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龍)과 함께 새 천년 비상(飛上)의 나래를 펴라’

21세기의 첫해인 2000년은 경진년(庚辰年) 용띠 해다. 달을 정복하고 인터넷이 세계를 하나로 연결하는 첨단 과학의 시대지만 개인과 가족, 국가와 민족의 길흉화복을 대자연의 섭리와 연결지어온 우리 한민족에게 띠가 갖는 의미는 남다르다. 닥쳐올지도 모를 화(禍)에 대비하고 희망찬 마음으로 미래를 준비하자는 선조들의 경험과 지혜는 우리의 유구한 전통이자 문화다.

용은 십이간지(十二干支)중 유일한 상상속의 동물이다. 봉황 기린 거북과 함께 4대 영물(靈物)로 여겨졌다. 전지전능하고 초자연적인 능력을 가진 영험하면서도 고귀한 존재로 인식되어왔다. 그래서 천명(天命)을 받아 천하만물을 다스리는 나라의 황제나 왕은 종종 성스러운 용에 비유됐다.

임금의 얼굴을 용안(龍顔)이라 했으며 비단과 금실로 지은 임금의 옷을 곤룡포(袞龍袍), 임금이 타는 수레를 용차(龍車), 임금이 앉는 자리를 용상(龍床) 또는 용좌(龍座), 임금이 즉위하는 것을 용비(龍飛)라 했다.


위엄·권위·건강-용맹등의 상징

이러한 전통 때문에 용은 예로부터 위엄과 권위, 건강과 정력, 신뢰와 소신, 정직과 용맹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져 왔다. 시류에 영합하고 강자에 굴하거나 아첨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래서 용의 해에는 힘이 넘치고 불굴의 정신을 가진 성스러운 영웅이 탄생하고 결혼과 출산, 한나라의 대사가 시작되는 만사 형통의 시대가 도래한다고 했다. 반면 생명력과 힘이 지나쳐 놀랄만한 큰 사건과 엄청난 자연 재앙도 많이 발생한다고 전해진다.

용띠 남자들은 그래서 도량이 크고 힘이 충만하며 끊임없이 전진하는 강인한 성격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삶의 목표나 특별한 사명을 갖기를 좋아한다. 반면 독선적이고 직설적이며 자기중심적이고 자존심이 강한 배타적 성격도 함께 지닌다. 용띠 여자들은 모든 띠 가운데 가장 귀부인적 기질을 타고 나는데 억압과 제한을 싫어하는 남녀 평등주의자들이 될 가능성이 높다.

지난주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열린 ‘한국문화에 나타난 용의 상징성 연구’발표회에서 천진기 학예연구사는 “21세기로 가는 첫해 2000년이 경진년 용의 해로 시작되는 것은 뜻깊은 일”이라며 “용의 해는 무진(戊辰) 경진(庚辰) 임진(壬辰) 갑진(甲辰) 병진(丙辰) 순으로 육십갑자를 순환하는데 십이지의 용의 방향은 동남동, 시간적으로는 오전 7시에서 오전 9시, 달로는 음력 3월을 지키는 방위신이며 시간신이다”라고 설명했다.


용·쥐·원숭이띠가 삼합이뤄

천씨에 따르면 용띠와 가장 어울리는 띠로 원숭이띠를 꼽는다. 원숭이는 애교가 많아 용의 장엄함과 잘 조화를 이뤄 서로 싸우지 않고 좋은 커플을 이룬다. 또 힘이 좋은 용띠와 기술이 비상한 쥐띠도 무난한 쌍이다. 따라서 용띠, 쥐띠, 잔나비띠가 서로 삼합(三合)을 이룬다.

반면 용띠는 돼지띠와는 상극이다. 용은 십이간지를 포함한 모든 동물의 형상중 가장 뛰어난 부분을 모아 만든 상상속의 영물인데 용의 코가 바로 돼지의 코에서 따왔기 때문. 근엄한 용으로서는 돼지를 닮은 코가 아무래도 탐탁치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조선 중종때 중국어 통역관이자 언어학자인 최세진이 쓴 한자학습서 ‘훈몽자회’(訓夢字會·1527년)를 보면 용(龍·Yong)자는 한국 고유어로 ‘미르 룡(龍)’이라고 적혀있다. ‘미르’의 어근은 ‘밀’로써 물(水)을 뜻한다. 물의 옛말인 ‘믈’과 상통한다.

물에서 사는 채소인 미나리의 ‘미’가 물의 옛말인 것과 같다. 이처럼 용은 물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깊은 물에 사는 이무기가 천년을 묵으면 용이 된다는 말도 물과 용의 관계를 설명해 주는 것이다. 그래서 예로부터 춘분에 연못에 내려와 추분에 하늘로 올라가는 용은 못이나 강, 바다에서 살며 비나 바람을 몰고 다닌다고 여겨 중요한 신앙의 대상이 되었다.

이런 용신(龍神) 신앙은 신라시대의 사해제(四海祭), 사독제(四瀆祭), 고려시대의 사해사독제(四海四瀆祭), 조선시대의 용신제(龍神祭) 등으로 나타났다. 이같은 의식의 잔재는 지금도 비를 내려달라고 하는 샘굿이나 용왕굿, 그리고 유두날 논의 물꼬에 보리개떡이나 밀개떡을 한덩이 갖다놓고 풍년을 비는 용신제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밖에 바다를 터전을 살아가는 어민들이 뱃길의 안녕과 평어를 기원하는 용왕제, 풍어제도 바로 이런 용신제의 한 형태이다.

또 ‘미르’는 미리(豫)의 옛말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 용의 등장이 어떤 미래의 큰 일이 발생할 것을 예시하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역사의 개술서라 할 ‘문헌비고(文獻備考)’를 보면 신라때부터 조선 숙종 40년(1714년) 사이에 무려 29차례나 용의 출현이 있었다고 기술되어 있다. 그런데 용의 출현뒤에는 태평성대, 성인의 탄생, 군주의 승하, 큰 인물의 서거, 농사의 풍흉, 군사의 동태, 흉흉한 민심 등의 기록이 있다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미래 큰일 예고하는 상상속의 동물

미르외에 용을 지칭하는 말로는 이무기, 이시미, 영노, 꽝철이, 바리, 비비 등과 같은 순수 우리말이 있었는데 용(龍)이라는 외래어에 눌려 모두 사라졌다.

상상속의 용의 모습은 과연 어떤 것일까. 변화무쌍하고 조화 무궁한 동물인 용은 4종(天龍, 神龍, 地龍, 伏藏龍) 또는 5종(象龍, 馬龍, 魚龍, 蟲段漠龍,蛇龍)으로 분류되고 있다. 또 비늘이 있는 응룡(應龍)을 비롯해 뿔이 있는 용등 온갖 형태가 있다. 빛깔로는 청룡, 적룡, 백룡, 흑룡, 황룡 등으로 구별되며 사방이 정색(正色)이 황색이기 때문에 황룡이 어른이 된다. 중국인들은 용은 머리는 낙타 형태이고 뿔은 사슴뿔, 눈은 토끼눈, 귀는 쇠귀, 목은 뱀목, 비늘은 잉어비늘, 발톱은 독수리 같다고 묘사한다. 이것을 구사설(九似設)이라 한다.

용이 신성한 존재로 여겨져 내려옴에 따라 용을 주제로한 문학 작품은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삼국사기 삼국유사 고려사 세종실록지리지 동국여지승람 등에는 용을 다룬 설화 86편이 실려있다. 또 세종이 이성계를 포함한 6대 조상을 칭송한 서사시 ‘용비어천가’는 용을 임금에 비유한 대표적인 작품이다.

용을 주제로 다룬 예술작품도 많다. 가장 오래된 것은 고구려 고분벽화의 사신도(四神圖)인데 백호 현무 주작과 함께 청룡의 그림이 아로 새겨져 있다. 그림으로는 윤두서의 운룡도, 심사정의 승천도, 장승업의 운룡도, 최북의 의룡도 등 다수가 있다. 이밖에 조각과 금속 공예품, 도자기, 나무조각품, 기와 등 예술 전분야에서 용을 소재로 다루지 않은 부문이 없을 정도로 용은 우리생활과 뗄래야 뗄수 없는 밀접한 관계를 맺어 왔다.


나라의 큰 일 많았던 용의 해

‘권위와 강인함’의 상징인 용의 해에는 큰 국가 행사나 사건이 일어났다.

무진(戊辰)해인 기원전(BC) 53년에는 신라 혁거세가 알영(閼英)을 왕비로 맞았고 병진(丙辰)년인 BC 3년에는 백제가 하남 위례성에서 한산(漢山)으로 천도했다. 역시 무진년인 기원후(AD) 8년에는 백제가 원산성과 금산성을 제외한 마한을 병합했고 56년 병진년에는 고구려가 동옥저를 정벌하고 성읍으로 삼았다. 갑진(甲辰)년인 512년에는 신라 장군 이사부가 우산국을 정벌했으며 남북국시대인 728년에는 발해가 일본과 첫 교역을 시작했다.

고려시대인 1232년 임진(壬辰)년에는 몽고의 2차 진입으로 초조대장경이 소실됐고 강화도로 천도가 이뤄졌다. 무진해인 1388년에는 이성계가 조선조 건립의 결정적인 사건이 된 위화도 회군을 한 때이다.

조선시대에도 경진년인 1400년 제2차 왕자의 난이 발생, 이방원이 실권을 장악하며 왕위에 올랐고, 임진왜란이 일어난 때도 1592년 임진년이었다. 일제와의 굴욕적인 한일 의정서가 조인된 1904년도 갑진년 용의 해였고 창씨 개명도 1940년 경진년에 실시됐다.

근대에 들어서는 1976년 병진년 양정모가 몬트리올 올림픽 레슬링에서 사상 처음으로 금메달을 따내는 쾌거를 이룩했으며 역대 최고의 올림픽으로 여겨지는 서울올림픽이 바로 무진년인 1988년 성공적으로 치러졌다. 88년은 전두환 전대통령이 백담사에 들어간 해이기도 하다.

송영웅·주간한국부 기자


송영웅·주간한국부 herosong@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