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짓밟혀도 하소연할 데가 없어요"

이복수(58)씨는 요즘 부쩍 한숨이 늘었다. 1997년 4월 하나밖에 없는 아들 조중필(당시 22·홍익대 전파공학과)씨가 여자친구를 바래다 주려 이태원에 갔다가 햄버거 가게 화장실에서 재미교포와 미 군무원의 아들에 의해 살해됐다.

용의자로 지목돼 살인죄로 기소된 재미교포 에드워드 리(23)는 지난해 11월 대법원에서 무죄판결을 받았고 또다른 용의자인 미 군무원의 아들 아더 페터슨(23)은 검찰의 실수를 틈타 미국으로 출국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아들은 살해당했는데 범인은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크고 작은 집회 등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라면 가리지 않고 돌아다니면서 검찰의 철저한 수사를 촉구하는 서명을 받아온 이씨는 맥이 빠지고 말았다. 검찰이 지난해 8월23일 페터슨에 대한 출국금지조치를 제때 연장하지 않아 3일간 공백이 생긴 사이 페터슨은 미국으로 출국했다는 사실이 지난해 12월23일에야 한 언론사에 의해 확인된 것이다.

이씨는 그동안 검찰에 페터슨에 대한 재수사를 수차례 요구했지만 검찰은 “소재파악중”이라는 말만 되풀이 했었다. 이씨는 담당검사를 직무유기혐의로 고소했지만 형사처벌을 받을 거라고는 기대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원혼이 되어 구천을 해멜 아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슬픔을 가누지 못하고 있다. 이씨는 “만약에 용의자들이 한국인이었다면 당국이 사건을 이렇게까지 허술하게 처리했겠냐”며 “검찰이 수사 초기부터 용의자들이 미국인이라는 이유로 미적거렸다”고 말했다.


일방적으로 당하는 미군범죄 피해자들

우리나라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과 군무원이 관련된 범죄는 특별한 ‘대접’을 받고 있다. 바로 한미 행정협정(SOFA·Status of Forces Agreement)때문이다. 범죄를 저지른 미군에 대한 형사관할권(22조)을 비롯해 미군 범죄 피해자의 배상신청(23조), 한국인 노무자의 노동권 (17조) 등을 제약하고 있어 한미 행정협정은 ‘제2의 을사보호조약’이라는 비난까지 나오고 있다. 한·미 양국은 협정 개정작업을 벌였지만 1996년 미국측의 일방적인 중단 통고 이후 전혀 진전이 없는 상태다.

정부의 공식통계에 따르면 1967년부터 1998년까지 미군 및 미 군무원의 범죄는 모두 50,092건이다. 그러나 접수되지 않은 사건까지 포함하면 10만건은 훨씬 넘는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추산이다. 연평균 2,000여건에 이르던 미군 범죄는 1992년 10월 미군 케네스 마클이병의 윤금이씨 살해사건을 계기로 연평균 700~800건으로 크게 줄어들었다.

미군 범죄에 대한 비난여론이 들끓자 미군의 자체 단속이 강화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미군 범죄 피해자들은 불평등한 협정뿐만 아니라 당국의 미온적인 태도와 주위 사람의 선입견 등으로 2중, 3중의 피해를 당하고 있다. 주한미군 범죄 근절운동본부 오진아 간사는“미군 관련 범죄는 법에 의해 보호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며 “주변에서도‘우리나라를 지켜주기 위해 온 사람들인데 그 정도 피해는 감수해야 되는 것아니냐’는 생각이 남아 있어 후유증이 심각하다”고 말했다.

피해보상은 더욱 어렵다. 피해액을 최종적으로 미군측이 결정하는데다 전적으로 미군의 잘못이더라도 한국정부가 25%를 지급하도록 규정돼 있다.

택시운전을 하던 공석일(43)씨는 지난해 4월 미군에게 강도를 당한 사건을 생각하면 아직도 치가 떨린다. 저녁 11시쯤 이태원에서 택시를 탄 미군 2명이 갑자기 공씨의 얼굴을 마구 때려 2만원을 빼앗아 달아났다. 공씨는 우측 눈 언저리뼈가 부서져 인공뼈를 이식하는 등 3개월간 병원신세를 졌다. 보상을 신청했지만 1,200만원을 받고 사건을 종결했다. 이중 병원비와 일실 손실을 제외하면 보상금은 77만원, 합의금은 200만원에 불과했다.

‘안받으려면 마음대로 하라’는 식의 태도에 화가 치밀었지만 전세금을 담보로 병원비를 충당해 돈이 급한데다 변호사도 다른 방법이 없다는 조언뿐이었다. 공씨는 사건 후유증으로 시력이 악화해 택시운전을 그만두었고 사글세로 옮기는 등 생활형편도 크게 나빠졌다. 공씨는 “내가 배운 것은 없지만 도대체 어느나라 법이 이렇게 돼 있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폭격소리에 돌아버릴 지경

미군과의 갈등은 형사사건에서 차츰 환경파괴와 기지나 훈련장으로 인한 피해 등으로 옮겨가는 추세다. 경기 화성군 우정면 매향리에 자리잡은 미 공군의 쿠니 사격장이 대표적이다. 쿠니 사격장은 1952년 농섬을 해상 표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이래 해안지역과 일대 농지를 지속적으로 징발, 확대하면서 월요일 새벽부터 금요일 밤까지 폭탄투하 기총사격 등이 수십년간 계속되고 있다.

폭탄투하 지점인 농섬은 크기가 3,000평에서 지금은 1,000평 안팎으로 줄어들었을 정도다. 쿠니 사격장은 오키나와, 괌, 필리핀 등 극동지역 미 공군까지 출장훈련을 할 정도로 지형과 기후 조건이 최적이라는 평가다.

그러나 사격장 주변의 매향리 주민들은 생계의 터전을 상당부분 잃어버린데다 소음과 오폭으로 극심한 고통을 당하고 있다. 오폭과 불발탄으로 인한 사고가 끊이지 않으며 200여세대에 불과한 매향1리에서만 지금까지 30여명이 자살하고 학생들의 폭력성향이 두드러지는 등 극심한 소음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다.

1987년 민주화 바람에 힘을 얻어 매향리 주민의 사격장 이전, 피해보상 운동이 시작됐지만 10년이 넘도록 해결기미가 불투명한 상태다. 오히려 점거농성, 반대집회를 주도한 젊은이들만 형사처벌을 받았다.

국방부는 1997년 미군측의 강력한 반대와 예산 등의 이유를 들어 사격장 이전보다는 사격장에서 5㎞ 가량 떨어진 지역으로 주민을 이주시키는 방안을 제시했으나 주민들이 “생계대책이 빠져 있다”며 반발해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주민들, 우리정부 태도에 더 분노

주민들은 1998년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320억원의 피해보상 소송에 관심을 갖고 있다. 승소할 경우 이를 근거로 사격장 폐쇄운동을 펼쳐나갈 계획이다.

‘매향리 미 공군 폭음피해 대책위원회’ 전만규(44)위원장은 “한국군의 사격장도 이렇게 주민을 사격장 주변에 방치하지 않는다”며 “훈련효과를 높이기 위해 미군과 한국 정부가 주민을 볼모로 삼고 있는 것”이라고 흥분했다.

전씨는 미군보다는 한국 정부와 공무원의 태도에 환멸을 느낀다고 말했다. 전씨의 일거수 일투족이 감시당하는 것은 물론이고 무엇보다 언론의 취재가 시작되면 악천후에도 계속되던 훈련이 중단된다는 것이다. 누군가 미군측에 매일 동향을 알려주지 않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이 전씨 등 주민들의 생각이다.

그래서 매향리 주민들은 “매일 방송사나 신문사 기자들이 이곳에 왔으면 좋겠다”고 농담을 한다. 주한미군범죄 근절운동본부 (02)744-1211

송용회·주간한국부 기자 김명원·사진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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