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주의와 시장경제는 별로 궁합이 맞지 않는 것으로 여겨져왔다. 계획경제가 사회주의의 근간이라면 시장경제는 자본주의의 토대라는 이분법적 사고방식이 지배했다. 이같은 이분법은 중국에서 덩샤오핑(鄧小平)이 1978년 개혁개방을 시작하면서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鄧은 1980년대 초 “자본주의 국가들이 계획경제의 요소인 복지정책를 채택하고 있듯이, 사회주의 국가도 시장경제를 도입할 수 있다”고 선언했다.

이른바 ‘검은 고양이, 흰 고양이론’(黑猫白猫論)이다. 이 말은 ‘사회주의 물적 토대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계획경제라는 고정관념을 버려야 한다’는 일종의 사상해방론이었다.

시장경제와 사회주의가 중국에서 궁합이 맞다면, 정보화와 사회주의는 병존할 수 있을까. 정보화 사회의 키워드는 다원성과 창의성. 이것은 정보화 사회로의 진전이 심화할 경우 공산당 일당독재가 유지될 수 있을까 하는 질문으로 연결된다. 동유럽 사회주의 체제를 무너뜨린 힘이 서방문화 유입을 통제불가능하게 만든 컴퓨터와 팩스 등에 있는 것으로 지목되기 때문이다.


국가기밀 보호위해 공중통신망 통제

중국 정부는 일단 정보화 사회의 위험성에 무게를 두었다. 국무원 산하 ‘바오미쥐’(保密局·기밀보안국)은 1월26일 ‘인터넷 통제규정’을 발표하고 이 규정이 1월1일부터 소급적용된다고 밝혔다.

20개 조항으로 이뤄진 통제규정의 핵심은 국가기밀 보호를 위해 인터넷을 정부의 통제 아래 두는 것. 이에 따라 국가기밀을 담고 있는 모든 컴퓨터 정보 시스템은 www를 비롯한 공중통신망에 직·간접적으로 접속할 수 없게 됐다.

www 사이트에 올려진 모든 정보는 당국에 의해 조사·승인받아야 한다. 게시판과 대화방, 인터넷 뉴스를 운영하는 개인과 회사도 당국의 승인을 얻어야 한다. 이메일 사용자 역시 당국에 인터넷 주소를 보고해야 하며 내용도 감시 아래 놓인다. 중국에서 국가기밀은 정부가 공식 발표하지 않은 거의 모든 내용을 포함하는 모호한 용어다. 지진발생 등 자연재해도 때로는 기밀로 분류된다.

통제규정은 아울러 효율적 감시를 위한 장치도 두었다. 중국내 모든 컴퓨터 관련 회사로 하여금 사용중인 수입 소프트웨어의 암호체계를 당국에 상세히 보고하도록 한 것이다. 당국은 이 암호체계를 파악함으로써 인터넷상을 오가는 모든 메일을 열어볼 수 있게 된 셈이다.

중국이 이같은 규정을 발표한 이유에 대해서는 크게 두가지 분석이 나와 있다. 우선 인터넷상에서 유통되는 각종 정보와 토론이 중앙정부의 권위를 약화할 수준에 이르렀다는 것. 연초에 시작된 남부 푸젠(福建)성 비리사건 수사 내용이 정부발표를 훨씬 앞지르는 폭과 속도로 인터넷상에 쏟아진 것이 대표적인 예다. 홍콩의 사우스 차이나 모닝 포스트지는 1월28일 “최근 푸젠성 사건을 둘러싼 네티즌의 폭발적인 반응은 중앙 지도부에 경종을 울렸다”고 보도했다.


미국의 ‘대중국 정보차단’의도도 담겨

또한가지 분석은 2월1일자 워싱턴포스트가 제기한 ‘서방음모 대응론’. 이것은 정보보안용 소프트웨어 암호기술이 대부분 미국에서 수입되고 있는데서 출발한다. 다시 말해, 미국은 암호기술을 이용해 중국의 정보에 접근할 수 있지만 중국은 불가능하다는 것. 중국이 인터넷 관련 회사에 소프트웨어 암호기술을 보고하도록 한 것은 이같은 불리점을 만회하려는 의도라는 설명이다.

미국은 중국의 조치에 크게 반발했다. 정보의 자유로운 흐름을 막고 소프트웨어 암호기술을 공개하도록 함으로써 무역마찰을 일으킬 수 있다는게 미국의 입장이다. 조셉 프뤼어 주중 미국대사는 “중국의 조치는 미국에 고도의 이해가 걸린 문제”라고 경고했다. 샬린 바셰프스키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도 “우리는 이 문제를 예의주시할 것”이라며 “중국측에 배경 설명을 요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중국의 인터넷 통제는 과연 가능할까. 인터넷 서비스 공급사 HKNet의 찰스 모크 회장은 불가능하다고 잘라 말한다. 모든 웹사이트와 대화방, 이메일 내용을 일일이 조사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것. 그는 재래식 우편 시스템을 인용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당국이 모든 우편물을 검사하는 것이 가능은 하지만 우편물의 흐름을 엄청나게 둔화시켜 시스템을 붕괴시킬 것이다. 인터넷도 마찬가지다.”

인터넷업체 OutBlaze의 얏슈 회장도 같은 입장이다. “필터링 방법을 이용해 주요 어휘들을 삭제하는 것이 기술적으로는 가능하다. 하지만 이것은 인터넷의 발전을 방해하는 부작용때문에 싱가포르 정부도 포기했던 방법이다. 중국 정부의 이번 규정은 중국의 인터넷 혁명에 재앙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분석은 급물살을 타고 있는 중국의 정보화 추이를 보면 쉽게 공감할 수 있다. 1월19일자 인민일보에 따르면 중국의 지난해 PC 판매량은 500만대. 올해는 노트북 PC 33만대를 포함해 600만대가 팔릴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PC 판매량은 앞서 1997년 284만4,400대, 1998년 342만1,200대였다.


경제효과·지배약화 딜레마에

인터넷 사용인구는 지난해말 890만명으로 집계됐다. 1998년말의 100여만명에 비하면 가히 폭발적인 증가다. 이들이 인터넷으로 보내는 시간은 1주일 평균 17시간. 2002년에는 네티즌이 3,000만명을 넘어 세계 3위에 올라설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인터넷 홈페이지를 개설해 홍보와 제품판매에 나서는 회사 수도 급증하고 있다. 지난해 홈페이를 개설한 기업만 9,400개에 달했다. 2002년께 인터넷을 통한 전자상거래 규모는 260억달러에 이를 전망이다.

지난해 인터넷 설비 시장규모는 77억위엔(1조780억원)에 달해 전년비 32.8%가 늘었다. 올해 시장규모는 100억위엔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소프트웨어 판매액은 지난해 160억위엔으로 20% 이상 성장했다. 올해는 200억위엔에 육박할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 정부의 인터넷 통제규정에 대한 해외업체의 반응은 다양하다. 소프트웨어 선두업체인 미국 마이크로소프트(MS)의 대변인은 1일 중국에 제품판매를 계속할 수 있을지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반해 일부 업체들은 규정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있다. 중국 정부가 지나친 부작용에 못이겨 조만간 규정을 유야무야시킬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실제로 중국 정부는 지난해 인터넷 사업에 외국인 투자를 금지했다가 자본부족에 못이겨 철폐한 바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조치가 중국이 안고 있는 인터넷 딜레마의 표현이라고 말했다. 인터넷이 엄청난 경제적 플러스 효과를 갖지만 공산당의 정보통제 능력에는 마이너스 효과를 가져온다는 이중성 속에서 갈등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이번 정책을 경제관료보다는 안보분야 관료의 입김이 더 크게 작용한 결과로 보는 시각이 있는 것은 이때문이다.

배연해·주간한국부 기자


배연해·주간한국부 seapower@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