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은 민족 최대의 명절입니다. 최대라는 수식어가 붙는 것은 그 어느 때보다 설날에 많은 사람들이 고향을 찾기 때문입니다. 적막한 농어촌이 귀향한 젊은이들로 활기에 넘칩니다. 어른들에게는 절로 힘이 나는 그런 한 때입니다. 더구나 올해는 2년동안의 IMF관리체제에서 거의 벗어난 상태여서 고향을 찾는 자식들의 마음도 한결 가벼울 것입니다.

설이 다가오면 어른들은 오랫만에 보는 손자손녀들에게 줄 세뱃돈을 빳빳한 새돈으로 준비하고 음식을 마련하느라 바빠집니다. 이방 저방으로 뛰어다닐 손자들 생각에 그동안 사람 구경을 못한 냉방에도 불을 미리 지펴 온기를 채워 놓습니다. 노부부만 생활하던 집안에 그야말로 활기가 도는 것이지요. 집집마다 그러니 온동네가 축제분위기입니다.

올 설은 예전과는 또 다른 상황이 있습니다. 선거가 70여일 앞으로 다가온데다 이번 선거에서 정치풍토를 바꾸어보자는 폭발적인 사회적 분위기입니다. ‘어떻게 사는냐, 경제는 어떻게 돌아갈 것 같으냐’등의 얘기가 오간뒤에는 자연히 선거 얘기가 나올 수 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농어촌의 어른들도 옛날과는 다릅니다. 공중파를 통해 어른들도 돌아가는 세상분위기를 감지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궁금한 것도 많을 수 밖에 없지요. 낙천·낙선운동이 특히 그럴 것입니다.

이번 설에는 선거 얘기를 해봅시다. 왜 낙천·낙선운동이 벌어져야 했는지를 다시한번 생각해야 어른들의 궁금증을 제대로 풀어드릴 수 있을 것입니다. 정치인들의 어처구니 없는 구태들을 하나하나 구체적인 예를 들어드리면 이해가 빠를 것입니다. 농어촌에서 특히 심한 혈연 학연 지연의 병폐도 대승적 차원에서 토론을 통해 어른들의 고개를 끄덕이게 해야 합니다.

그렇게 풀어나가다 보면 망국병인 지역감정 문제도 자연스레 거론될 것입니다. 분명한 사실은 지역감정이 선거때만 되면 농어촌에서 심하게 나타난다는 점입니다. 지역감정을 타파하기 위해서는 농어촌이 먼저 바뀌어야 하는 것이지요. 이번 설이 바로 그 기회입니다. 과연 어느 후보가 진정으로 지역을 위해, 국민을 위해 일할 사람인가를 얘기해 보는 것입니다. 고향의 어른들과 도시의 자식들은 각각 다른 선거구에서 국회의원을 뽑습니다. 때문에 시민단체들의 낙천·낙선운동은 보다 큰 견지에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이같은 선거 얘기는 정치인들의 지역감정 조장발언에 농어촌 어른들이 쉽게 휘둘린다는 도시인의 시각에서 벗어나게 하는 효과도 거둘 수 있습니다. 예전에 없이 올해는 표의 등가성 문제도 많이 거론되는 것 같습니다. 쉽게 말해 9만5,000명이 의원 한명을 뽑는 것과 33만명이 한명을 뽑는 것은 표의 가치가 다르다는 것이 등가성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의 주장입니다. 그같은 주장의 근저에는 후보들의 지역감정 조장발언에 넘어가는 경향이 농어촌에서 더 심하다는 불만도 작용하는 것 같습니다.

선거때만 되면 유달리 많이 나오는 농어촌이나 서민관련 정책들도 마땅히 이야기 대상에 포함되어야 할 것입니다. 농어촌에 일시적으로 도움이 되지만 결과적으로는 도시의 자식들에게 더 큰 부담으로 작용하는 정책들은 선심성 정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농어촌 정책들에 대한 성과를 함께 얘기하다 보면 더욱 쉽게 가려질 수 있을 것입니다.

자민련은 총선시민연대의 낙천·낙선운동에 대해 ‘청와대와 시민단체가 연계됐다’는 음모론까지 제기했습니다. 음모론이 지역감정을 역으로 이용한다는 지적이 있는가 하면 그같은 분위기가 이미 일부 지역에서 나타나고 있다는 소식도 들립니다. 한나라당 일각에서도 은근히 음모론에 동조하고 있습니다. 총선시민연대는 여야는 물론 모든 정치권에 대해 시민단체의 순수한 뜻을 정치적으로 역이용하려는 행태를 중지하라고 경고했습니다. 총선시민연대가 음모론 주장에 대해 강력대응하지 않는 것도 역이용당하는 것을 우려하기 때문입니다. 이번 설에 선거에 대해 많은 얘기를 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가 될 것입니다.

역대 선거에서 젊은이들의 투표참여율이 저조했습니다. 올바른 한표를 행사해야 한다는 마음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시민단체들의 낙천·낙선운동으로 젊은이들 사이에서 정치풍토를 바꿔보자는 의욕이 그 어느 때보다 뜨거운 것 같습니다. 젊은이들이 설연휴를 제대로 된 정치인 뽑기의 계기로 이끈다면 우리의 정치는 한단계 성숙할 것입니다.

정재룡 주간한국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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