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중반, 키신저 동부서주

미국의 입장에서 ‘한반도 핵위기’는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 선언으로 초래된 1993~94년 위기가 처음은 아니었다. 훨씬 앞선 1970년대 중반 박정희 대통령의 핵개발 계획으로 한차례 홍역을 치른 바 있다. 당시 미국 국무장관이었던 헨리 키신저가 한국의 핵개발 저지를 위해 리처드 스나이더 주한 미대사에게 보낸 전문(telegram)이 1월20일 공개됐다.

키신저는 1975년 3월4일자로 타전된 전문에서 스나이더 대사에게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한국의 핵기폭 장치 개발능력과 운반시스템 개발을 억제”하도록 지시했다. 그는 전문에서 “한국정부가 초기단계의 핵무기 개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는 주한 미 대사관의 평가(보고)에 워싱턴 요원들이 전적으로 동의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한국의 핵능력에 대한 (미국)부처간 합동연구가 종료됐으며 향후 10년 안에 한국이 제한적인 핵무기와 미사일을 개발할 수 있다는 점을 밝혀냈다”고 설명했다. 그는 한국의 핵개발이 가져 올 외교적 파장에 큰 우려를 표명했다. “한국정부의 핵보유 시도는 핵무기가 실제로 만들어지기 전에 광범위하게 알려질 것이며, 이 사실 자체로 주변국들에 결정적인 정치적 충격을 주게 될 것이다.”

그는 한국의 핵개발 저지를 위해 국제공조를 취하고 있다는 사실도 밝혔다. “핵물질 등 ‘민감한 품목’의 거래 등을 논의하기 위해 주요 핵물질 공급국(미, 영, 불, 일, 소, 캐나다)간 비밀회의를 제안했다. 프랑스를 제외한 모든 국가들이 미국의 제안에 동의했으며 프랑스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미 국무부는 이 전문을 15부 작성해 한국의 핵무기 개발과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캐나다, 프랑스, 일본주재 미국 대사와 국제원자력기구(IAEA) 미국 사무소장 등에게 타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전문에는 프랑스가 시험용 재처리 설비를 한국에 제공하려 했으며 이로 인해 미국과 갈등이 빚어졌음을 확인해주는 내용도 있다.

한국의 핵개발 저지책으로 미국이 고려했던 방법은 핵무기 개발비용을 크게 증가시켜 자진포기하도록 하는 것. 키신저는 이를 위해 미국의 단독 조치와 함께 핵물질 공급국들이 공동으로 한국으로 하여금 핵관련 장비와 기술을 입수하지 못하게 하는 방법을 제시했다. 또한 한국에 NPT 비준압력을 가하고, 나아가 한국 핵시설에 대한 감시강화 및 한국의 기술수준에 대한 정보를 공개하도록 하는 방안도 거론됐다.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