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대 총선이 불과 70여일 앞으로 다가왔다. 이번 4·13선거는 현 정부의 중간평가 성격을 띠고 있는데다 새천년 맞아 처음으로 치르는 총선이라는 점에서 그 어느 때보다 정당간, 후보자간 경쟁이 치열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재논의에 들어간 선거법 개정작업이 아직 마무리되지 않았고 시민단체들의 낙천·낙선운동까지 겹쳐 벌써부터 선거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선거관리의 실무책임자인 중앙선관이 박기수 선거관리실장을 만나 시민단체들의 낙천·낙선운동에 대한 입장과 총선 관리 대책 등을 들어봤다.


-시민단체들의 낙천·낙선운동이 현행법상 불법인데 중앙선관위가 여론의 눈치만 보고 있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곤혹스럽습니다. 시민단체들의 충정을 모르는 것은 아닙니다만 아쉽습니다. 정치권에서 법개정에 합의했는데도, 이를 지켜보지 않고 낙천자 명단을 발표한 것은 성급한 처사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정치권에서 반발도 나오고 일부 부작용도 있는 것 같습니다. 시민단체들이 지금까지 법테두리 안에서 활동했기 때문에 국민들의 지지를 받은 것 아닙니까. 스스로 법을 어기면서 후보자들의 과거 불법행위를 지적한다면 설득력이 떨어지지 않겠어요. 이번에도 순리대로 일을 풀어나갔으면 더욱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조치를 취할 계획입니까.

“불법입니다만, 현재 시민단체의 선거운동을 허용하는 방향으로 법개정이 분명한 상황에서 고발하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만약 법개정이 되지 않는다면 낙천자 명단을 발표한 시민단체들을 사법처리할 계획입니다. 시민단체들에게 법개정이 선결과제라는 점을 수차례 설득했습니다. 그 때문인지 정개련의 발표는 표현 등에서 선관위의 입장을 많이 수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번 총선은 그 어느 때보다 선거관리가 어려울 것 같은데요.

“무엇보다 국회에서 선거법 개정안을 빨리 확정해주어야 합니다. 기부행위나 사전선거운도 등이 모두 금지되는 선거일 180일전(1999년 10월16일)까지는 선거법 개정안을 확정해달라고 수차례 국회에 요청했습니다. 늦어도 지난해 연말까지는 해달라고 했는데 아직까지 안돼 불법선거행위를 단속하는데 애를 먹고 있습니다. 예컨데 기부행위금지조항의 경우 선거구민이나 선거구민과 관련 있는 자에게 금품 등을 제공하면 위반인데 현재는 위법한 행위라도 선거구획정에 따라 선거구가 달라지면 법적용이 안될 수도 있습니다.”


-불법선거운동의 양상이 바뀌고 있습니까.

“물갈이 바람이 불어서인지 정당의 공천뿐만 아니라 무소속으로라도 나오겠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많습니다. 자연히 산악회 등 사조직들의 움직임이 눈에 띄게 활발해지고 있습니다. 지자체장들이 정당에 가입돼 있기 때문에 공무원들의 개입도 관심을 갖고 지켜보고 있습니다. 특히 최근에는 사이버상의 불법선거운동이 급격히 늘고 있어 현재 전문인력을 집중 배치해서 감시를 하고 있습니다만 한계가 있어서 네티즌들을 상대로 공명선거감시 동아리를 모집하고 있습니다.”


-시민단체들의 낙선운동까지 겹쳐 선거운동이 과열될 가능성도 있는데요.

“선거운동 현장에서 낙선운동이 벌어지면 물리적 충돌의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래서 선관위에서는 시민단체들의 낙천·낙선운동을 오히려 우리나라 선거문화를 활성화시키는데 활용할 계획입니다. 지난 대통령선거가 그나마 공명하게 치러질 수 있었던 계기는 TV토론이었습니다. 전국민을 상대로 하기 때문에 후보자간 정책대결을 유도할 수 있었던거죠.

그래서 이번에도 중앙선관위는 시민단체와 언론기관이 공동주최하고 후보자가 참여하는 토론회를 적극적으로 지원할 계획입니다. 시민단체들이 낙천대상자를 발표했으니까 당사자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해서 논쟁을 벌이고 이를 언론기관이 보도하면 유권자들이 판단할 수 있을 겁니다. 자연스럽게 선거문화도 한단계 발전하고 성숙해지리라고 생각됩니다.”


-이번 총선관리를 하면서 가장 중점을 두는 분야는 무엇입니까.

“철저한 공명선거 감시망을 구성하는 겁니다. 현재 작업을 벌이고 있는데 절대로 빠져나가지 못할 정도로 촘촘한 국민감시망을 만들고 있습니다. 다만 시민단체들중 낙천·낙선운동에 참여한 단체는 이미 선거운동에 참여했다고 보고 공명선거감시활동에서 공조를 하지 않을 계획입니다. 그리고 불법선거자금을 감시하는 건데…지금부터 자료를 꾸준히 모아가고 있습니다.”


-선거사범 공소시효가 6개월에서 4개월로 줄어 불법선거자금을 찾아내기가 쉽지 않을텐데요.

“선거법개정안 의견을 내면서 공소시효 원상회복을 강력히 요청했습니다. 총선도 총선이지만 지자체 선거의 경우 4개월만에 위법행위조사를 마치라는 것은 사실상 하지말라는 말과 같습니다. 선거비 사용내역은 선거 1개월후에 제출되는데 선관위가 최소한 공소시효만료 1개월전에는 검찰에 넘겨주어야 합니다.

그러면 실사기간은 2개월뿐인데 그많은 후보자를 실사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한 일입니다. 이번 선거법 개정과정에서 공소시효가 원상회복되지 않을 경우에 대비해 국세청의 도움을 받는 방안 등을 강구하고 있습니다만 공소시효는 반드시 원상회복되어야 합니다.”


-중앙선관위가 시민단체의 낙천운동을 불법으로 규정했다가 대통령의 지지발언이 나오자 입장을 바꾸는 등 중심을 잡지 못한다는 비난도 있습니다.

“오해입니다. 중앙선관위는 1월17일 유권해석을 하면서 선거법 87조에 문제가 있다는 점을 확인하고 1월20일 다시 회의를 소집해 개정안을 내겠다고 분명히 밝혔습니다. 마침 1월19일 대통령의 발언이 있어 오해를 받게 됐는데 중앙선관위가 그렇게 대통령 말 한마디에 좌지우지되지 않습니다. 중앙선관위원들은 여·야당 추천인사가 모두 있는데 일방적으로 한쪽 편을 드는 것이 가능하겠습니까.

다만 이번 기회에 한가지 부탁드리고 싶은데요, 선관위는 모두 합쳐 불과 2,000여명의 직원으로 막강한 정치권을 감시하고 있습니다. 국민들이 도와주지 않으면 선관위가 설 자리는 없습니다. 선거관리가 잘못되면 결국 국민들에게 엄청난 피해가 옵니다. 선거문화는 그나라 유권자들의 수준을 그대로 반영합니다. 선거법을 지키지 않으면 다른 법을 위반하는 것과는 비교하지 못할 폐해가 생깁니다.”


-이번 선거에서 유권자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까.

“제발 기권하지 마십시요. 기권자가 많으면 많을수록 매표와 지역감정의 효과는 커집니다. 기권하면 국민들이 가장 원하지 않는 결과가 나올수 있다는 점을 명심하시고 꼭 한표를 행사하시기 바랍니다.”

송용회·주간한국부 기자 김명원·사진부 기자


송용회·주간한국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