 중국이 군 현대화를 이룰 경우 장기적으로 러시아 안보가 위협받을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아울러 극동지역 경제교류 활성화가 자칫 러시아 극동을 중국으로 변질시킬 수도 있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하지만 이같은 견해는 아직 소수의견에 불과하다. 양국의 이해가 상충되기 보다는 조화되는 점이 더 많기 때문이다.

양국은 어떤 점에서 조화될 수 밖에 없을까. 우선 과거의 이념전쟁이 사라지고 국경협정도 체결돼 상호 위협요인이 크게 줄었다. 둘째, 경제교류와 군사협력 분야에서 호혜적인 관계가 형성됐다. 셋째, 탈냉전기 미국의 군사적 유일패권에 대해 공동의 우려를 갖고 있다. 넷째, 소수민족 문제와 경제체제 이행에 따른 정치안정 등 공통된 내부과제를 안고 있다. 다섯째, 중국의 전략적 우선순위는 북방이 아니라 경제발전 지역인 동부와 남부에 있다. 다시말해, 강력한 중국이 가까운 장래에 러시아에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일본 군사력강화로 이어지면 ‘위험’

그러면 중·러 양국의 전략적 동반자 관계는 21세기 어떤 형태로 발전하게 될까. 주변국들은 어떤 영향을 받게 되고, 또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이스라엘 르하이 대학의 라잔 메논 교수(국제정치)는 영국 전략문제연구소(IISS)에서 발행하는 계간 ‘서바이벌’ 최근호 기고문에서 이렇게 충고했다.

“서방 지도자들은 러·중간의 전략적 접근을 동맹과 혼돈하지 말아야 한다. 양국관계가 동맹으로 발전하느냐 아니냐는 궁극적으로 서방의 태도에 달렸다.”

그는 현단계에서 볼 때 양국관계의 발전이 21세기 지구촌의 전략구도를 바꿀 정도의 변수는 아니라고 말한다. 오히려 양국의 관계 발전이 동북아 안정에 해보다는 득이 많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비록 러시아가 무기수출을 통해 중국 군사력을 강화하는 측면이 있는 반면, 양국간에 진행돼 온 군비통제 노력이 지역안정에 기여하는 것도 사실이란 이야기다.

그는 무엇보다 중·러 전략적 동반관계를 위협으로 봐서는 안된다고 주장한다. 상대방을 적으로 간주하면, 상대방은 진짜 적이 돼버린다는 경고다. 그는 이같은 견지에서 두가지를 권고하고 있다. 우선 미국은 중국을 자극하지 말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미국은 개입(engagement)과 억지(deterrence)정책 사이에서 조화를 취해야 한다. 또 하나는, 중국과 균형을 맞춘다는 빌미로 일본의 군사력을 강화하는 것은 위험하다. 군사대국 일본은 자칫 중·러 관계를 동맹으로 발전시키고, 한국을 소외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다.

배연해·주간한국부 기자


배연해·주간한국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