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글로벌전략의 핵심기지로

음력 ‘3월3일’과 ‘9월9일’. 양력에 익숙한 요즘 사람들은 이 날을 단순히 ‘3과 9가 겹치는 날’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음력에 의존해 살았던 우리 조상은 3월3일과 9월9일을 봄과 가을이 시작되는 중요한 날로 여겼다. 흥미로운 것은, 옛 사람들은 3월3일에는 강남갔던 제비가 돌아오며 9월9일에는 또다시 제비가 강남으로 떠난다고 믿었다는 점이다. 결국 우리 조상에게 있어서 제비는 단순한 철새가 아니라 계절의 변화를 알리는 전령사였던 셈이다.

그런데 동·서양의 문화적 차이를 반영이라도 하는 것일까. 제비에 대한 서양의 인식은 우리와 사뭇 다른데 ‘한 마리 제비가 여름을 알리지 않는다(One swallow does not make a summer)’라는 영국 속담은 그 대표적 사례다. 결국 서양인에게 제비는 계절변화와는 상관없는 단순한 철새인 셈이다.


삼성중공업 건설기계부문 인수

이같은 의미에서 본다면 1998년 1조700억원을 들여 삼성중공업 건설기계사업부문을 인수, 한국에 진출한 볼보(Volvo)는 한국 경제가 본격적인 개방체제로 들어섰음을 알리는 ‘제비’같은 존재다.

볼보는 IMF 외환위기 이후 몰락위기에 빠졌던 한국 경제에 대규모 투자를 감행한 최초의 다국적 자본이었으며 진출이후에도 지난 40여년간 이뤄진 4만4,000여건의 외국인 직접투자와는 뚜렷하게 구별되는 특성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볼보는 어떤 회사이고 왜 한국에 대규모 투자를 단행했을까. 그리고 볼보의 행태는 기존 외국 투자기업과 어떻게 다를까. 우선 볼보는 1927년 스웨덴에서 자동차 생산업체로 출발했는데 1998년말 현재 전세계 20여개 국가에 제조설비를 갖추고 100여개 나라에서 8만여명의 직원을 고용한 수송관련 사업분야의 세계적 강자다. 1998년 볼보그룹의 전체 매출액은 270억달러이며 순이익은 11억달러에 달한다.

북유럽의 대표적 기업인 볼보가 머나먼 한국에 진출하게 된 직접적 배경은 1998년초 승용차 사업부문을 64억달러를 받고 포드자동차에 매각하면서부터. 볼보는 승용차부문 매각으로 확보한 자금을 건설기계 부문과 트럭·버스 등 상용차 부문에 투자키로 결정했는데 이때 대상기업으로 떠오른 것이 삼성중공업이었다.

볼보의 경우 건설기계 부문을 자신의 경영전략대로 ‘세계 3위업체’로 키우기 위해서는 굴삭기 분야의 약점을 보완해야 했는데 최신 설비를 갖춘 삼성중공업이 그같은 조건을 모두 충족시켰던 것이다.

이같은 전략에 따라 볼보는 1998년 5월 삼성중공업 건설기계사업 부문을 인수, 그해 7월 볼보건설기계코리아를 설립하게 된다. 또 105억원을 들여 서울 용산구 한남동에 볼보사옥을 마련해 볼보건설기계코리아와 함께 한국에 진출한 볼보그룹 계열회사를 한 건물에 입주시킨 상태다.

볼보가 한국에 진출하게 된 과정만큼이나 진출이후 볼보가 보여주는 모습도 이전의 외국 기업과는 완전히 다르다. 결론부터 말하면 볼보, 더욱 정확히 표현한다면 볼보건설기계는 한국의 창원공장을 값싼 노동력을 이용한 단순한 생산거점으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추구하는 세계 전략을 실현하는 글로벌 생산체제의 핵심기지로 여기고 있다.


창원을 삭메적 생산·연구거점으로

실제로 볼보건설기계부문은 창원공장을 자신의 가장 큰 취약점인 굴삭기 분야의 세계적 생산·연구거점으로 만들 계획이다.

이에 따라 이들은 삼성중공업 시절의 부품업체를 모두 인수하는 한편 굴삭기 분야의 연구시설을 한국에 둘 예정이다. 볼보건설기계코리아 김희장 과장은 “볼보가 창원공장을 인수한뒤 현지 여론의 악화를 무릅쓰고 경쟁력이 떨어지는 스웨덴 에슬뢰브의 굴삭기 공장을 폐쇄한 점은 볼보가 다른 외국기업과는 완전히 다른 목적으로 한국에 진출했음을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설명했다.

볼보는 또 인사·노사부문에서도 매우 독특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볼보는 한국에 진출한 다른 외국 자본이 급진적으로 조직문화를 바꾸는 것과는 달리 점진적인 문화통합을 모색하고 있다. 예를 들어 한국 기업을 인수한 대부분의 외국기업이 호봉제를 폐지하고 연봉제를 도입하는 것과는 달리 삼성중공업 시절의 급여, 훈련, 평가시스템을 상당 부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한국에 부임한 외국 경영진도 자기 방식을 강요하기 보다는 ‘현지화’에 주력하고 있다. 볼보건설기계코리아에 따르면 총 10명의 임원중 5명이 외국인인데 이들 모두 바쁜 일과중에도 한국어를 배우고 있다.

특히 1998년 10월16일 ‘볼보 데이(Volvo Day)’행사때 안토니 헬샴 사장이 한복을 입고, 기원제에 참여한 것은 한국에서 뿌리를 내리려는 다국적 기업의 새로운 시도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철저한 현지화 경영에 주력

한편 볼보는 이같은 인사부문의 ‘현지화’ 전략과 함께 재무, 생산, 마케팅 등 경영의 효율성 제고에도 힘을 쏟고 있다. 즉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9,000만달러를 추가로 투자하고 전사적 자원관리시스템을 도입하고 매출채권 관리를 외부 업체에 과감히 아웃소싱한 상태이다.

그때문일까. 볼보건설기계코리아의 경영성적은 인수한지 1년반만에 크게 호전되고 있다. 헬샴 사장은 지난 2월22일 기자간담회에서 “1998년 670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던 볼보건설기계코리아가 1999년에는 손익분기점에 도달했다”고 밝혔다. 그는 “2000년에는 올해에는 지난해와 비교할때 33%의 매출신장이 예상되며 수익성도 크게 개선, 대규모 흑자를 기록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세계 유수의 다국적 기업으로서는 최초로 한국 시장을 세계 전략의 핵심기지로 인식하고 있는 볼보. 볼보의 이같은 변화가 외국기업의 한국투자 행태가 구조적으로 바뀌고 있음을 알리는 것인지 아니면 계절의 변화를 알리지 못하는 ‘서양 제비’에 머물 것인지 자못 궁금하다.


조철환·주간한국부 기자


조철환·주간한국부 chcho@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