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3 총선의 화두는 단연 ‘물갈이’다. 경실련 총선연대 등 시민단체들이 ‘퇴출 정치인’의 명단을 공개하면서 낙천·낙선운동을 벌이고 있는 것이 그 촉발점이 되고 있다. 이들 단체가 헌정사상 처음으로 법을 어겨가면서까지 들고 일어난 것에 거의 대부분의 유권자가 호응하고 있는 것으로 각 언론사가 행한 여론조사 결과 확인되고 있다. 그만큼 우리 국민은 현재의 정치구도에 환멸을 느끼고 있다.

혹자들은 낙천·낙선운동을 ‘6월 민주항쟁’에 비유하고 있다. 이 단체, 저 단체에서 우후죽순격으로 뒤따라 목소리를 내는 바람에 운동의 취지가 다소 선명치않게 된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성 정치권에 몸담았다는 사실이 마치 ‘결격사유’로 여겨질 정도로 유권자의 물갈이 요구는 거세다.

1987년의 민주항쟁으로 독재자를 물러나게 했던 것을 방불케 한다. 어쩌면 독재자는 사라졌지만 그 독재자를 둘러싸고 만들어졌던 정치구조, 그리고 그 속에서 안주한 정치인들이 그대로 남아있는 것에 대해 국민이 다시한번 분노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불행한 일이지만 ‘독재의 유산’은 여전히 살아 그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민주당과 한나라당의 1차 공천결과를 보면 지역구 의석을 기준으로 각각 29%와 27.2%의 현역의원을 교체했다. 얼핏 보면 국민의 ‘물갈이 여망’을 어느 정도나마 받아들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한꺼풀만 벗기고 보면 사실은 그게 아니다.

이미 각 신문지상에 보도됐듯이 각당은 공히 ‘물갈이’를 한 게 아니라 ‘일인체제’를 강화한 것이다. 각당의 지도자는 과거 자신에게 반기를 들었거나 혹시 장래에 경쟁자가 될만한 사람들을 골라 공천에서 탈락시켰다.

잠깐 미국 정치의 예를 살펴보자. 우리의 경우 정치권 전체가 워낙 국민의 불신을 받고 있어서 그렇지 원론적으로 생각해볼 때 ‘물갈이’가 반드시 민주주의 정치에 부합되는 것은 아니다. 미국의 경우 하원의원의 수가 무려 435명에 이른다. 그것도 2년마다 선거를 하는데도 교체되는 의원의 수는 20~30명일 정도로 적다.

그나마 대부분 스스로 정치의 길을 포기하거나 은퇴하는 경우이며 자신의 의사에 반해서 후보교체되거나 선거에서 떨어지는 사람은 5명을 넘지못한다. 그래서 미국의 대통령은 의회에 대고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있는 처지가 못된다. 자신의 정치생명이 대통령과는 거의 무관한 마당에 어느 누가 백악관의 눈치를 살피겠는가.

뻔한 얘기겠지만 우리의 경우는 어떨까. 여당은 대통령이 총재를 겸하고 있고 또 야당도 장차 대통령 출마의 뜻을 강하게 갖고 있는 사람이 총재를 맡고 있다. 이들의 손에 의해 30% 정도의 현역의원이 밀려난다면 어떤 결과를 빚게 될까는 정말 불을 보듯 명백한 일이다. 개혁이라는 명분을 내세우지만 현상은 정치적 반대자를 몰아내는 방향으로 작용하게 된다.

물론 그가운데는 지역구민의 지탄을 받거나 형편없는 의정활동을 보여준 경우도 포함될 것이다.

해방이후 우리나라의 독재자들은 한결같이 ‘자신의 당’을 만들었다. 이승만 대통령이 그랬고 박정희 대통령도 군사쿠데타후 공화당을 만들었다. 역시 쿠데타로 집권한 전두환 대통령은 민정당을, 그리고 노태우 대통령도 민자당을 만들었다. 비록 민주선거에 의해 선출됐지만 김영삼 대통령은 신한국당을, 그리고 김대중 대통령은 새천년민주당을 만들었다.

왜 똑같은 일들이 반복되고 있을까. 모든 사람이 ‘자신의 당‘을 만들 때마다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웠다. 하지만 결과는 자신의 권력을 공고히 하는 쪽으로 나타났다. 당을 만들 때마다 대거 인재를 영입한다고 대폭적인 물갈이를 시도했지만 ‘새로운 친위부대’를 만드는 것에 불과했다.

그랬기때문에 총선이 있을때마다 거의 예외없이 30%선이라는 놀라울 정도의 의원 교체율을 보였지만 정치는 노상 그게 그것일 수밖에 없었다. 산술적으로 총선을 세번 치르면 모든 국회의원이 새로운 사람으로 바뀌지만 정치는 절대로 바뀌지 않았다.

이제는 ‘물갈이’도 좋지만 ‘어떻게 물갈이하느냐’가 훨씬 더 중요한 시점이다. 바로 ‘독재의 유산’이 아직 성성히 살아있기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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