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경영진들, 40대 약진 두드러져

‘물갈이’, ‘젊은 피’,‘시민단체의 감시’,‘40대의 약진’…

4·13 총선을 앞두고 들끓고 있는 한국 정치권의 움직임을 단적으로 표현하는 말들이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들 단어는 새천년을 맞아 국내 대기업 임원들이 공통적으로 당면한 문제이기도 하다.

그동안 한국 정치판을 주물러온 기성 정치인들이 위기를 맞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총수의 뜻을 받드는 것을 최대의 미덕으로 삼아 온 대기업 임원사회에서도 변화의 조짐이 조금씩 싹트고 있다.

우선 1999년 연말과 2000년 초에 단행된 주요 그룹 임원인사는 정치권과 마찬가지로 ‘능력있는 젊은 피’의 약진을 보여준다.


40대 임원시대 활짝 열려

삼성그룹의 경우 올해 초 단행된 사장단 인사에서 50여명의 그룹내 대표이사급 임원 가운데 60%에 육박하는 30명을 승진 또는 전보시켰다. 승진자 21명 가운데 8명을 부사장 승진 1년만에 대표이사 부사장으로 끌어 올려, 기존 50대 후반이던 최고 경영진의 평균 연령을 40대 후반에서 50대 초반 사이로 떨어뜨렸다.

또 대표이사 부사장으로 승진한 전체 임원 14명중 절반에 가까운 6명은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전자부문 출신들로, 최근 불어닥친 이공계 파워를 과시했다.

현대그룹 역시 50대 경영진 상당수를 퇴진시키고 40대 이사들을 각 사업본부장으로 발탁, 전진 배치시켰다. 현대그룹 관계자는 “상무, 전무 등 고위 임원에 대한 승진 인사는 거의 없는 반면, 이사 승진(118명), 이사대우 승진(194명) 등을 통해 40대 초반의 젊은 직원들을 대거 임원으로 발탁했다”고 말했다.

LG그룹도 지난해 12월13일 단행한 사장단 인사에서 50세 전후의 젊은 사장들을 대거 기용됐다. 특히 허영호(47) LG마이크론 대표와 허승조(49) LG백화점 대표 등은 40대에 계열사 사장자리에 올라 눈길을 끌었다. LG그룹 관계자는 “이번 인사에서 승진 발탁된 사업본부장과 대표 이사들은 대부분 연륜에 비해 최고 5년 가까이 동기들보다 먼저 앞서 나간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SK그룹도 임원 인사에서 1958년생으로 올해 42세인 SK제약 류병환 부장을 상무대우로, 40대 후반인 SK케미칼 김대기 상무대우를 상무로 각각 승진시키는 등 ‘젊은 피’임원진을 대폭 보강했다. SK그룹의 한 인사담당 상무는 “예년의 인사와 비교해 임원간 연륜차가 점점 더 크게 벌어지고 있다. 40세를 갓 넘은 이사들이 속출하면서 전체 이사진중 조만간 40대가 주류를 이루게 될 것이 확실시 된다”고 말했다.


시민단체들의 ‘감시’에도 대응해야

시민단체를 비롯한 소액주주들의 감시가 강화되고 있는 것도 대기업 임원들을 긴장시키고 있다. 과거에는 총수들의 뜻만 받들면 됐지만 이제는 자칫 참여연대, 경실련 등 시민단체의 표적이 되면 중도에 탈락하는 것은 물론 막대한 금전적 피해까지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실제로 김홍기 대표와 이학수 감사 등 삼성SDS 임원진 6명은 지난해 11월17일 참여연대로부터 배임혐의로 검찰에 고소당한 상태이다. 삼성SDS가 ‘사모신주인수권부사채(BW)’를 이건희 삼성그룹회장의 장남 이재용씨 등 특수관계인 등에게 저가로 발행한 것에 대해 참여연대가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삼성SDS는 1999년 2월26일 230억원 어치의 BW를 이재용씨를 비롯한 이건희 회장의 자녀 4명과 삼성그룹 임원 2명등 특수 관계인 6인에게 매각했는데 1년후 신주인수권을 행사할 경우 최소 140억원, 최대 1,500억원의 차익이 생긴다는 게 참여연대의 주장이다.

참여연대는 “비상장 우량 계열사를 이용하여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은 총수의 아들에게 막대한 상장차익을 취득시키는 결정에 찬성한 삼성 SDS의 이사들은 회사와 주주들에게 막대한 손해를 끼쳤으므로 배임죄로 처벌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기업 계열사는 아니지만 제일은행 전직 임원들의 경우 한보그룹에 대한 부실대출의 책임을 지고 각각 10억원을 물어내야 할 상황이다.

서울고법 민사12부는 지난 1월4일 제일은행이 “한보 특혜대출로 손해를 봤다”며 이철수, 신광식 전 행장과 이세선 전 전무, 박용이 전 감사 등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 항소심에서 ‘피고는 10억원을 배상하라’는 원고 승소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피고들이 대출업무시 신용이나 회수가능성, 담보 등을 살펴 안전한 경우에만 대출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재무구조가 취약하고 전망이 불투명한 한보철강에 장기간 거액을 대출한 것은 이사의 임무를 회피한 것”이라고 밝혔다.


잇따른 손배소에 ‘임원배상보험’ 등장

한편 대기업 임원들에 대한 소액주주들의 손해보상 청구소송이 잇따르자 최근에는 이같은 위험에서 임원들을 보호하기 위한 보험까지 등장했다.

손해보험업계에 따르면 삼성·현대·LG·동부화재 등이 판매하고 있는 ‘임원배상책임보험’에 90개 기업(수입보험료 175억원)이 가입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아직까지는 판매실적이 썩 좋은 것은 아니지만 소액주주의 권리찾기나 정리해고에 따른 종업원의 소송증가, 경영상의 책임강화 등의 흐름에 비춰볼 때 영업전망은 밝은 편”이라고 말했다.

그는 “일본의 경우 1994년에 보험이 도입, 1998년말 현재 전체 상장사(1,700개)의 80%정도가 가입한 것을 감안하면 우리나라도 2002년께는 시장규모가 1,000억원대까지 성장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조철환·주간한국부 기자


조철환·주간한국부 chcho@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