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 해커(크랙커 말구) 초빙’ ‘열정을 가지고 함께 일하실 분 오십시요’ ‘프로게이머 모십니다’ ‘실력보다 끝까지 함께 가실 분 찾습니다’ ‘주저말고 오십시요, 당분간 월급은 못드리지만 밥은 함께 먹을 수 있답니다’…

대학 캠퍼스는 그 시대, 그 사회의 현재와 미래가 공존하는 공간이다. 이곳에서는 그 시대의 순수와 열정이 살아 숨쉬고 앞으로 펼쳐질 미래에 대한 가능성과 비전이 펼쳐진다. 1970년대 유신 독재, 1980년대 군부 독재의 폭압 속에서도 자유와 민주를 위한 그들의 외로운 투쟁은 바로 더 나은 미래를 향한 지성의 몸부림이었다. 그래서 상아탑은 항상 그 시대의 양심이자 미래였다.


대학은 창업인큐베이터

21세기를 시작하는 지금의 캠퍼스는 어떠한가. 불과 10년전만 해도 정치권을 향한 독설과 현실비판 일색이었던 대학교는 이제 벤처 창업의 장으로 변했다. 정치색 짙은 선동성 대자보는 이미 사라진지 오래다. 함께 벤처 창업을 할 파트너를 찾거나 벤처 동아리간의 전략적 제휴 모색 등의 내용이 주를 이룬다. 이제 대학이 단순히 학문의 도량만이 아닌 창업 인큐베이터로 변모해 가고 있는 것이다.

이런 변화는 단순히 일시적인 현상으로 끝날 것 같지 않다. 학생과 교수는 물론이고 대학과 정부까지도 ‘캠퍼스 벤처’ 창업 지원에 팔을 걷어부치고 나섰기 때문이다. 미국을 비롯한 구미 선진국은 이미 대학이 소자본 벤처 창업의 요람이 된지 오래됐다. 이제 대학도 이론의 한계를 뛰어넘어 현실 세계로 바짝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서울 동작구 상도동에 위치한 숭실대 한경직기념관 지하 2층 18호실. 두 평 남짓한 이곳은 북과 꽹꽈리, 이념서적 등이 어지럽게 놓여있던 예전의 동아리 룸이 아니다. 컴퓨터 단말기와 연결회로, 서적, 모형종 등 각종 장비가 빽빽이 들어차 있다. 그 틈바구니에서 4~5명의 학생이 열심히 연구에 몰두하고 있었다. 마치 일반기업체 연구소에 있는 듯 모두들 표정이 진지하다.


알짜배기 벤처회사들 수두룩

이곳은 숭실대 교수와 학생이 공동 설립한 ㈜에밀레사운드의 연구실 겸 사무실. 이곳에서는 국보인 에밀레종(성덕대왕신종) 모형종을 만들어 일반인과 외국 관광객을 상대로 파는 사업을 하고 있다. 1998년 숭실대 배명진교수(정보통신 전자공학부)가 미국 캘리포니아주 킹스 캐년의 로키 산맥 협곡을 갔다가 그곳에서 동물소리가 나는 기념품을 보고 착안해 만든 회사다.

종 제작은 외주를 주고 특허 출원한 사운드칩을 장착해 개당 8만~10만원에 판다. 자본금은 10억원. 지난해 매출액은 약 10억원으로 올해는 50억을 목표로 하고 있다. 회사 지분의 15%를 소유한 배교수는 이 수익금으로 매학기 1,000만원의 장학금을 학교에 기증하고 있다.

이밖에도 숭실대에는 현재 정보통신부가 지원하는 창업지원센터 22개 회사와, 중소기업청이 자금지원해주는 창업보육센터 20개 등 총 42개의 업체가 입주해 있다. 이중 약 3분의1이 법인 등기를 마치고 외부 투자 자본금을 받은 상태고 나머지도 법인을 추진중에 있다. 이곳에는 웬만한 중소기업 뺨치는 알짜배기 벤처회사가 즐비하다.

1999년 자본금 1억원으로 시작한 ㈜Real Seminar는 가상공간에서 기업이나 관공서의 세미나를 중계해주는 아이디어 연간 60억~70억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매출이 엄청나게 늘어나 자본금을 20억원으로 증액하고 회사도 아예 여의도로 옮겼다. 이밖에 악취를 먹는 미생물을 만드는 ㈜바이오세인트, 모노레일을 만드는 ㈜스카이카, 무료 e메일 서비스를 하는 디렉션넷 등 다양하다.


벤처창업의 최적조건 갖춰

배명진교수(창업지원연구센터소장)는 “대학은 벤처 기업이 자생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조건을 가진 곳이다. 이제 대학 교육은 교과서 위주의 이론 교육에서 탈피해 실험과 현장 실습이 상품으로 연결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대학 운영도 재단에 의존하는 기존 방식에서 탈피해 벤처 창업을 통해 여기서 얻은 수입으로 대학을 끌어가는 방식으로 전환돼야 한다. 미국 스탠퍼드대학의 경우 1년동안 자기 대학에서 배출한 벤처기업의 로열티만 연간 약 5,000만달러를 번다”고 지적했다.

국내 대학내 벤처창업센터 1호인 숭실대 외에 각 대학도 모두 벤처 창업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 고려대에는 ‘젊음과 미래’(인터넷 및 통신기기) ‘㈜시그마넷’(소프트웨어 개발) ‘1mocall’(전자기기) 등 5개의 회사가 창업돼 있다.

연세대에도 ‘소프트웹’(소프트웨어 개발) ‘둥둥’(사이버 음악) ‘Xfeel’(화상 채팅) 등 8개의 동아리가 창업을 한 상태다. 이밖에 서강대의 ㈜Bio Color(천연색소 개발), 동국대의 Free-Lancer(서버 구축) 등 수도권은 물론이고 지방 거의 모든 대학에서 벤처 창업 붐을 이루고 있다.

지난 2월22일 동국대 학림관에서는 국내 126개 벤처 동아리가 모여 전국 대학생창업동아리연합회(KOSEN) 창립총회를 개최했다. KOSEN은 창업동아리 회원간의 기술적, 인적 교류와 정보 공유를 통해 창업을 지원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현재 165개 대학 301개의 창업 동아리에서 8,123명이 가입돼 있다.

KOSEN은 첫번째 사업으로 올해 말까지 창업 동아리 회원의 개인 신상과 특기 등을 수록한 데이타 베이스를 구축할 계획이다.

중소기업청의 한 관계자는 “KOSEN은 그간 중소기업청이 지원해오던 수동적 형태에서 벗어나 예비 창업 준비자 스스로가 자생적으로 구성한 단체여서 의미가 깊다”며 “창업 동아리 회원의 경우 600만원의 서버와 PC 등 장비를 지원해주고 500만원 상당의 아이디어 개발비를 지원해 준다. 또 현장 학습을 위한 해외 견학 프로그램도 실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제 갑부 대학생이 나올 날도 머지 않았다.

송영웅·주간한국부 기자


송영웅·주간한국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