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성기 맞은 강남 유흥가 '호스트 바'

1월18일 새벽3시. 룸살롱과 단란주점들이 밀집한 서울의 대표적 유흥가, 강남구 역삼동 J빌딩 주변으로 서울 강남경찰서 소속 형사들이 하나둘씩 모여 들었다. 흥청대던 술집들도 하루 영업을 정리하고 네온사인도 대부분 꺼져버린 시간. “1조 뒷문, 2조는 정문, 다음조는 대기”작전명령이 떨어졌다.

‘엄청난 규모의 호스트바가 영업하고 있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현장확인을 위해 잠복하기를 3시간여. 후문으로 분주하게 드나드는 젊은 여자들을 통해 사실상 첩보내용을 검증한 뒤였다.

빌딩 지하로 쏟아져 내려간 형사들은 굳게 닫힌 철제문을 두드렸다. 그러나 예상했던대로 내부에선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입수한 전화번호로 전화도 걸어 봤지만 역시 벨만 울릴 뿐이었다. “깨라”출동할 때 갖고간 해머로 한 형사가 철제문의 잠금장치를 두드리는 사이 119구급대가 긴급 호출됐다.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쾅, 쾅’잠금장치가 깨지면서 육중한 철제문이 열렸다. 그러나 철제문안 200여평 규모의 술집 내부는 칠흑같이 어두웠다.


호스티스들이 주고객, 여자연예인도 포함

“잘못 짚었나?” 하지만 사람이 드나드는 것을 확인한 형사들로서는 발길을 돌릴 수 없었다. 여기저기를 살피던 형사들의 눈에 맥주박스가 가득 쌓인 벽면이 들어왔다. 맥주박스를 걷어내자 감춰졌던 비밀통로가 나타났다.

출입문을 열어제친 형사들 앞에는 ‘ㄱ’자 모양으로 늘어선 10개의 밀실, 그리고 그 안에서 뒤엉킨 호스트와 여성고객 70여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날 단속은 한편의 영화장면을 연상케 했다.

국내 최대 규모급 호스트바 ‘실크로드’는 그렇게 해서 세간에 알려지게 됐다. 이날 경찰의 기습단속에 이모(25)씨 등 39명의 호스트가 한꺼번에 적발됐다.

최근 서울 강남을 무대로 호스트바가 전성기를 맞고 있다. 강남구 논현동 신사동 등 강남 일대에만 300여군데의 호스트바가 성업하는가 하면 ‘실크로드’처럼 호스트를 50~70명이나 거느린 대형 호스트바도 상당수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여성 주당들이 점차 늘어나는 것도 이유지만 주고객층인 유흥업소 여성종사자들이 업소의 활황으로 호스트바를 자주 찾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실크로드의 경우에도 고객의 95%는 유흥업소 종사 여성들이었고 그 나머지가 재래 의류시장 여사장들, 연예인들이었다.

특히 실크로드 단골고객 중에는 여자 탤런트 L, H씨 등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주고객층이 유흥업소 종사 여성들이다 보니 대부분 호스트바의 영업은 새벽 2시께부터 시작된다. 호스티스들이 퇴근해서 쌓인 스트레스를 풀며 술한잔 걸칠 수 있는 시간에 맞춘 것이다.


접대규정 두는등 치열한 서비스경쟁

호스트바의 활황은 자연히 고객유치를 위한 업소간의 치열한 경쟁으로 이어졌다. ‘접대규정’까지 둬가면서 손님에게 성심껏 서비스(?)하는 것은 물론, 고객들의 취향에 맞는 접대로 단골을 확보하기 위해 골몰하기도 한다.

지난해 12월 서울 서초경찰서에 단속된 서초구 서초동 ‘파파라치’호스트바의 경우 ‘다리 꼬고 앉지 않는다. 손님 어깨에 손올리지 않는다. 손님이 피라고 하기전엔 담배 피지 않는다.…’는 등의 접대규정을 따로 두고 있었을 정도였다. 실크로드의 경우에도 나체쇼와 변태적 신고식 등 ‘화끈한 서비스’로 손님의 ‘입맛’을 맞춰왔다.

대신 술값은 천정부지다. 한번 들어서면 100만원 이상의 술값은 각오해야 하는데다 호스트들에게 주는 봉사료도 1인당 7만~10만원. 남성들이 이용하는 룸살롱보다 비싸면 비쌌지 결코 싸지는 않은 액수다. 이른바 ‘2차 비용’은 한술 더 뜬다. 실크로드의 호스트 장모(24)씨는 “2차비용은 60만원부터 80만원은 줘야 한다. 대신 아침9시부터 오후2시까지 성심껏 서비스한다”고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술값에 위험부담금 포함, 떴다방식 영업도

고가의 술값에는 경찰의 단속에 대한 위험부담금도 포함된다. 호스트바가 변태업소로 찍혀 경찰단속의 표적이 되면서 철저한 보안유지와 문단속에 그만큼 비용이 들어가는 까닭이다. 아예 경찰단속을 피해 3~4개월 단위로 이곳 저곳을 옮겨다니며 ‘떴다방식’영업을 하는 호스트바도 상당수다. 이런 상황이고 보니 일반 여성들이 호스트바를 알고 찾아가기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어느 어느 업소가 잘 나가고 어디에 있다’는 식의 입소문은 주고객층이 몰려있는 강남일대 유흥가에서만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남자고객의 접대를 위해 룸살롱 등을 자주 찾았던 재래 의류시장 여사장들이 자기들끼리 모여 호스트바를 자주 찾을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했다.

이들 사이에서 ‘선수’로 불리는 호스트들의 몸값도 최근들어 상한가다. 잘생기고 깔끔한 매너로 무장한 호스트의 경우, 하루에만 30만원의 고수익을 올리는데다 여러 군데의 업소로부터 스카우트제의를 받기도한다.

그렇다고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모호스트바의 업주는 “PC통신과 입소문 등을 통해 구인광고를 내면 지원자는 많지만 직접 면접을 해보면 쓸만한 ‘선수’를 찾기는 힘들다”고 말했다. 호스트 장씨는 “즐기면서(?) 돈도 벌 수 있다고 쉽게 생각하지만 여자 손님들의 입맛 맞추기가 어려운데다 몸도 많이 축난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고객들이 뻔뻔(?)스러워진 것도 최근들어 달라진 호스트바의 한 모습이다. 한 경찰관계자는 “최근들어 호스트바를 단속하면 술마시던 여자 고객들이 ‘왜 남자는 여자끼고 술마셔도 되고 여자는 안되나’라며 기세좋게 항의한다”며 “이런 추세를 봐서는 호스트바는 앞으로 점점 더 늘어나고 대중화할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다.

이동훈·사회부기자


이동훈·사회부 dh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