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지역주의인가. 4·13 총선이 30여일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정치인의 지역감정조장 발언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텃밭지키기와 손쉬운 당선을 위해서 정치인이 지역감정을 말초적으로 자극하는 발언을 쏟아내고 있는 것이다.

정치인의 이런 행태에 대해 지탄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지만 표몰이에 눈이 먼 정치인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다. 선거전이 달아오르면서 이번 주에도 정치인의 지역감정 조장발언이 더욱 기승을 부릴 것으로 보인다.

자신의 지역주의적 행태는 합리화하고 상대방의 지역감정조장 발언을 문제삼는 식의 정치권 공방도 치열해지고 있다. 대표적으로 논란이 일고 있는 사례는 민주국민당 김윤환 최고위원의 ‘영남정권 재창출’ 발언.

김 최고위원은 3월5일 대구 파크호텔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이제 영남을 주축으로 한 정권을 창출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TK와 PK가 협력해야 영남정권을 만들 수 있다”고 노골적으로 지역감정을 건드렸다.

그는 “1997년 대선에서 이수성씨를 후보로 냈으면 영남정권을 만들 수 있었지 않느냐는 아쉬움이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같은 날 민국당의 김광일 최고위원은 부산지역 4개 지구당 합동 창당대회에서 “확실한 지지기반을 갖고 있는 영남에서 대통령 후보가 나와야 한다”며 “신당이 여기서 실패하면 (우리는 모두) 영도다리에서 빠져 죽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말에는 사실상 김영삼 전대통령의 뜻이 담겨 있다고 주장했다. 부산지역의 YS정서에 호소하는 어법이다.

민국당 인사들이 지역주의 조장에 앞장서고 있는 것은 민국당이 생각만큼 뜨고 있지 않다는 현실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영남지역에서 한나라당의 위세에 눌려 있는 민국당이 당세를 확장하기 위해서는 지역주의 외에는 달리 호소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민국당은 특히 기대를 걸고 있는 부산에서 지지도 상승을 위해 지역주의 조장의 강도를 높여갈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여기서 변수는 YS의 태도다.

YS는 그동안 심정적으로는 민국당측에 기운듯 하면서도 공개적인 태도표명은 하지 않고 침묵으로 줄타기정치를 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총선에서 민국당의 성적이 극히 저조할 경우 자신의 영향력도 크게 감소한다고 판단, 본격적으로 민국당 편들기에 나설 개연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영남지역에서는 민국당과 한나라당의 반DJ 선명성 경쟁으로 지역주의 조장이 더욱 기승을 부릴 가능성도 있다.


지역주의 조장, 갈수록 강도 높아질 듯

지역주의 조장 경쟁은 충청지역에서도 불붙고 있다. 싸움은 자민련 김종필 명예총재와 민주당 이인제 선대위원장 간에 ‘충청맹주’ 쟁탈전 양상으로 발전하고 있다. 논산·금산에 출마한 이 위원장은 충청지역 순회연설에서 JP를 ‘지는 해’에 비유하며 ‘이인제 대망론’을 확산시키기 위한 바람몰이를 하고 있다.

이에 JP는 이 위원장을 ‘왔다갔다하는 바람몰이꾼’으로 치부, 이 위원장과의 정면대결을 피하면서 DJ에 대한 공격을 통해 지역주의에 호소하는 전술을 구사하고 있다. 그는 영·호남 지역감정이 5·16이후 발생했다는 DJ의 주장에 대해 “지역감정 심화는 DJ가 출마한 1971년 대선부터”라고 정면으로 맞받아치면서 충청지역 표를 몰아줘야 영·호남 지역감정을 극복할 수 있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도 충청 지역주의 조장경쟁에 뛰어들었다. 예산에 선영이 있는 이총재는 3월5일 예산 지구당대회에서 “충절의 고장인 충청도가 곁불이나 쬐면서 명예와 자존심을 버려야 하느냐”고 충청인의 자존심을 자극했다.

DJ의 특정고교 인맥 불용 발언으로 촉발된 지역편중인사 시비도 지역주의 조장 공방의 소재로 등장했다. 한나라당은 국민의 정부출범이후 심화한 호남인사의 정부요직 독점이 지역감정을 악화시켰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민주당은 한나라당이 통계를 왜곡해서 정략적으로 인사문제를 이용, 지역감정을 부추기고 있다고 반박하고 있다.

이같은 지역주의 조장에 대해 총선시민연대와 공선협 등 시민단체들은 정치인의 자제를 강력히 촉구하는 한편 지역주의 발언을 한 정치인의 낙선운동을 대대적으로 전개하기로 해 파장은 더욱 증폭될 것으로 보인다.


이계성·정치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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