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대통령 후보 경선, 공화당 혼전 민주당은 고어 순항

요즘 미국 언론들, 특히 방송사는 신바람이 났다. 2000년 미국 대통령선거에 나설 공화·민주 양당의 후보경선이 갈수록 뜨거운 접전을 벌이는 바람에 각 후보 진영에서 쏟아붓는 정치광고가 쇄도하기 때문이다. 주요 예비선거가 치러지는 날이면 가판대의 신문도 순식간에 동이나곤 한다. 가히 ‘대선특수’라 할 만한 현상이다.

그러나 지난해까지만 해도 대선 예선전이 이처럼 혼전 양상으로 진행될 것으로 예측한 전문가는 거의 없었다.

지난해 말부터 올 초까지 실시된 대부분의 여론조사를 보면 공화당에서는 조지 W 부시 텍사스 주지사가, 민주당에서는 앨 고어 부통령이 압도적 우세를 보였다. CNN과 USA 투데이가 갤럽에 의뢰, 지난해 12월20일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공화당에서는 부시 주지사가 60%대17%로 존 맥케인 상원의원을 크게 리드했다.

또 민주당에서는 고어 부통령이 60%를 얻어 27%의 지지를 얻은 빌 브래들리 전상원의원을 압도했다. 때문에 워싱턴의 정치분석가들은 올 대선 예선전이 초반에 부시와 고어의 ‘콜드게임승’으로 끝날 것으로 점쳤다.

대선 예선전의 개막전이라 할 1월24일의 아이오와 코커스에서 고어와 부시가 압승하자 이같은 전망이 그대로 들어맞는 것처럼 보였다. 대선후보 지명전의 첫 풍향계로 평가받는 아이오와 코커스에서 공화당의 경우 부시가 41%를 얻어 1위를 차지했고 이어 출판재벌 스티브 포브스(30%), 보수주의 운동가 앨런 키스(14%)가 뒤를 이었고 맥케인은 5%의 지지밖에 얻지 못했다.

민주당에서는 고어가 63%대35%로 브래들리를 손쉽게 이겼다. 선두주자들이 예상대로 압승을 거두었던 것이다.


판도 뒤흔든 뉴햄프셔의 반란

그러나 2월1일 치러진 북동부의 뉴햄프셔주 예비선거에서부터 예상치 못한 이상조짐이 일기 시작했다. 특히 공화당의 경우에는 맥케인이 부시를 18% 포인트 차이로 누르고 1위를 차지하는 대이변이 벌어졌다. 다만 민주당의 경우 브래들리가 47%를 얻어 52%를 얻은 고어에 5% 포인트 차까지 추격하는 선전을 했으나 전세를 역전시키지는 못했다.

맥케인의 ‘뉴햄프셔 대첩’으로 공화당 예선은 혼전으로 변모했다. 뉴햄프셔 예선이 끝나자 맥케인의 인기는 돌풍처럼 치솟았다. 언론들은 아이오와 유세를 아예 포기한 채 뉴햄프셔 예비선거에 전력투구하는 대모험을 벌여 ‘대박’을 터뜨린 맥케인에게 집중적인 포커스를 맞추었고 이 덕분에 거의 바닥나던 선거자금도 활발하게 몰려들기 시작했다.

CNN과 USA 투데이가 뉴햄프셔 예비선거 직후인 2월4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맥케인은 56%의 지지를 받은 부시에 이어 34%를 얻었다. 부시의 선두고수는 불변이었으나 지지율에서 의미있는 변화가 나타났다. 불과 열흘전에 비해 부시는 10% 포인트나 지지율이 하락한 반면 맥케인은 20% 이상 상승한 것이다.

맥케인측은 ‘뉴햄프셔 태풍’을 남부로 몰고가기 위해 이번에는 대의원이 12명에 지나지 않는 델라웨어 예비선거(2월8일)를 포기하고 2월19일의 사우스 캐롤라이나 예비선거에 총력을 기울였다. 아이오와 코커스를 포기하고 뉴햄프셔 예비선거에 명운을 걸었던 작전을 또다시 구사한 것. 그러나 공화당 주류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부시진영이 맥케인의 전략을 수수방관할 리는 만무했다.

모든 조직을 총가동하고 300만달러가 넘는 막대한 자금을 들여 TV광고와 전화및 다이렉트메일(DM) 공세를 파상적으로 폈다. 여론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인신공격을 퍼붓는 ‘네거티브 캠페인’도 구사했다. 언론과 국민의 뜨거운 관심속에 진행된 개표결과는 53%대42%로 부시의 압승. 부시는 뉴햄프셔에서 일기 시작한 맥케인의 불길이 남부지역으로 옮겨붙지 못하도록 ‘방화벽’을 치는데 멋지게 성공했고 부시의 아성인 남부지역에 전초기지를 만들려던 맥케인은 참담한 패배를 맛보아야했다. 이로써 공화당 예비선거는 사실상 끝난 것처럼 보였다.


맥케인, 미시건 애리조나서 연승

그러나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모두 해군제독 출신인 무골 집안에다 베트남전 포로출신인 ‘의지의 사나이’ 맥케인은 자신의 별명에 걸맞는 또다른 역전극을 펼쳐 보였다. 사우스 캐롤라이나 예비선거 사흘후인 22일 실시된 미시건과 애리조나 예비선거에서 맥케인은 부시를 연파하고 극적으로 재기하는데 성공했다.

맥케인은 미시건에서 51%를 얻어 43%를 받은 부시를 8% 포인트 차이로 눌렀고 자신의 안방인 애리조나에서는 더블스코어에 가까운 60%대36%로 압승했다.

당초 혼전으로 예상됐던 미시건에서 두 자리수에 가까운 차이로 맥케인이 승리한 점은 여러가지 면에서 의미깊게 평가됐다. 미시건은 인구밀집 지역인 중서부 공업지역 중의 하나로서 이들 지역에서도 맥케인이 잘만 하면 부시를 누르고 선전할 수도 있다는 점을 보여줬다.

또한 공화당 내부에서 ‘부시 이상론(異常論)’이 제기되도록 함으로써 내부균열이 빚어지는 의외의 소득도 얻었다. 그러나 뉴햄프셔에 이어 미시건에서도 맥케인이 공화당원보다는 민주당원과 무당파의 압도적 지지에 힘입어 우세를 지켰다는 사실이 출구조사 결과 드러남으로써 맥케인이 최종전에 승리하기위해서는 정통 공화당원의 보다 많은 지지를 이끌어내야한다는 문제점도 제기됐다.


부시, 남부 화요일에 승세 굳힐 듯

미시건에서 맥케인이 승리함으로써 공화당 경선은 이제 후보지명에 필요한 대의원 1,034명의 절반이 넘는 602명의 대의원이 걸려있는 3월7일의 ‘수퍼 화요일’에서 판가름날 전망이다. 캘리포니아, 뉴욕, 뉴저지 등 메이저주를 포함해 모두 13개 주에서 치러지는 ‘수퍼 화요일’의 전투에서 현재까지는 일단 부시가 우세하리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1개의 주에서 치러지는 국지전과 달리 전국에 걸쳐 실시되는 ‘수퍼 화요일’에서는 맥케인에 비해 조직과 자금력에서 절대적 우세를 보이고 있는 부시가 유리할 수 밖에 없다. 부시는 후보를 사퇴한 엘리자베스 돌 여사를 비롯한 공화당 주류의 전폭적 지지를 받고 있다.

그에게 지지를 선언한 주지사만도 전체 주지사의 절반이 넘는 26명에 이르며 상원의원중 39명도 부시의 편이다. 하원의원의 경우에도 168명의 지지를 확보, 거의 싹쓸이하다시피 했다. 선거자금도 지난해 말까지 부시는 6,700만달러라는 사상 최대규모를 거둬들여 기염을 토한 반면 맥케인은 4분의1에도 못미치는 1,560만달러를 모았을 뿐이다.

게다가 ‘수퍼 화요일’의 경우 민주당의 예비선거가 동시에 치러지는 주가 많은데 민주당원의 ‘크로스오버’(교차투표)에 기대해야 하는 맥케인으로서는 악전고투가 예상된다.

워싱턴의 선거 전략가들은 ‘수퍼 화요일’에서 부시가 승리할 가능성이 크다고 점치고 있다. 그러나 부시가 압승을 거두지 못하고 박빙의 승리를 할 경우 맥케인이 중도하차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여 텍사스, 플로리다 등 6개 남부 메이저주에서 동시 예비선거가 진행되는 ‘남부 화요일’에서 최종 결판날 것으로 전망된다.

이 경우 텍사스는 부시의 고향인데다 플로리다는 동생인 젭 부시가 주지사를 맡고 있는 등 사실상 부시의 텃밭이어서 부시의 압승으로 올 공화당 예비선거는 막을 내릴 것이라는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민주당, 고어 승세 굳히고 본선 대비

한편 공화당에 비해 민주당의 경우는 고어 부통령의 승세가 날로 굳어져가고 있어 ‘수퍼 화요일’을 고비로 사실상 막을 내릴 것으로 보인다.

현재 각종 여론조사에서 고어는 65% 이상의 지지를 얻어 25% 내외의 지지를 얻고 있는 브래들리에 2배 이상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더구나 아이오와 코커스와 뉴햄프셔 예비선거에서 브래들리가 연패한 이후 지지율 격차는 더욱 커져가고 있는 추세여서 브래들리의 극적인 역전승은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다. 고어진영에서는 벌써 하반기의 본선전략에 눈길을 돌리는 여유마저 보이고 있다.

이같은 상황을 감안해 보면 다소의 우여곡절은 있으나 이제 미국 대통령 선거전은 공화당의 부시 주지사와 민주당의 고어 부통령간의 메인게임으로 치러질 것으로 전망된다.


윤승용 워싱턴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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