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당법에 ‘비례후보 30% 이상 배정’ 명시

4·13의 총선 관전 포인트 중 하나는 ‘여성바람’이 불지의 여부. 여성 유권자의 투표 향방이 아니라, 원내에 진입하는 여성이 얼마나 늘어날지가 관심이다. 우먼파워를 기대해 볼 수 있는 근거는 8일 개정된 정당법에 있다. 새 정당법은 비례대표(전국구) 후보의 30% 이상을 여성에 배정하도록 명시했다.

이 법은 국회의원 선거뿐 아니라 시·도의원을 뽑는 광역의회 선거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이에 따라 여야 각 교섭단체는 오는 16대 총선에서 비례대표(46석) 후보의 30% 이상을 여성으로 공천해야 한다.

15대 국회의 여성의원은 11명. 지역구 의원은 민주당의 추미애 의원과 한나라당의 박근혜, 임진출 의원 등 3명이다. 전국구는 민주당 3명(정희경, 신낙균, 한영애 의원), 한나라당 4명(권영자, 오양순, 김영선, 김정숙 의원), 무소속 1명(이미경 의원)이다. 총 299개 의석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은 3.7%로 세계 100위의 수준에 그친다. 16대 총선에서 비례대표의 30%를 여성이 차지하게 된다면 산술적으로 전국구에서만 14명의 여성의원이 등장할 수 있다.

여성 30% 할당제는 여성계의 오랜 요구였으나 지금까지 정치권에서 수용되지 않았다. 8일 본회의에 제출된 정당법 개정안에도 당초 이 조항은 들어있지 않았다. 민주당 신낙균 의원과 한나라당 김정숙 의원 등 30여명의 의원이 30% 할당조항이 들어간 수정안을 전격적으로 제출하면서 결실을 맺게 됐다.


당선 안정권 배정여부가 관건

하지만 관건은 이 조항이 제대로 시행되느냐의 여부. 한국여성단체연합을 비롯한 각 여성단체들은 30% 할당제를 일단 환영하면서도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우선 이 조항이 강제조항이 아닌 훈시조항이라 구속력이 떨어진다. 또한 전국구 순위배정에서 여성후보가 차별받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한나라당 김정숙 여성위원장은 “당선권 밖의 순번에 여성을 집중 배치해 30%라는 구색만 갖춘다면 이 법안은 전혀 의미가 없다”고 지적했다. 결국 실효성 여부는 각 당의 의지에 달렸다. 법안을 발의한 신낙균 의원도 이같은 문제점을 우려했다. 그는 “30% 할당제는 실질적으로 30% 당선을 전제로 한 것”이라며 “만일 정치권이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국민을 상대로 한 기만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여성단체 대표들은 9일 서영훈 민주당 대표를 방문해 여성의 원내진출 확대를 거듭 요구하며 30% 할당제 굳히기에 나섰다. 이들 대표는 “비례대표뿐 아니라 지역구도 30% 정도는 여성에 할당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들은 또 비례대표 공천에서 여성을 후순위로 밀어 30%의 외형만 갖춰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이들은 “법 취지에 맞게 30%의 여성후보를 1, 4, 7, 10번의 식으로 3명당 한명씩 순위배정해야 한다”며 구체적인 공천형식까지 제시했다.

서 대표는 이에 대해 “비례대표 당선 안정권내에 30%의 여성을 공천한다는 게 당의 중론”이라며 긍정적으로 답했다. 그는 나아가 “(당선 안정권인)순번 20번까지 6~7명의 여성을 공천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겠다”고 밝혔다.

지역구에서도 당선 가능성이 어느 정도 있으면 적극 지원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한나라당과 자민련도 당선 안정권 순번에 여성 비례대표 30%를 공천하는데 긍정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각 당의 이같은 태도는 역시 여성표와 무관치 않다. 전체 유권자의 절반을 차지하는 여성의 표심이 선거 결과를 좌우하는 변수가 되기 때문이다.


지역구 공천이 진정한 '여풍'의 시작

각 당의 비례대표 후보로는 누가 거론되고 있을까. 민주당에서는 신당 창당에 참여한 한명숙 전 여성단체연합대표와 김화중 전 대한간호사협회장, 최영희 전 여협회장, 산부인과 의사 박금자씨 등이 우선적으로 하마평에 오르고 있다.

안희옥 당여성위원회 위원장과 정해숙 전 전교조위원장도 자천타천으로 거명되고 있다. 익산 조직책을 신청한 여성검사 1호 조배숙씨는 지역구 공천이 안될 경우 비례대표에 배정될 가능성이 점쳐진다. 경기 고양 덕양에 공천을 신청한 유시춘 국민정치연구회 정책연구실장과 김희선 당무위원 등도 지목되고 있다.

한나라당에서는 국회여성특위위원장인 김정숙 의원과 김영순 부대변인을 비롯한 7~8명이 후보군에 오르내리고 있다. 정무2장관을 지낸 권영자 의원과 경기 고양 일산에 공천을 신청한 오양순 의원, 공천심사 외부민간위원으로 참여중인 이연숙 전 정무2장관도 유력시되고 있다. 경주 갑, 을 선거구 통합에 따라 김일윤 의원과 경합이 불가피해진 임진출 의원과 서울 양천갑에 공천신청한 김영선 의원은 교통정리 차원에서 거론되고 있다.

자민련에서도 황산성 부총재 등 7~8명이 거명되고 있다. 황 부총재는 환경장관을 비롯한 다양한 경력과 대중적 인지도에 힘입어 당내 여성 비례대표 후보 1순위로 꼽힌다. 문화방송 아나운서 출신의 이미영 부대변인과 성우 출신인 고흥숙씨, 이희자 한국근우회장도 유력한 공천 대상자. 이밖에 복지부 장관을 지낸 김모임 부총재, 김창희 전 총재특보, 박보희 여성특별위원장, 신태희 정책위 부의장 등도 후보군에 포함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진정한 ‘여풍’(女風)의 정도를 가늠할 곳은 역시 지역구다. 비례대표와 달리 지역구 승패는 당력 뿐 아니라 출마자 개인의 능력과 인기도를 무기로 처절한 야전을 거쳐야 하기 때문. 지역구 공천 접수를 끝낸 여야 3당의 여성 희망자는 모두 33명.

민주당은 장영신 애경그룹회장(서울 구로을), 추미애 의원(서울 광진을), 한영애 의원(전남 보성·화순), 김희선(서울 동대문갑), 유승희(경기 광명갑), 유시춘(경기 고양 덕양을), 이영성(경기 성남 분당), 김경천(광주 동), 안행강(광주 남), 조배숙(전북 익산), 김현미(전주 완산), 박남희(대구 수성갑), 안상현(강원 원주)씨 등 22명이다.

한나라당에서는 박근혜 의원(대구 달성), 임진출 의원(경북 경주), 김영선 의원(서울 양천갑), 오양순 의원(경기 고양 일산), 양경자 전의원(서울 도봉갑), 홍사임(서울 동대문갑), 한승민(서울 동대문갑), 오춘자(경북 의성)씨 등 8명이 출마를 희망했다. 자민련은 신은숙(서울 서초갑), 김을동(서울 종로), 이춘자(경기 의정부)씨 등 3명.

지역구 우먼파워의 바로메타는 재선의원 탄생 여부와 전국구 출신의 지역구 입성 여부. 15대 국회까지 역대로 재선 이상 여성의원은 모두 12명. 하지만 지역구 재선 의원은 11, 12대에 민정당 후보로 연거퍼 당선된 김정례씨가 마지막이었다. 현역 지역구 3인방인 추미애, 박근혜, 임진출 의원이 재선에 성공해 끊어진 대를 이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재선·지역구 입성 가능할까

전국구에서 지역구로 말을 갈아타고 출마한 여성의원은 역대 선거에서 한번도 성공한 적이 없다. 전국구 현역 중 16대 총선에서 지역구 출마 희망을 표명한 여성의원은 민주당의 한영애 의원과 한나라당 김영선, 오양순 의원 및 무소속 이미경(경기 부천 오정) 의원 등 3명이다. 이들 중 새기록 창출자가 나올 수 있을지 관심거리다.

고려대 김병국 교수(정치학)는 “비례대표 30% 여성 할당제는 남녀차별을 깨기 위한 가장 손쉬운 방법”이라고 분석했다.

김 교수는 지역구 출마 희망 여성의 비율이 저조한데 대해 “당선 가능성이 낮기 때문”이라며 “이 자체가 한국사회의 남녀차별 수준을 반영한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의 예를 들며 “한국에서 남녀의 정치적 평등이 뿌리 내리기 위해서는 앞으로 20년이 필요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배연해·주간한국부 기자


배연해·주간한국부 seapower@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