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산업의 빛과 그림자, 미국경제 위협할 시한폭탄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에는 제이콥슨 부부와 같은 사람들을 지칭하는 말이 생겼다. ‘델장자들’(Dellionaires). 제이콥슨 부부는 1980년대 후반 델컴퓨터에 입사하면서 저축한 돈을 모두 쏟아부어 회사주식을 샀다. 유상증자와 스톡옵션까지 받았다. 주위의 친구들이 분산투자를 하라고 조언했지만 이들은 듣지 않았다.

델컴퓨터사의 주가는 1989년 상장이후 900배가 치솟았다. 제이콥슨 부부는 지금 트래비스 호수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오스틴시 서부의 220만달러(24억여원)짜리 저택에 살고 있다. 부인 페이지 제이콥슨(36)은 “델에 입사했을 때 그저 재미있는 첨단회사에 불과했다”며 “이같은 일이 일어나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1987년 오스틴으로 이주한 로버트 파비오(42)도 오스틴의 ‘첨단산업 붐’수혜자다. 그는 IBM이 750만달러에 매입한 티볼리 등 소프트웨어 회사 3개를 설립한 뒤 다른 회사에 팔아 떼돈을 벌었다. 그는 캐나다 남부 호수의 한 섬을 매입해 여름이면 그 곳에서 보낸다.

게임회사인 오리진의 공동 창업자인 리처드 캐리엇(38)의 취미는 골동품 수집. 그는 최근 2,500만달러를 들여 700평이 넘는 중세풍의 성을 지어 주위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오스틴은 첨단산업 붐의 최대 수혜자중 하나다. 오스틴 인구는 110만명으로 1990년에 비해 30%이상 늘었고 매달 약 2,000명이 신규 전입하고 있다. 그러나 오스틴은 또한 첨단산업 붐이 몰고온 극심한 빈부격차를 보여주는 사례로 꼽히고 있다.


"컼퓨터경제에 차여 못하면 패배자"

집세와 부동산 가격이 치솟으면서 ‘디지털 경제’를 뒤쫓아가지도 못하고 첨단기업의 주식도 갖지 못한 중산층들은 시 외곽으로 밀려나고 있다. 텍사스 오스틴대학의 연구에 따르면 노동인구의 3분의 1이 주 350달러의 소득으로 살고 있고 교사들마저도 생계를 꾸려나가기 힘들 정도다.

첨단산업 관련 직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오스틴 전체 노동인구의 20%에 불과하다. 두 계층은 오스틴의 8차선 도로인 I-35를 중심으로 확연히 구분된다. I-35 도로 서부의 첨단산업 회사들은 프로그래머와 데이터베이스 설계요원이 부족해 아우성인 반면 동부 오스틴의 드위티 실직자재교육센터는 매달 800명이 참가하지만 일자리를 찾지 못해 애태우고 있다.

오스틴의 21세기 프로젝트 팀장인 게리 체프만은 “명백한 사실은 컴퓨터 경제에 발을 들여놓지 못하면 패배자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첨단산업 붐이 가져온 이같은 결과는 실리콘밸리나 아틀랜타, 달라스보다 오스틴에서 더욱 극명하게 드러난다. 오스틴의 지역경제는 1980년대만 하더라도 유가및 농작물 가격 하락으로 허덕였다. 그러나 이제는 ‘디지털 양극화’(digital divide)라는 신조어가 만들어질 정도로 계층간 격차가 심각하다. 오스틴 경제의 심각한 양극화 현상은 조지 부시 텍사스주지사의 대권 행보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창고회사에 다니는 로니 다니엘(39)의 2주간 급여는 2,900달러. 그의 기본급은 시간당 25.36달러에 불과하지만 소득이 늘어난 것은 시간외 수당때문이다. 집에 컴퓨터는 있지만 인터넷 접속 방법을 모르고 주식 등 재테크에는 문외한이다.

다니엘은 물가상승률에도 못미치는 급여와 800달러에서 1,600달러로 2배나 오른 집세를 견디지 못하고 결국 오스틴 외곽으로 이사했다. 장애인을 위한 컴퓨터 교습소를 운영중인 토니 윌리엄(46)은 “우리는 I-35라는 장벽을 따라 둘로 나뉘었다”며 “한쪽은 학교에 컴퓨터가 있고 인터넷에 익숙하지만 장벽의 반대편에는 아무 것도 없다”고 말했다.


정치· 경제 근간 뒤흔들 빈부격차

미국의 지속적인 경제호황은 거의 완전고용을 이루는 등 저소득층에게 많은 혜택을 가져다 준 것도 사실이다. 대통령 경제자문위원회는 1993년부터 1998년까지 하위 20%의 소득이 급격히 증가했다는 보고서를 최근 발표했다. 경제호황의 결과 차량 2대이상의 가구가 1970년 29%에서 62%로 급증했고 항공여행은 4배나 늘었다.

그러나 지난 20년간 경제호황의 과실은 대부분 고소득층이 가져갔다. 변혁기에는 항상 미래를 예측하고 먼저 움직이는 사람들이 혜택을 받는 것은 불변의 법칙이다. 실례로 새로운 경제체제 경영자들과 종사자들은 ‘굴뚝산업’ 경영자나 종사자들에 비해 4배나 많은 소득을 벌어들이고 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심화하는 빈부격차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미국의 정치, 경제적 근간을 뒤흔들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1979년 상위 5%의 평균 소득은 하위 20% 평균소득의 10배 수준이었으나 1989년 16배로 벌어졌고 1999년에는 19배차로 확대됐다. 이는 통계청이 조사를 시작한 1947년 이후 최대 격차다. 상위 1%가 1976년 전체가구 소득의 19%를 차지 했지만 지금은 40%를 독식하고 있다.

빈부격차가 이렇게 심화한 원인은 무엇일까. 일부에서는 컴퓨터의 확산을 들고 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컴퓨터 확산 이전부터 빈부격차는 심화하기 시작했다고 지적한다. 경제학자 로버트 플랭크와 필립 쿡은 1950년대 광역 고속도로의 확대와 1960년대 장거리 통신비용의 하락을 꼽는다. 기업활동의 지역적 한계가 무너지고 확대되면서 엘리트 경영자들과 전문가들의 경제적 힘이 급격히 커졌다는 것이다.


정보화시대 도래, 계급간 갈등 심화 우려

많은 경제학자들은 정보화 시대의 도래는 앞으로 빈부격차를 더욱 확대시킬 것이라고 예고하고 있다. 미국인들도 미래에 대해 희망적이지만 일부에서는 19세기 후반에 횡행한 계급간 갈등을 우려하기도 한다.

미국 연방준비위원회의 앨런 그린스펀 의장도 “불평등은 우리에게 가장 큰 위협으로 등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시애틀에서 열린 세계무역기구 총회에 몰려든 시위대는 이같은 징조의 하나다. 최근 해리스폴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 국민의 75%가 신경제의 과실분배가 왜곡됐다고 믿고 있다.

빈부격차의 우려스러운 부산물 중 하나는 경제적 격리 현상이다. 1970년부터 1990년까지 통계청 조사를 분석하면 하류층과 상류층은 점점 같은 소득계층끼리 몰려 생활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교육전문가들은 자라나는 아이들에게는 학교 및 가족환경은 물론 이웃도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시카고 등 일부 도시에서는 저소득층에게 중산층 지역에서 살도록 주택을 제공하는 정책을 펴고 있다. 시카고 당국은 이같은 정책이 아이들의 정서 함양이나 학업 성적 등에서 학교개혁정책보다 훨씬 효과가 뛰어나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빈민가에서 벗어나면 천식이나 스트레스가 급격히 줄어드는 등 건강상으로도 좋은 것으로 나타났다.

많은 국내외 조사에 따르면 심장병이나 암, 수명 등이 빈부격차에 크게 영향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제학자들에게 신기록을 수립중인 미국의 경제호황을 멈추게 할 변수를 물으면 대부분 인플레이션이나 연방준비위원회의 금리인상 정책, 주식시장의 폭락 등을 꼽는다. 그러나 빈부격차가 더욱 위협적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정리=송용회·주간한국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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