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 정보통신의 미래를 연다

한국 경제가 세계 자본주의의 큰 흐름에 급속히 흘러들고 있다. 그같은 흐름은 한국에서 다국적 기업의 역할과 비중이 갈수록 커지고 있는 것에서 실감할 수 있다.

지난 호(1810호)에서 한국 경제의 풍토를 바꾸고 있는 다국적 기업을 다룬 주간한국은 이번 호부터는 그 후속으로 한국 시장에서 새로운 의미로 떠오른 주요 다국적 기업의 면면을 소개할 계획이다. 그리고 첫 회는 세계 통신장비분야의 강자인 미국의 루슨트 테크놀로지를 살펴보았다.


‘무위자연(無爲自然)’

전 고려대 교수이자 동양철학가인 도올 김용옥씨가 교육방송(EBS)에서 노자사상을 강의하며 강조한 말이다. 말 그대로 특정 사물이나 현상에 대해 일체의 지혜나 기교를 배제하고 ‘있는 그대로’, 혹은 ‘흘러가는 대로’ 놔두는 것이 오히려 낫다는 뜻이다.

다소 논리적 비약이 될 수도 있겠지만 지난해 한국 경제에서 ‘무위자연’을 실감케 한 곳을 찾으라면 단연 국내 증권회사다. 증시활황으로 수십조원의 자금이 몰려들면서 증권사의 경우 증권수수료 수입이 저절로 급증, 순이익 규모가 1998년보다 10배 이상 늘어났기 때문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1999 회계연도중 3·4분기까지 국내 32개 증권회사의 세전 순이익은 총 5조2,485억원으로 1998년(4,953억원)보다 959.1%나 증가했다.


정보통신혁명으로 수요 폭발적 증가

그렇다면 ‘무위자연’이란 심오한 뜻을 가진 말을 위와 같은 의미로 사용한다면 세계 유수의 다국적 기업중에는 어떤 기업이 꼽힐 수 있을까. 논란의 여지가 있겠지만 루슨트 테크놀로지(Lucent Techonogy)가 그 주인공이다.

통신장비부문에서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갖춘 것으로 평가받는 루슨트 테크놀로지는 최근 지구촌에 불어닥친 정보통신 혁명에 따라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인위적 노력없이도 그 규모와 기업가치가 ‘욱일승천’의 기세로 치솟고 있다.

최근 발표된 1999년 결산 영업보고서는 1996년 AT&T에서 분리된 신생 기업인 루슨트 테크놀로지가 지난 3년 동안 얼마나 눈부신 성장을 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1996년 190억 달러였던 루슨트 테크놀로지의 매출액은 1999년 380억 달러로 두배가 늘었으며, 주가 역시 3년동안 9배가 상승했다.

루슨트 테크놀로지는 현재 미국을 제외한 전세계 58개국에 3만500여명의 직원을 고용, 93개국에서 사업을 벌이고 있다. 루슨트 테크놀로지는 또 1996년 매출액중 23%를 해외에서 벌어들였으나 1999년에는 약 32%를 외국시장에서 이뤄냈다.

하지만 겉보기에는 ‘정보통신 혁명’이라는 외풍에 힘입어 성장한 것처럼 보이는 루슨트 테크놀로지의 성공 이면에는 우리가 상상도 할 수 없는 철저한 준비가 깔려있다. 실제로 전문가들은 “루슨트 테크놀로지는 재무, 인사, 연구·개발, 경영전략 등 기업경영의 전 분야에서 한국 기업이 벤치마킹 대상으로 연구해야 할 만큼 독보적 행보를 보이고 있다”고 지적한다.


세계최고순준의 연구·개발투자

먼저 양과 질적인 측면 모두에서 세계 최고수준을 자랑하는 연구·개발투자. 루슨트 테크놀로지는 매출액의 11%를 연구개발비로 투자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는데 1999년 매출액이 383억 달러였던 것을 감안한다면 1999년 한해동안 40억달러(4조4,000억원)를 연구·개발분야에 쏟아 부은 셈이다.

전세계 20여개국에 2만4,000여명의 연구원을 보유, 기술혁신의 산실인 ‘벨 연구소’도 루슨트 테크놀로지의 핵심 경쟁력이다. 1996년 루슨트 테크놀로지가 AT&T에서 분리할 때 함께 분리된 ‘벨 연구소’는 세계 최초로 전화기를 발명한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의 이름을 따 1925년 설립됐는데 명성에 걸맞게 하루 평균 3.5개의 특허를 내고 있다.

루슨트 테크놀로지 박미경 차장은 “벨연구소는 1998년 노벨물리학상을 포함해 노벨상 수상자 11명과 미국 과학상 수상자 5명을 배출했으며 트랜지스터, 셀룰러, 유닉스시스템, 레이저 등 수많은 신기술을 개발했다”고 설명했다.

재무와 인사관리 분야에서도 루슨트 테크놀로지는 한국 기업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

특히 1999년 부채비율(34.1%)과 자산수익률(11.4%)은 한국 기업과 비교할때 4~5배 정도 우량한 수준이다. 루슨트 테크놀로지는 또 종업원의 조직에 대한 충성심을 높이기 위해 이미 3년전 전직원을 대상으로 스톡옵션을 실시했으며 리처드 맥긴 회장 등 최고경영자들이 점심시간에도 직원식당에서 평사원과 토론하며 식사를 즐길 정도로 내부 커뮤니케이션에 주력하고 있다.


과감한 인수합병 및 전략적 제휴

루슨트 테크놀로지는 최근 새로운 경쟁력 강화수단으로 떠오른 인수·합병작업도 과감하게 벌이고 있다. 데이터 네트워킹 사업을 강화하기 위해 에자일 네트워크, 리빙스턴 프라미넷과 유리시스템 등을 인수했으며 1999년 6월에는 원거리통신망 분야의 세계적 리더였던 어센드 커뮤니케이션스를 합병했다.

또 미국에서 가장 강력한 경쟁상대로 꼽히는 모토롤라와 디지털 신호처리(DSP) 기술과 차세대 DSP의 핵심기술의 공동개발을 위해 전략적 제휴를 선언하기도 했다. 맥긴 회장은 이와 관련, “루슨트 테크놀로지의 전략은 전세계 고객에게 통신 네트워킹 솔루션을 공급하는 최고 회사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전략의 일환이라면 기술개발은 물론 사업에 도움이 되는 다른 회사와 제휴하는 것을 마다할 생각이 없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이처럼 막강한 경쟁력을 갖고 있는 루슨트 테크놀로지의 한국내 위상은 어느 정도일까. 1986년 외국회사로는 처음으로 한국통신에 전자교환기 공급권을 획득한 루슨트 테크놀로지는 1999년말 현재 300여명의 국내 직원을 고용하고 있으며 매출액은 3,000억원을 넘어선다. 루슨트 테크놀로지는 또 코드분할다중접속(CDMA), GSM 분야에서 한솔PCS, 신세기이동통신과 협력관계를 맺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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