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오롱 그룹 신세기통신 매각, 6년만에 원점으로

‘부메랑(Boomerang)’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이 전투나 사냥때 사용하던 나무로 만든 낫 모양의 투척기구이다. 부메랑은 목표물에 명중하지 않으면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독특한 성질을 갖고 있다.

이처럼 재미있는 특징 때문에 ‘부메랑’이라는 단어는 일개 사냥도구를 가리키는 이름에서, 이제는 사회과학 용어로까지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즉, 경제학에서는 개발도상국에 경제원조를 한 선진국들이 나중에 자신들의 도움으로 산업을 일으킨 개도국들의 수출공세에 시달리게 되는 현상을 가리켜 ‘부메랑 효과’라고 부르고 있다.


신세기 통신 지분매각, 재무구조 개선자금 조달

그렇다면 새천년을 맞은 한국 재계에서 ‘부메랑’이라는 단어가 가장 잘 어울리는 회사는 어디일까. 코오롱그룹이다. 코오롱그룹은 1994년 ‘신세기 이동통신’의 2대 사업자로 선정, ‘섬유회사’라는 이미지에서 탈피해 ‘정보통신’으로의 업종전환을 꿈꿔왔으나 6년만에 원점으로 돌아온 상태이다.

2000년 1월 현재 겉으로 드러난 코오롱그룹의 경영상태는 매우 양호하다. 코오롱그룹은 외환위기 이후 경쟁업체인 고합그룹과 한일합섬 등이 워크아웃에 돌입하거나 사실상 퇴출된 것과는 달리 탄탄한 재무구조를 유지하고 있다. 코오롱은 IMF체제이후 외자유치(2억5,000만달러)와 유상증자(4,500억원), 자산매각(1조2,380억원) 등으로 1조9,821억원의 재무구조 개선자금을 조달, 1998년 335%이던 부채비율을 1999년말에는 157%로 낮춘 상태이다.

코오롱그룹이 이처럼 놀라운 부채비율을 유지하게 된 결정적인 배경은 신세기통신 지분의 매각때문이다. 코오롱그룹은 지난해 12월20일 자신들이 보유한 신세기통신 지분(23.5%) 전량을 포항제철에 1조691억원에 매각했다. 코오롱그룹 주거래은행인 한빛은행의 최승남 심사역은 “신세기통신 지분매각으로 8,397억원에 달하는 막대한 매각 차익을 실현해 그룹전체 부채비율이 157%수준으로 낮아졌다”고 말했다.

신세기통신 매각으로 코오롱그룹의 주력 계열사 역시 탄탄한 회사로 변모했다. 코오롱상사의 경우 신세기통신 지분매각으로 1999년 11월말 550%에 달했던 부채비율이 순식간에 148%까지 낮아졌다. 전체 매각대금 1조691억원중 1,575억원을 ㈜코오롱 및 코오롱건설 등 관계사에 지불하고도 5,222억원에 달하는 막대한 매각차익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코오롱도 신세기통신 지분매각으로 1,102억원의 차액을 정산받아 총 2,222억원의 매각차익을 실현, 전액을 부채상환에 사용했다. 이에 따라 지난해말 부채비율은 121%수준으로 떨어졌다. 코오롱건설 역시 378억원의 차액을 정산받아 총 762억원의 차익을 실현했다.


"21세기 핵심사업 포기" 재계 부정적 시각

그러나 재계에서는 코오롱그룹의 신세기통신 지분 매각을 부정적인 시각에서 바라보려는 경향이 우세하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비록 신세기통신이 PCS 3사와 비교할때 시장경쟁률이 가장 뒤떨어졌던 것은 사실이지만 ‘정보통신업’이 21세기 핵심사업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코오롱그룹이 1조원이 넘는 현금을 받고 자신들의 ‘미래’를 포기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코오롱그룹은 1996년 1월 이웅렬 회장의 ‘3세 경영체제’가 공식 출범하면서 ‘정보통신’에 그룹의 미래를 걸다시피 했다. 1994년 우여곡절끝에 신세기통신의 ‘2대 주주’자리를 확보, 차세대 정보통신사업의 주역으로 떠올랐으며 방송(A&C코오롱), 커뮤니케이션 네트워크 등으로도 사업영역을 확장해 2000년에는 정보통신 분야의 매출비중을 30%까지 끌어 올린다는 전략을 세웠다.

당시 코오롱그룹 내부에서는 “이동찬 회장이 ‘섬유회장’이라면 이웅렬 부회장(당시 직책)은 ‘정보통신회장’”이라는 말이 흘러나올 정도였다.

하지만 6년만에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왔다. 신세기통신이 떨어져 나간뒤 코오롱그룹 계열사중 ‘차세대’라는 수식어가 붙을 만한 곳은 전무한 상태이다. 코오롱그룹 관계자는 “신세기통신 매각직후 ‘그룹구조조정 본부’조차도 그룹의 미래에 대해 우려하고 있을 정도”라고 말했다.

물론 코오롱그룹은 공식적으로는 “21세기를 대비한 신규사업으로 인터넷·정보통신, 생명공학(Bio Material), 벤처투자 등 3개부문을 선정, 3년동안 5,000억원을 투자할 계획”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신세기통신 매각으로 확보한 1조원의 현금자산중 지금 당장 가용할 수 있는 부분이 1,000여억원에 불과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이와 관련 한빛은행 최승남 심사역은 “㈜코오롱, 코오롱상사 등 주력계열사의 경우 과도할 정도로 부채비율을 낮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코오롱그룹이 핵심·주력사업으로 분류한 계열사중 코오롱 할부금융이나 코오롱 스포렉스 등은 여전히 대출이 꺼려지는 회사”라고 말했다.

기업은 끊임없이 변해야 한다. 정보통신 진출의 꿈을 6년만에 접어야 했던 코오롱그룹이 새천년을 맞아 어떤 모습으로 변할지 재계의 관심이 쏟아지고 있다.

조철환·주간한국부 기자


조철환·주간한국부 chcho@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