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양-동천-이화-정”, “덩-닥기 덩닥, 얼쑤”, “양다리는 굽힌 채 오른팔은 아랫배 방향으로 뿌리고…”

서울 서초동 국립국악원 2층 연습실. 공연이 없는 오전 11시께라 한가로워야 할 이 곳에 모처럼 뜨거운 열기와 생기가 넘쳐 흐른다. 100평 남짓한 이 연습실에는 양손에 한삼(탈춤시 손에 끼는 흰 천)을 든 50명의 초등학교 학생들이 이종호(국립국악원 수석무용단원) 선생님이 들려주는 가락에 맞춰 어설픈 춤사위를 구사하고 있다.

옆 친구의 한삼을 밟고 넘어지는 아이, 순서가 틀린 옆 친구를 놀리는 개구장이, 하지만 모두들 진지한 표정이다. 옆에서 수업을 청강(?)하고 있는 학부모들과 수업 도우미들도 모두 흥겨운 듯 가락에 맞춰 어깨를 들썩 거린다. 국립국악원이 84년부터 우리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실시해오고 있는 청소년 국악문화강좌의 탈춤반 수업 광경이다.

우리 청소년들에게 고유 문화 예술을 이해시키고 전통 음악을 체득토록 하기 위해 시작된 이 행사는 수년전부터 학부모와 청소년들 사이에 알음알음 전해지면서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다. 3~4년전부터 접수 개시와 동시에 전 강좌가 만원 사례를 빚고 있다.

매년 절반 가량의 학부모가 등록을 못해 되돌아가자 국악원은 올해에는 300명이던 정원을 아예 500명으로 대폭 증원했다. 과목은 장구, 사물, 탈춤, 판소리 단소 등 우리 전통 음악. 수강료는 물론이고 교재와 장비 모두 공짜라는 점이 큰 매력이다.

탈춤반의 정희원(11)양은 “몸동작 이름이 영어로 된 테크노보다 한결 이해하기 쉬워서 좋아요. 하지만 실제 동작은 훨씬 어려워요. 흥겨운 장단을 배우면서 이렇게 좋은 것을 물려주신 조상들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됐어요”라고 말했다. 장고·단소반의 김형구(11)군은 “컴퓨터 인터넷 오락을 가장 좋아하는데 어머니가 강좌를 신청해 놓고 매일 가라고 할 때는 정말 싫어요.

그런데 장고와 단소를 직접와서 연주해 보니까 컴퓨터 오락과는 또 다른 재미를 느끼게 됐어요. 예전에 피아노도 배운 적이 있는데 직접 두드리고 부는게 피아노 보다 훨씬 신기하고 재미어요”라고 말했다.

국악에 대한 관심이 이처럼 높아진데는 테크노, 힙합 등 현란하고 산만한 현대 서양 음악으로부터 자녀들을 보호하고자 하는 부모들의 의도도 크게 작용한다. 귀청을 애는 듯한 메탈음, 찢어진 청바지, 사이버틱한 의상 등 온통 저급한 서양 문화가 판치는 세상에서 소탈하고 건전한 우리 가락은 학부모들을 안심시킬 수 있는 확실한 대안이 되고 있다. 여기에 최근 들어 학교 음악시간에 국악 비중이 점차 늘어나는 것도 한 이유가 되고 있다.

초등학교 5학년인 딸과 4학년인 아들을 데리고 나온 가정주부 이순희(42·서울 광진구 성수동)씨는 “TV나 라디오를 틀기만 하면 온통 요란한 복장을 한 젊은이들이 불러대는 서양 음악이 판을 칩니다. 우리 아이들만이라도 그런 바람직하지 않은 문화에 물들지 않도록 하려고 방학때면 국악 강좌를 찾습니다”라고 말했다.

이씨는 “지난해 설날 둘째 범석이가 가족 모임에서 판소리 심청가 방아타령을 멋지게 불러 친척들을 놀라게 한 적이 있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인 큰 딸은 아예 판소리계로 나가겠다고 조를 정도입니다”라고 말했다.

우리 국악 배우기 열풍은 일선 학교 교사들 사이에서도 활발히 일어나고 있다. 음악수업에서 국악 비중이 점점 늘어나면서 뜻있는 교사들이 자발적으로 국악 강좌를 찾고 있기 때문이다.

배명중에서 음악을 담당하고 있는 박상욱(43) 교사는 “현재 교사를 양성하는 사범대 음악학과에서 조차 우리 국악에 대한 커리큘럼은 국악개론 하나에 불과한 실정입니다. 일선 학교에서 국악을 더 잘 가르치고 싶지만 지식이 부족해 그냥 넘어가는 경우가 대부분 입니다. 최근들어 방학때 많은 교사들이 국악 연수 과정을 찾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우리 가락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국립국악원외에도 중앙박물관, 현대미술관, 국립극장, YMCA·YWCA, 어린이회관 등에서 방학기간을 이용한 국악 강좌가 잇달아 개설되고 있다. 물론 대부분이 아직은 무료다.

요란한 테크노춤 등 수입문화 일색에서 벗어나 흥겨운 우리 판소리 가락이나 춤사위 등을 어린이들이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늘어난다면 전통문화도 그만큼 힘을 얻을 것이다.



인기‘짱’ 뺑덕어멈 선생님

“뺑덕어멈으로 나오는 선생님 보러와야 한다.”

판소리 강사인 유미리(29·국립국악원단원)씨는 매년 강좌가 있을 때면 빠지지 않는 단골 선생님이다. 기발하고 재미난 만담, 여기에 곁들여지는 화통한 소리. 이런 거침없는 강의로 유씨는 학생들 사이에게 인기 최고 선생님으로 꼽힌다.

유씨의 강의를 들어보면 마치 흥미로운 옛날 이야기를 듣는 것 같다. 여기에 중간중간에 마치 막걸리를 한잔 먹고 부르는 듯 텁텁한 판소리 장단을 들으면 어깨가 절로 들썩인다.

“어린이들에게 우리 국악에 대한 친근감을 갖게 해주는 것이 우선입니다. 심청전, 흥부전, 콩쥐팥쥐 모두 뻔히 아는 스토리 아닙니까. 이것을 지루하지 않게 가르치려면 재담이 필요하지요”

유씨는 6세때부터 판소리를 시작한 국악인이다. 우리 국악이 서양 음악에 밀리는 것이 안타까워 어린이들에게라도 우선 국악의 소중함을 알리고자 자진해서 강좌를 맡았다. 국악에 대한 관심은 앞으로 더욱 높아질 것을 확신한다는 유씨는 “힘이 닿는데까지 국악 발전에 힘쓰겠다”고 말했다.

송영웅·주간한국부 기자


송영웅·주간한국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