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회의가 최근 위헌결정이 난 군필자에 대한 가산점 부여제를 사실상 존치하는 대신 여성에게도 사회복지시설 봉사활동 경력이 있을 경우 공무원 채용시 가산점을 부여하겠다고 발표, 논란을 가중시키면서 혼란까지 불렀다.

국민회의는 헌법재판소가 위헌결정을 내린뒤 제대군인들의 반발이 극심해지자 제대군인들을 다독거리고 여성들까지 끌어들일 수 있는‘국가봉사경력 가산점제도’를 발표했으나 충분한 검토없이 개선안을 서둘러 만들어 발표한 흔적이 여기저기서 드러나 “총선을 의식한 얼치기 정책”이라는 비난을 사고 있다. 정부 일각에서는 “여당이 또 사고를 쳤다”는 지적도 있다.

여성단체들이 강력히 반발하는 것은 물론 정작 제대군인들도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고 있고 관련 부처는 정확한 내용을 몰라 갈팡질팡하는 등 혼선을 거듭하고 있다.


“총선의식한 얼치기정책”비난 쏟아져

국민회의의 발표이후 PC통신과 국민회의 홈페이지, 청와대 홈페이지, 국회홈페이지 등에는 국민회의의 발표에 대해 환영하는 의견도 있지만 비난의 목소리가 상대적으로 크게 울려퍼지고 있다.

ID가 ‘대성의학’인 네티즌은 “조삼모사도 아니고 도대체 헌재결정이 장난이냐”며 “정부여당이 표에만 눈이 어두워 이리땜빵 저리땜빵의 임기응변으로 대처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반면 ID가‘애수75’인 네티즌은 ‘필독! 우리가 승리했습니다’라는 글을 올려 당정 결정에 만족을 표시했다.

국민회의가 발표한 개선안은 현행 군복무자 가산점제도는 그대로 두는 대신 평등권 침해 소지를 없애기 위해 군미필자나 여성의 경우에도 대통령령이 정하는 의료기관, 구호기관, 보호시설 등 사회복지시설에서 봉사활동을 할 경우 1개월당 0.1%씩, 최대 3%의 범위내에서 가산점을 부여한다는 것이 골자다. 또 군필자의 사기앙양을 위해 군복무기간의 재직기간, 호봉합산대상을 공무원에서 공기업체로 확대하고, 사기업의 경우 자율에 맡기되 이같은 경력가산점을 부여할 경우 세제혜택을 줄 수 있도록 했다.

국민회의 임채정 정책위의장은 “국가를 위해 봉사한 사람들에게 가산점을 주는 것은 당연하다”며 “제대군인지원법과 공무원임용령 개정안 등을 마련, 이같은 내용의 제대군인 가산점 제도 개선방안의 시행에 들어갈 방침”이라고 말했다.


여성단체들 “헌정파괴행위”강력반발

여성단체들은 국민회의의 결정을 “헌정파괴행위”라며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여성단체협의회는 성명을 통해 “정부·여당의 방침은 헌정질서를 거스르는 명백한 위법행위”라며 “법을 지키고 운영해야 할 주체인 집권여당이 위헌결정이 난 제도를 이름만 바꿔 유지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비난했다. 여성민우회도 “향후 총선의 표를 의식한 조처”라며 “집권당이 헌법을 지키지 않고 헌정질서를 깨뜨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재향군인회는 “헌재의 위헌결정이 난 순간부터 제도가 무효이기 때문에 새로운 입법절차가 이뤄지기 전까지 군가산점은 없는 것이고, 따라서 특별히 환영할 것도 없다”며 “다만 국가를 위해 젊음을 바친 군필자들에게 적절한 보상책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헌법재판소는 당정의 발표에 대해 공식적인 입장표명을 유보했지만 불쾌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헌재관계자는 “가산점을 누구에게나 주든지, 아니면 아무에게도 안주든지 해서 형평을 맞추는 것은 입법권자의 재량”이라며 “분명한 것은 현행 제도는 위헌이고 무효라는 점이며 새로 만들어질 법이 헌법위반인지 여부는 그때 가서 위헌심판청구나 헌법소원이 들어와야 평결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했다.

정작 문제는 국민회의가 일부 부처만 참여시킨채 개선안을 만들어 실현가능성과 파급효과 등을 면밀하게 검토하지 않고 발표해 정작 국가고시 주관부처들은 구체적인 내용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점이다.

지난해 12월23일 헌재의 결정이후 각 시·도에 급히 군필자 가산점금지를 지시한 행정자치부와 교육부는 국민회의의 개선안 발표이후 문의전화가 빗발치지만 구체적인 내용을 전혀 몰라 한동안 우왕좌왕했다. 16일 필기시험이 치러지는 제41차 9급 국가공무원 공채시험과 2월9일과 29일 실시되는 광주및 충남의 9급 사회복지직 공채시험 남성응시자들은 가산점없이 여성응시자들과 경쟁해야 하지만 5월16일로 예정된 42차 9급공채 응시자들은 합격자발표일 전에 새법이 만들어져 발효되면 가산점을 받게된다.

행자부 김형선 고시과장은“국민회의의 방침이 반영된 새 법이 발표전에는 군필자에게 혜택을 줄 수 있는 아무런 근거가 없다”고 밝혔지만 “왜 우리만 손해를 봐야하느냐”는 남성 응시자들의 항의에 애를 먹고 있다.

교육부에도 당정의 군필자 가산점 존속결정이 발표되자 초등임용고사 최종합격자 발표(14~15일)때 가산점이 반영되느냐는 시·도교육청과 응시자들의 문의가 빗발치고 있다.


현실성 결여된 정치적 결정

복지부 관계자는 “사회복지사 등 전문인력이 필요한 사회복지시설 사정상 취업연령의 여성인력이 필요한 곳은 거의 없다”며 “현실적으로 청소년도 아닌 20대 여성이 구호시설 등에서 봉사활동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여성단체들도 “여성이 취업시 군필자와 동일한 점수를 받으려면 꼬박 26개월을 봉사해야 하는데 일자리도 마땅치 않고 봉사여건도 열악한 상황에서 이 기간을 채울 여성이 몇명이나 되겠냐”고 반문했다.

장애인들의 반발은 더욱 심하다. 한국장애인단체 총연맹 관계자는 “이번 결정은 장애인은 안중에도 두지 않겠다는 발상”이라며 “정부는 고용을 촉진하겠다고 했지만 정작 정치권에서는 장애인을 취업혜택에서 제외해버렸다”고 분개했다.

충분한 당정협의와 면밀한 정책검토없이 서둘러 발표부터 하는 바람에 혼란을 부추기고 표를 의식했다는 의혹만 받는 셈이다. 국민회의 정책위 관계자는 “국방부및 국가보훈처와는 지난달말부터 수차례 협의했으나 다른 부처에는 알리지 않았다”며 “여러 부처와 상의하면 되는 일이 없다”고 말했다. 국민회의내에서도 각계 의견을 조율한뒤 발표하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더이상 방치할 경우 여론이 걷잡을 수 없이 악화한다”는 논리에 밀린 것으로 알려져 총선을 의식했음을 시사했다.

송용회·주간한국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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