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주변 해역 질서 재정립…정부는 중·일 뒤 기 급급

한반도 주변 해역을 둘러싸고 중국과 일본 한국 북한 등 4개국의 각축전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한반도 주변 수역은 엄청난 해양자원은 물론 각국 어민의 생존권이 걸려 있을 뿐만 아니라 정치·외교적 관계 등이 복잡하게 얽혀 있고 동북아의 세력관계와도 직결된다는 점에서 각 국은 자국의 수역 늘리기에 총력을 다하고 있다.

1997년부터 시작된 한·중·일간 어업협정의 윤곽이 잡히면서 한중 어업협정의 전망에 눈길이 쏠리고 있지만 정작 우리 정부의 역량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지배적이다.

지난해 한일 어업협정 협상을 벌이면서 쌍끌이 어선 등 국내 조업현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큰 손해를 보면서 결국 장관이 인책경질되는 사태까지 이르렀지만 지난달 말 타결된 중일 어업협정에서도 제주도 남단의 배타적 경제수역 일부가 침해될 가능성이 제기되는 등 정부의 해역관리에 헛점이 드러나고 있다는 지적이다.

또 중국과 일본의 어업협정 발효를 계기로 일본의 배타적 경제수역(EEZ)안에서 조업하던 중국 어선이 우리나라 수역으로 대거 이동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특히 동중국해와 인접한 제주도 인근 해역의 복어채낚기를 포함해 연승어업 어민의 어장지키기에 비상이 걸렸다.

더욱이 중일 잠정조치수역 북단한계선 이북에 설정된 양국 배타적 경제수역(EEZ)이 우리 EEZ와 일부 중복되는 것으로 알려져 우리 정부가 외교적 경로를 통해 항의의사를 밝히는 등 한·중·일 어업협정 관계가 미묘한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우리 어민들 조업위축 불가피

중국과 일본은 어업협상을 타결하면서 6월1일 이후 일본측 EEZ안(북위 30도40분 위쪽, 동경 127도30분 우측)에서 조업할 수 있는 어선 숫자를 900척(동시조업 600척)으로 제한했다. 이는 현재 동중국해에서 조업하는 중국 어선의 5분의1 수준으로 나머지 어선이 우리나라 연근해로 이동할 경우 우리 어민의 조업위축이 불가피한 실정이다. 동중국해에서 조업하고있는 우리 어선은 1,000여척에 불과하다.

중국 어선은 규정된 그물눈보다 촘촘한 그물로 치어까지 싹쓸이하는 불법어로 작업으로 악명이 높은데다 국내 어선보다 큰 대형기선저인망 선단을 앞세운 ‘인해전술’을 사용해 우리 어장을 유린할 우려가 크다. 중국 어선이 1995~1998년 4년간 우리 수역에서 저지른 불법·부정 어로행위 건수가 2만건을 넘었다.

특히 중일 양국 어민이 상대국의 허가없이 조업할 수 있는 ‘신수역’의 북측 경계선이 모호하게 설정돼 이번 협상 타결은 사실상 우리 어장이 줄어드는 결과를 빚을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해양수산부는 중일 잠정조치 수역 가운데 일본의 EEZ에 해당하는 수역에서는 한일 어협(일본측 허가를 받아 조업가능)에 의해 우리 어선의 입어가 계속되며 중일 잠정조치 수역 중 중국측 EEZ에 해당하는 수역은 한중 어협이 발효되지 않은 까닭에 현행조업을 그대로 유지하면 된다는 설명이다.

해양수산부는 또 한일 제주도 남부 중간수역 이서수역에서 중일 어선의 조업 문제와 관련, “한일 어협상 제주도 남부 중간수역 이서수역은 한국의 EEZ로 간주되므로 일본 어선은 우리 정부의 허가없이는 조업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해양수산부 박재영 어업자원국장은 중일 어업협상 타결이 미치는 영향 및 향후 대책을 설명하면서 “중일 잠정조치 수역 북단한계선 이북에 설정된 양국 배타적 경제수역(EEZ)이 가상 중간선에 의한 우리 EEZ와 중복되는 것은 사실”이라며 “대응책을 강구중”이라고 밝혔다. 해양수산부는 중일 어업협정 타결내용 가운데 우리측의 정당한 권리를 침해하는 내용에 대해서는 외교경로를 통해 중국과 일본에 항의할 방침이지만 뒷북치기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중일 EEZ, 우리 EEZ와 중복

중일 어업협정이 우리나라 어민에게 미치는 영향을 감안할 때 주무 부처인 해양수산부와 외교부가 처음부터 면밀한 관찰을 했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해양수산부와 외교부는 일본과 중국의 협상결과가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대응하겠다는 태도를 보였다는 것이다.

실제로 2월27일 중일 어협타결 소식이 일본 언론에 보도될 때까지 해양수산부 간부들은 이같은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출입기자들이 외신을 보고 간부들에게 사실확인을 요구하자 “그런 일이 있었냐”“보고를 받지 않아 모르겠다”는 등의 반응을 보였다.

한·중·일 3국의 이해가 얽힌 제주도 이남 수역과 관련, 중일 양국이 우리측의 이해를 구해야하는 부분까지도 먼저 협상을 체결하고 한국은 뒤늦게 이에 항의하며 따라가고 있어 협상 과정에서 해양수산부가 주도권을 상실했다는 비판도 나오는 것도 이때문이다.


어정쩡한 정부, 한중협상 서둘러야

사실 중국측은 그동안 중일 어업협정을 이유로 한중 어업협상에 미적지근한 태도를 보여 협상이 지연돼왔지만 외교부와 해양수산부의 입장 차이와 눈치보기식 행정도 적지 않은 책임이 있다는 지적이다.

한중 협상을 막아온 최대 걸림돌은 중국측이 일방적으로 양쯔(揚子)강 일대에 설정한 조업금지수역이다. 이는 한중 어협을 정면으로 위배하는 조치이기는 하지만 양쯔강 일대는 한국 어선의 중국수역내 총어획량의 5% 미만에 불과하다.

그러나 정부는 이 지역 조업을 양보할 경우 해당 어민의 반발을 우려해 중국과 협상에 나서지도, 어민을 설득하지도 못하는 어정쩡한 자세를 취해왔다. 정부의 한 관계자도 “한중 어업협상이 늦어질수록 손해를 보는 것은 한국이라는 사실은 분명하다”며 “그러나 누구도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지 않으려 한다”고 말했다.

대체로 외교부는 경제적 실익과 북한과 관계에서 중국의 지원 등 외교적 이익을 고려해 양쯔강 조업의 일부를 양보하자는 입장을 보였으나 한일 어업협정 과정에서 ‘쌍끌이 파동’으로 곤욕을 치른 해양수산부는 어민의 반발 가능성을 우려해 신중한 반응을 보이면서 “범정부 차원의 결단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문제는 앞으로 한중 어업협상에 어떻게 대처하느냐다. 중일 어협이 타결됐기 때문에 중국이 한국과 협상 테이블에 나올 것은 분명하지만 중국측과 협상하는 것이 한일 어협때보다 훨씬 어려울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적인 지적이다. 해양수산개발원 박성쾌 수산경제실장은 “한중 실무협상에서 다뤄져야 할 사안은 훨씬 더 많고 복잡하다”고 주의를 촉구했다.

조재우·경제부 기자


조재우·경제부 josus62@hk.co.kr