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외이사제 도입… 잭 웰치식 경영의 허와 실

‘제너럴 일렉트릭(GE)과 디즈니(Disney)’

평범한 한국 사람들에게는 GE와 디즈니가 모두 미국의 우량기업으로 다가오겠지만 이헌재 재정경제부 장관은 다른 평가를 내리고 있다. 이장관은 지난 1월21일 서울 하얏트호텔에서 열린 전국경제인연합회 세미나에서 재벌들의 ‘황제경영’을 질타하며 두 기업을 본보기로 들었다.

GE가 모범 사례인 반면 불행하게도 디즈니는 닮아서는 안되는 회사였다. 이장관은 “미국 대기업 중 이사진이 독립성을 확보하는 GE는 매출과 이익이 늘어나고 있지만, 대부분의 이사들이 회장의 측근으로 구성된 디즈니사는 매출과 이익 부진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고 밝혔다.


GE, 한국 재벌과 흡사한 경영구조

그렇다면 GE는 어떤 회사이길래 이장관으로부터 극찬을 듣고 있는 걸까. GE의 잭 웰치 회장은 이장관의 말대로 이사진에게 독립성을 보장하고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이장관의 말은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리다고 할 수 있다.

우선 GE의 매출과 순이익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는 부분은 절대적으로 맞다. 1878년 발명왕 에디슨이 설립한 조그만 전기회사에서 출발한 GE는 포브스지가 2년 연속 미국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회사로 선정할 정도로 미국의 대표적인 기업이다. 1998년말 현재 GE의 매출은 1,004억달러, 순이익 92억달러에 달한다. GE는 또 29만3,000명의 종업원을 거느리고 있으며 지주회사인 GE 산하에 11개 자회사를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GE 이사회가 독립성을 확보하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1998년 12월9일 오전, GE의 금융부문 자회사인 GE캐피탈 직원들은 경천동지할 만한 소식을 듣게 된다. 취임 당시인 1986년 3억달러에 불과했던 GE캐피탈의 순이익 규모를 1998년말에는 40억달러까지 늘린 게리 웬트 GE캐피탈 회장이 잭 웰치 회장에 의해 전격적으로 인사조치 된 것이다.

당시 GE그룹 내부에서는 잭 웰치 회장이 주도하는 품질개선 프로그램인 ‘6시그마(6-Sigma)’운동에 게리 웬트 회장이 부정적 태도를 보여 온 것이 낙마의 가장 큰 이유라는 소문이 나돌았다.

GE는 또 소위 ‘문어발 경영’으로 불리는 한국의 재벌그룹과 가장 유사한 시스템을 유지하고 있다. GE는 금융, 가전, 방송, 발전시스템, 엔진, 산업용 제품 등 모두 11개의 자회사를 보유하고 있는데 이는 현대, 삼성 등이 금융, 전자, 중공업, 자동차업종 등에 계열사를 보유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또 내부에서 주력기업을 육성하기 보다는 가능성 있는 부실 기업을 매수해, GE의 계열사의 경영 노하우와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는 것도 한국 재벌의 선단식 경영과 매우 유사하다.


철저한 ‘기업이익’ 우선주의

하지만 외형만을 갖고 GE와 잭 웰치 회장을 평가해서는 안된다. 잭 웰치 회장이 한국의 재벌 총수들 처럼 막강한 권한을 갖고 있으며, 또 때로 독단적인 것은 사실이지만 결코 사익을 추구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요컨대 웰치 회장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언제라도 임원을 쫓아내지만 그가 싫어하는 사람은 능력이 없거나 GE의 미래에 도움이 되지 않는 사람인 것이다. 이같은 의미에서 GE에 대한 이헌재 장관의 평가는 한 편으로는 맞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틀리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삼성경제연구소가 펴낸 ‘GE는 왜 강한가’라는 보고서에 따르면 웰치 회장은 부하 임원들이 넘볼 수 없는 카리스마를 갖고 있지만 GE의 최고 의결기구인 기업경영위원회(CEC·Corporate Executive Committee)를 철저히 토론식으로 운영하고 있다.

기업경영위원회는 매분기말 GE의 연수원인 크로톤빌 경영개발원에서 열리지만 일반적인 경영보고는 90분만에 끝이 난다. 나머지 시간에는 참석 임원들이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노타이 차림으로 자유토론을 벌인다.

삼성경제연구소는 또 “웰치 회장은 모든 종업원들이 그에게 친밀감을 느끼고 어떤 직언이라고 마음대로 할 수 있도록 ‘회장님’이라는 호칭보다는 ‘잭’으로 부르게 하고 있다”고 밝혔다.


정부 사외이사제에 재계선 반발

한편 이헌재 재경부 장관은 GE를 한국 기업의 모범사례로 규정하는 것과 함께 재벌 총수의 전횡을 방지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했는데 바로 ‘사외이사제’이다. 즉 대기업 임원중 일부를 재벌 총수가 임명하지 않고 외부에서 선임토록 의무화한 것이다.

재정경제부에 따르면 지난해 ‘기업지배구조 개선위원회’에서 발표한 ‘기업지배구조 모범규준’에 따라 올해부터 자산 2조원 이상 상장법인(약 90여개)과 증권, 은행 등 금융회사들은 최소 3명의 사외이사를 임명해야 한다.

또 2001년부터는 전체 이사의 50% 이상이 사외이사여야 하며, 나머지 사내이사도 사외이사의 추천을 받은 사람중에서 임명해야 한다.

정부가 강력히 밀어붙이는 ‘사외이사제’에 대해 당사자인 재계가 반발하고 있다. 재계는 상장기업 전체 이사수의 과반수를 사외이사로 선임하면 사외이사가 경영권을 지배하는 결과를 초래, 주식회사 제도의 본질과 기업경영의 자율성을 훼손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전경련은 “미국의 경우 상장요건중에서 사외이사를 두도록 하고 있으며 1,000대 기업의 평균 이사회 구성원 13명중 9명이 사외이사인 것은 사실이지만, 총수가 실질적 대주주인 국내 기업에서는 현실성이 없다”는 입장이다.

전경련의 한 관계자는 “외국의 경우 사외이사는 경영자가 주주에게 해가 되는 결정을 내리지 못하도록 감시하는 것이 임무이지만 대주주가 경영자인 한국에서는 사외이사가 존재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다.


황제경영 방탄막이로 전락할 가능성도

반대로 재벌 총수의 전횡을 반대해온 사회단체도 사외이사제가 ‘황제경영’의 방탄막이가 될 우려가 없지 않다며 부작용을 경계하고 있다. 즉 총수가 자신이 잘 알고 있는 사외이사를 임명해 겉으로는 그럴 듯 하지만 실상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는 상황이 예견된다는 것이다.

참여연대의 한 관계자는 “사외이사의 상당수가 전문성이 결여된데다 대주주의 독단경영을 견제하기는 커녕 ‘거수기’역할에 그치고 있다”는 지적했다.

상당수 기업들이 정부의 서슬에 못이겨 사외이사제를 도입하기는 했지만 그 역할이나 위상을 제대로 정립하지 않은채 방치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대주주와 친분이 있는 회계사, 변호사, 세무사 등을 사외이사로 영입, 오히려 총수들의 입지를 강화시켜 주고 있다는 것이다.

조철환·주간한국부 기자


조철환·주간한국부 chcho@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