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의 배반’

3류 멜로 영화의 제목으로 어울리는 말이다. 그러나 이는 대우자동차를 통해 한국 시장 진출을 노리는 미국의 거대자본인 GM을 바라보는 한국 자동차업계의 기본 정서이다. 1972년 당시 신진자동차의 지분 50%를 인수해 한국에 진출한 GM이 이후 파트너인 신진, 대우와 극심한 마찰을 벌여 결국 파트너를 도산으로 몰아 넣었다는 것이다.

GM이 대우자동차와 본격적으로 제휴하게 된 가장 직접적인 배경은 1980년대 초반을 강타한 오일쇼크 때문이었다. 당시 한국 자동차 시장은 규모자체가 미국의 ‘빅3’에게는 관심의 대상조차 되지 않았다. GM은 오일쇼크로 연료소비가 적은 일본 소형차에게 빼앗긴 시장을 되찾기 위해 ‘월드카 전략’을 구상하고 있었다. 즉 미국 이외의 지역에서 값싸게 생산한 차를 주문자 상표부착 방식(OEM)으로 조달, 일제와 경쟁한다는 전략이었다.


대우가 만든 'GM의 월드카' 르망

이런 이유로 GM이 선택한 나라가 기술기반과 저렴한 노동력을 갖춘 한국이었고, 이때 나온 ‘월드카’가 르망이었다. 값싼 노동력을 바탕으로 대우가 만들어낸 르망은 GM의 판매망을 통해 미국시장에 진출, 비교적 호평을 받았다.

여기에서 자신감을 얻은 대우는 신차 기술개발과 공장의 생산능력 확대 등을 추진했지만 오일쇼크에서 회복한 GM은 제동을 걸었다. 1992년 대우자동차는 생산능력 확충을 위해 1억달러씩의 증자를 요구했으나 GM에 의해 일언지하에 거절당했다. GM으로서는 아시아의 값싼 생산기지의 하나에 불과한 대우가 독자적인 자동차업체로 발전하는 것을 바라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그해 겨울 GM은 대우에게 지분 전체를 매각, 한국 시장에서 철수한다.

당시 GM과 대우의 결별을 보고 국내 모든 언론은 대우의 미래를 암담하게 표현했다. 그러나 대우는 오히려 GM과의 결별이후 멋지게 성공을 거두는 것처럼 보였다. 폴란드, 우즈베키스탄 등 동구권 시장에 진출, 기반을 잡은 것이다.

대우와 GM이 또다시 만난 것은 1998년 1월. 대우자동차가 폴란드 FSO공장을 인수, 승승장구를 거듭하고 있는 것을 본 GM이 대우자동차에 50억달러를 투자키로 하고 협상을 시작했다.

이미 대우그룹을 조여드는 자금압박을 느끼기 시작한 김우중 대우그룹회장은 대우그룹과 자신의 운명을 GM과의 협상에 걸었다. 당시 원·달러환율이 달러당 1,500~1,600원대였음을 감안하면 한화로 8조원이 넘는 자금을 유치할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결과는 8개월만의 ‘협상 결렬’이었다.


GM과의 협상 결렬, 대우해체의 길로

GM과의 협상결렬은 대우에게는 치명적이었다. 대우그룹이 공중분해된뒤 김우중 회장이 “GM과의 협상에 너무 많은 기대를 하는 바람에 구조조정의 시기를 놓친 것이 결정적인 실패원인”이라고 밝힐 정도로 GM의 결렬선언은 대우그룹에게 돌이킬 수 없는 사태를 초래했다.

국내 자동차 업계에서는 대우자동차를 두번이나 배반한 GM이 또다시 대우를 인수하려는 것에 대해 본능적인 거부감을 드러내고 있다. 한국자동차공업협회 김소림 홍보전시팀장은 “GM이 1999년 김우중 회장이 자금난에 시달리는 것을 방치, 대우그룹을 붕괴시킨 것은 다국적 기업의 전형적인 해외기업 인수패턴”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당초 협상지연으로 인수가격을 최대한 낮추려고 했던 GM이 정부와 채권단이 독점적 권리를 인정치 않는데다가 경쟁사인 포드가 대우 인수에 관심을 기울이자 매각 협상을 갑자기 서두르고 있다”고 꼬집었다.

물론 자신들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에 대해 GM의 입장은 완전히 다르다. “1972년 한국시장에 진출한뒤 GM은 한국 자동차 시장에 큰 공헌을 했다”는 입장이다. GM코리아 관계자는 “GM과 대우자동차가 합작을 해제하기까지 20여년동안 GM은 한국에서 활발한 사업을 전개, 한국 자동차 역사의 일부가 되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대우자동차와의 합작 해제에도 불구하고 GM은 1985년 설립한 델파이 코리아를 통해 한국 자동차 부품시장에서 사업을 활발하게 지속했으며 그동안 5개의 합작사를 통해 연간 10억달러의 매출을 올렸으며 그 중 절반이상을 수출했다고 설명했다.


포드가 대우인수에 걸림돌

그렇다면 GM과 마찬가지로 국내 자동차 시장에 진출한 포드, 벤츠 등 외국 자본들의 행태는 어떨까. 결론부터 말하면 그들 역시 한국 자동차사업의 발전이라는 목표와는 무관하게 ‘자본의 논리’에 충실하게 행동하고 있다.

1999년 현대자동차에 매각된 기아자동차의 대주주였던 포드자동차의 경우 기아자동차 인수가격을 지나치게 낮게 써내 물의를 빚었다. 포드는 당시 기아자동차 인수대금을 액면가인 주당 5,000원 이하로 응찰, 입찰을 주관했던 산업은행 관계자들을 놀라게 했다.

이들 외국 자본들은 또 한국과 아시아시장에서 경쟁업체가 우위를 차지하지 못하도록 상호 견제하는 역할도 한다.

당초 대우자동차 입찰에 단독으로 나설 것으로 보였던 GM의 경우 포드가 인수경쟁에 뛰어들면서 골치를 앓고 있다. 이와 관련 잭 스미스 GM회장은 최근 “대우자동차 인수작업의 가장 큰 장애물(Obstacle)은 포드”라고 밝힐 정도이다. GM역시 1998년 기아자동차 인수때 상대적으로 우위에 섰던 포드의 헐값 인수를 막기위해 공작을 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조철환·주간한국부 기자


조철환·주간한국부 chcho@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