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권 격려.비난 혼재, 지역감정으로 몰아갈 조짐도

“시민단체의 낙선운동이 오히려 자민련을 돕는 형국이라니, 참…. 그렇다고 안할 수도 없는 노릇 아닙니까. 결국 판단과 선택은 유권자의 몫입니다.”

총선시민연대의 낙천·낙선운동이 시작된뒤 충청권 민심에 이상기류가 감지되고 있다.

총선시민연대가 공천반대인사 명단을 발표한 직후에는 자민련이 최대의 ‘피해자’로 비춰진 것이 사실이다. 소속의원 53명중 30.2%인 16명이 대거 명단에 포함돼 한나라당(22.6%)이나 민주당(15.2%)에 비해 상대적으로 큰 타격을 입었다. 특히 김종필 명예총재가 명단에 포함돼 당이 쑥대밭이 된 듯이 보였다. 당 안팎에 커다란 충격파를 던져주었음은 물론이다.


JP포함에 충격, ‘바람몰이 호재’시각도

“공천권을 행사할 총재를 공천부적격자로 지목한 것은 당을 해체하라는 것 밖에 더 되냐.” 흥분한 것은 그러나 자민련 의원들 뿐만이 아니었다. 보수층을 중심으로 충청권 일부 주민들 사이에서도 동요가 일기 시작했다.

“밉든 곱든 우리 지역에서 키운 원로 정치인 인데 하루 아침에 묵사발을 만드는 것은 너무하지 않습니까.” 택시기사 박모(47·대전 동구 가양동)씨는 요즘들어 이같은 말을 하는 승객들이 적지 않다고 전했다.

명단이 발표된 날 오후 충남 홍성군에서는 한 농민(56)이 총선시민연대의 JP 정계은퇴 주장에 항의하는 유서를 남기고 음독자살을 기도, 주위를 깜짝 놀라게 했다. 나중에 이 농민이 정신질환을 앓은 적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지만 아무튼 현재의 지역 분위기가 결코 가볍게 볼 수 만은 없다는 점을 드러내주기에는 충분했다.

“시민단체의 낙선운동을, 특히 JP가 명단에 낀 것이 우리에게 꼭 악재라고만 볼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선거전의 바람몰이에 호재로 작용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자민련 충남도지부 관계자는 이같은 기대 섞인 전망도 내놓았다. 한술 더 떠 한나라당 대전시지부의 한 관계자는 “자민련은 이래저래 이번 선거에서 고전할 수 밖에 없었는데 오히려 낙선운동 파동으로 뭔가 기대할 수있게 된 것 아니냐”며 “겉으로 분노하는 척 하지만 속으로는 웃고 있을 것”이라고 비아냥거렸다.

반면에 낙선운동에 나선 충청지역 시민단체들은 딜레마에 빠졌다.

“그동안 시민들로부터 격려전화가 쏟아졌죠. 그러나 명단 발표후 비난전화가 급증했습니다. 지금은 격려와 비난이 반반쯤 되는 것 같아요. 특히 왜 JP가 명단에 끼었느냐고 거칠게 항의하는 주민들이 적지 않습니다.”

시민단체 관계자들은 이같은 사태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낙선운동이 오히려 지역감정 자극을 통한 바람몰이라는 저들의 뻔한 선거전략을 돕는 결과를 낳지 않겠습니까”라며 운동의 전술상 문제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지역시민단체 “지역특성 반영했어야”

또 총선시민연대의 명단 발표를 정면 비판하지는 않지만 ‘지역특성’을 누구보다 잘 아는 해당 지역 단체들의 의견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은데 대한 서운함과 불만도 새어 나오고 있다.

“20개 선거구를 모두 자민련이 장악하고 있는 대전과 충남에서 낙천·낙선운동은 사실상 자민련이 메인 타깃이 될 수 밖에 없는 마당에 JP까지 포함시킨 것은 무리라는 의견도 적지 않습니다. 저들의 지역감정 자극에 역이용될 개연성을 고려했어야 한다는 것이죠. 오죽하면 낙선운동이 자민련에게 최고의 선물이 됐다는 말까지 나오겠습니까.”

대전과 충남지역 66개 시민단체들이 26일 ‘대전·충남 2000년 총선시민연대’를 발족하며 ‘독자적인 낙선운동’을 표방한 것도 이같은 맥락과 무관치 않다.

그러나 독자적인 낙선운동이 중앙의 총선시민연대와 따로 가겠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일단은 중앙과 보조를 맞추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 이에 따라 별도의 낙선대상자 명단을 만들 때 중앙의 명단에 오른 사람을 제외하는 ‘파격’은 없을 것이다. 다만 공천반대 인사를 더 늘릴 수 있다고 밝혀 독자적인 판단과 행동의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

“지역할거주의를 깨기위해 선거혁명을 하면서 지역할거주의의 원흉인 ‘지

역감정’의 눈치를 보아서야 됩니까. 설사 저들에게 정략적으로 역이용당한다 해도 원칙대로 밀어부쳐야 한다는 의견이 훨씬 우세합니다.”대전충남 총선시민연대 김제선사무처장은 원칙론을 거듭 강조했다.


‘리스트’이용, 지역감정 자극 움직임

하지만 낙선운동의 성패가 지역감정의 분출을 어느 정도 제어하느냐에 달렸다는 사실을 잘 인식하고 있는 총선시민연대측은 이를 막기 위한 전략을 짜는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번 총선에서 지역감정 자극이 어느 때보다 심할 것으로 예상되고 이미 일부 자민련 의원들이 이를 적극 이용하려는 움직임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충남의 모의원은 “명단에 오르면 인기가 오른다고 하더라. 나도 낙선자 리스트에 끼어달라”는 말을 해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총선시민연대측은 이에 따라 독자적인 낙선대상자 선정시 ‘지역감정 선동’을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삼기로 했다. 또 영남·호남 총선연대측과 연대해 지역감정을 자극하는 후보들에 대한 공동 낙선운동에 나서기로 했다. 특정지역에서 일어난 지역바람이 타지역에 곧바로 영향을 미치는 현상을 역대 선거에서 여러차례 보았기 때문에 영남과 호남, 충청이 함께 나서야만 바람을 차단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구더기 무서워 장을 담그지 못한다는게 말이 됩니까. 시작도 하기전에 부작용부터 걱정해서는 안되죠. 유권자들이 현명하게 판단할 것으로 믿습니다.” 대전충남 총선시민연대 김광식 상임공동집행위원장은 이번 16대 총선의 결과는 시민들의 낙선운동이 결코 헛되지 않았다는 점을 보여 줄 것이라고 확신했다.

과연 시민단체의 기대처럼 유권자들이 선거혁명을 이뤄낼지 아니면 다시 한번 바람몰이에 휩쓸릴지, 다가오는 총선은 역대 어느 선거보다도 중요하고 흥미로운 선거가 될 것으로 보인다.

대전=전성우 사회부기자


대전=전성우 사회부 swchu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